간접 경험의 즐거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새 날 2018. 11. 23.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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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그늘이 없는 사람은 빛을 이해할 수 없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불완전함이라는 공통의 과제를 안고 살아간다. 이 사람이라고 하여 다를까? 그는 어느 누구보다 온화한 감성과 따스한 심성을 지녔으나 내향적인 데다가 민감한 성격으로 인해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면서 자신을 질책하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대한민국 사람이다. 


하지만 흔하게 알려진 우울증처럼 지독하게 우울하지도 않거니와 그렇다고 하여 행복하지도 않은 애매모호한 기분 상태가 이 사람의 내면을 지속적으로 파고 들었다. 그는 누구라도 그러하듯 낮은 자존감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겠거니 하고 생각해 왔으나, 알고 보니 이 증상 또한 질병 가운데 하나였다. 이름조차 생소한 '기분부전장애'라고 한다. 이 질병은 낮은 단계의 가벼운 우울 증상이 지속되는 형태로 발현된다. 때문에 흔히 질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잠복돼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 책을 들여다 보면서 자연스레 나 자신은 괜찮은 것인지 돌아보게 된다.


이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기분부전장애를 앓고 있는 저자 백세희 씨의 치료 과정이 대화 형식으로 기록돼 있다. 아울러 '우울의 순기능'이라는 주제로 그녀의 에세이 몇 편이 부록으로 수록돼 있기도 하다. 요즘 유행하는, 그러니까 '제목이 다했네' 하며 힐난을 듣곤 하는 전형적인 문장형 제목의 책이다. 하지만 뒷부분에서 별도로 언급하겠지만, 이 책은 이 책만의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저자는 10년 넘도록 기분부전장애와 불안장애를 호소하며 정신과를 전전했다고 하니 그동안 그녀를 갉아먹어왔을 실체를 알 수 없는 존재를 생각하면 지긋지긋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는 저자와 정신과 전문의 사이에 있었던 12주간의 지난한 치료 과정 속에서 서로가 나눈 대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저자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자신의 내밀한 생각들을 의사에게 솔직히 털어놓는다. 그녀가 펼쳐놓은 이야기들을 쭉 읽어 내려가다 보면 마치 내 속을 전부 까발려놓은 듯한 느낌 때문에 '그래, 이건 내 이야기야' 하면서 격하게 공감하거나, 때로는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왠지 모를 희열 따위도 느껴진다. 평소 드러내기 쉽지 않은 감정과 그로부터 파생될 법한 찌꺼기들을 저자가 대신하여 속 시원하게 까발려놓은 탓일까? 보통 마음의 감기라 불리는 우울 증상은 사실 감기처럼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될 듯싶다.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갉아먹으면서 결국 정신적인 영역뿐 아니라 육체적인 고통으로까지 전이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가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치료 과정을 통해 자신의 질병을 완전히 떨쳐버린 건 아니다. 약물 치료와 의사의 진단이 병행되고 있으나, 이의 의존만으로는 질병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조금씩 나아지며 성장해갈 뿐이다. 



일 처리도 그렇지만, 특히 인간관계에 있어 극히 사소한 사안 때문에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가 잦다. 자신은 충분히 잘 하고 있음에도 누군가와 비교하면 왠지 형편이 없는 듯싶어 괜스레 속이 쓰리고 상처 받기 십상이다. 때문에 무슨 일이든지 자기검열부터 해야 직성이 풀리며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왜 나만 그럴까 하는 피해의식 속에서 늘 허우적거리기 일쑤다. 


저자가 의사에게 털어놓은 이야기 조각들을 하나하나 살피다 보면 자연스레 내 자신이 투영된다. 왠지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나만 아픈 게 아니었구나, 나만 괴로운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뜻밖의 위안을 얻는다. 역시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기에 실수도 곧잘 한다. 그렇기에 너무 잘 할 필요가 없다.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으며, 자기검열에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문장형 제목의 책들 가운데 다수는 제목이 다했다는 혹평을 듣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감성을 파고드는 멋진 제목에 이끌려 쉽게 책을 손에 쥐었다가 그저 그런 뻔한 내용에 실망감을 느끼는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책들이 사실 시중에 넘쳐나지만, 대부분이 정신과 의사들의 시각이고, 그에 따른 처방전이 다수다. 기껏해야 진료 사례를 끄집어내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뿐이다. 그러니까 정작 정신적인 혼돈을 겪고 있는 환자보다는 의사의 관점이 주를 이룬다. 그에 반해 이 책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이가 자신의 진료 과정을 대화 형식으로 풀어놓으며, 의사가 아닌 환자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20대 후반인 저자가 만약 과거 20살의 자신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너무 열심히하지 말라며 조언하고 싶다는 대목은 절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를 쓰고 주변 사람들과 비교해 뒤처지지 않으려다 보니 우리는 늘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그나마 높지 않은 자존감마저 곤두박질치곤 한다. 어느 누구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고 싶은 인정 욕구를 지니게 마련이다. 아울러 뒤처지고 싶지 않은 경쟁 심리도 지니게 마련이다. 저자로 하여금 그런 이들에게 한 마디 하라고 한다면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모자라도 괜찮아. 서툴러도 괜찮아. 굳이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저자  백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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