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먹는 행위에 대한 진지하지 않은 고찰

새 날 2018. 11. 15.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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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서 먹는 행위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보편적으로 아침, 점심, 저녁 등 시간대별로 매 끼니를 챙겨 먹곤 한다. 즉, 오전 활동은 아침식사, 오후 활동은 점심식사, 그리고 저녁 이후의 활동은 저녁식사가 일종의 시간대별 일과의 분수령 역할과 동시에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는 임무까지 담당한다. 하지만 하루 중 식사시간이 실제로 차지하는 비중은 사실 보잘 것 없다. 한 끼당 한 시간씩으로 넉넉히 늘려 잡는다 해도, 기껏해야 하루 3시간가량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하루 일과 중 대략 8분의1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순수하게 먹는 행위 그 자체만을 시간에 빗대어 놓고 봤을 때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나 알고 보면 먹는 행위는 우리의 삶에서 매우 값진 역할을 담당한다. 이를테면 "식사는 하셨나요?" 따위처럼 주변 사람들과 가볍게 주고 받는 인삿말에도 식사와 관련한 요소가 으레 포함돼 있기 마련이다. 권여선 작가가 쓴 산문집 '오늘은 뭐 먹지?'를 읽어 내려가다보면 먹는 행위가 품고 있을 법한 의외의 소중한 가치를 엿보게 된다.


"단식을 해보면 우리의 하루가 얼마나 먹는 일들을 중심으로 세세하게 구분되어 있는지 알게 된다. 세 끼의 식사는 물론 커피도 간식도 술자리도 야식마저도 사라져버리는, 아주 긴 시간과의 싸움이 된다."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체내에서도 먹는 행위는 열일을 한다. 음식물의 형태로 섭취한 열량의 대략 70%는 기초대사량으로, 그리고 20%는 운동을 통해 소모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 10%가 바로 먹는 행위와 관련이 있다.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과정에서 남은 10%의 열량을 소모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먹는 행위 와중에 함께하는 이들과 두런두런 주고 받는 대화를 통해서도 일정량의 열량 소모는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매 끼니가 습관처럼 행해지는 통과의례쯤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그동안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아 왔으나, 지나치게 흔한 까닭에 평소 공기나 물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듯이 사실 알고 보면 먹는 행위 또한 우리의 삶에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한다.



경제력이 커 갈수록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먹는 행위 또한 1차원적인 단순 욕구로부터 벗어나 점차 3차원적인 욕구의 형태로 진화해 가기 마련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우리 사회도 근래 먹거리 문화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먹는 행위 그리고 음식을 둘러싼 유무형의 상품 및 서비스가 근래 인기 상종가다. 덕분에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해낸다. 지금 이 시각에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여러 유형의 상품들이 선을 보이고 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법한 한 유명 셰프는 조리사에서 사업가로, 그리고 어느덧 만능 엔터테이너의 역할까지, 지분을 점차 무한대로 넓혀가는 와중이기도 하다.


일본 드라마 '망각의 사치코' 역시 음식을 소재로 한 수많은 작품 가운데 하나다. 출판사 문예편집부에서 근무하는 사사키 사치코(타카하타 미츠키)는 주어진 업무만큼은 철두철미하게 처리하는 인물이지만, 진지하면서도 다소 과도한 행동 탓에 4차원적인 엉뚱발랄한 캐릭터로 그려져 있다. 물론 그런 그녀에게도 슬픈 과거사는 존재한다. 다정다감하며 잘 생기기까지 한 연인 슌고(사오토메 타이치)가 사치코와의 결혼식날 메모 한 장만 달랑 남겨놓은 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결혼식 당일 식장에서 남편 될 사람이 도망을 간 것이다.


틈만 나면 슌고 생각에 어쩔 줄 몰라해하던 사치코는 몸이 몹시 지쳐 있거나 우울할 때면 맛있는 음식을 찾아 나서며 이를 먹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를 괴롭히던 굴레로부터 비록 임시방편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을 수 있었다. 이후 그녀는 비슷한 상황과 맞닥뜨릴 때마다 맛난 음식을 찾아 거리로 나서는 게 일상이 됐다. 그녀에게 있어 음식은 단순히 영양소를 섭취하는 역할만이 아니라 어느새 트라우마로 자리 잡은 우울감까지 깨끗히 씻어내게 하는 또 다른 역할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 드라마를 통해 소개되고 사치코가 맛보게 되는 음식의 종류는 장르를 별도로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매우 다양한 범주의 것들 일색이다. 일본 전통 음식뿐 아니라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산해진미 모두가 그의 대상이며, 전통은 전통 대로 살리고, 응용력이 더해진 색다른 퓨전 음식들이 대거 선을 보인다. 이를 맛보면서 무아지경에 빠져든 듯한 표정을 짓는 사치코를 보고 있노라면 입 안에 침이 절로 고인다. 먹는 행위로도 얼마든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 올릴 수 있음을 이 드라마는 몸소 보여준다.



우리 주변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지독하게 매운 음식이나 달달한 요리로 이를 해소하려는 사람들을 간혹 만나게 된다. 음식 그리고 먹는 행위는 이렇듯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해소해주고 신체 및 정신 활동이 가능하도록 에너지를 보충해주는 1차원적인 역할에 충실하지만, 때로는 예술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거나 오감을 통해 우리의 지친 심신을 치유하고 위로해주는 등 2차원 3차원적인 역할에도 기여한다.


하지만 음식은 뭐니뭐니 해도 누군가와 함께 나눠 먹을 때 가장 가치 있는 행위로 다가오는 법이다. 이때 '누군가'가 좋은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크게 상관은 없다.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먹는 사람을 우리는 보통 식구(食口)라 지칭한다. 예로부터 식사가 얼마나 중요한 행위로 받아들여져 왔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물론 이 가치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근래 드라마 '대장금이 보고 있다'를 통해 극적으로 표현되고 있기도 하다.



'망각의 사치코'는 분명 식욕을 돋우는 매우 개성 강한 드라마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 사치코는 일 때문에 늘 고군분투하면서도 식사마저도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외로운 인물로 그려져 있다. 혼밥이 대세가 되어가는 세상이라지만, 왠지 안쓰럽다. 최근 혼밥과 관련한 한 연구결과는 이러한 사치코의 혼밥 행위를 더욱 씁쓸하게 한다. 혼밥을 주로 하는 사람은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는 사람에 비해 뚱뚱해질 확률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바로 그것이다.



세브란스병원 예방의학교실 연구팀이 최근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성인을 분석한 결과, 키가 170cm인 사람을 기준으로 했을 때 혼밥을 할 경우 그렇지 않을 때보다 체중이 약 1.2kg 더 나간단다.


이쯤 되면 음식을 매개로 식구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것과 관련하여 옛사람들의 지혜를 높이 사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행위가 여러모로 이롭게 한다는 사실을 진작부터 간파한 셈이니 말이다. 비록 낯 선 이들이라 해도 오랜 기간 식사를 함께하다 보면 그로 인해 형성될 법한 끈끈한 정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이렇듯 먹는 행위란 무릇 여럿이 함께할 때 가장 흥겨우며 즐거운 법이고, 결과적으로 우리 몸에도, 그리고 미용에도 이로운 법이다.



* 이미지 출처 : POOQ(푹) 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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