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그리운 날엔

'바람이 불어오는 그 거리에서' 대구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새 날 2018. 11. 5.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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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도 '김광석'이라는 이름 석자는 요즘 같은 계절에 더욱 끌린다. 그가 남긴 노래 대부분이 유독 감성적이라 그런 걸까? 다큐멘터리 3일 '바람이 불어오는 그 거리에서' 편에서 흘러나오던 김광석의 노래 '거리에서'는 무뎌진 감성을 다시금 예리하게 다듬어준다. KBS '다큐멘터리 3일' 프로그램 속에서 인터뷰에 응한 인터뷰이들은 한결같이 김광석 노래에 추억 하나씩을 묻어둔 듯 눈물을 글썽이기 바빴다. 왠지 남의 일 같지 않아 이를 바라보던 내 눈도 괜스레 붉게 충혈된다. 주책인 걸까?


누군가는 힘들었던 시기에 위로가 되어주어 그렇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노래 자체가 마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듯싶어 노랫말만으로도, 아니 김광석 이름 석 자만 꺼내도 왠지 감상에 젖어들곤 하는 듯싶다. 김광석,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비보를 전해 듣던 당시 나는 회사 승진시험 준비를 위해 집을 떠나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날은 왠지 공부도 잘 안 되고 하여 동료들과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참이다. 술집에서 흘러나오던 김광석의 사망 소식, 믿을 수가 없었던 우리는 그날 술을 진탕 퍼부었다. 엇그제 같던 그날이 벌써 20년 하고도 2년이나 더 흘렀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비록 김광석이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지만, 그의 노래는 영원히 살아 숨쉬며 모든 세대의 마음을 촉촉히 적셔준다. 김광석의 매력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10대에서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연령을 초월, 그와 그의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그가 남긴 노래들 역시 전 세대를 아우르며 우리 모두의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지고 위로해준다. 10대와 20대, 그리고 이미 군대를 다녀온 이들까지, 영원한 스테디셀러로 남을 '이등병의 편지', 아울러 30대 전후 세대뿐 아니라 나처럼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이들까지 모두의 나이를 본의 아니게 서른 즈음으로 묶어놓았던 '서른 즈음에', 어느덧 나이가 들어 어르신이라는 호칭이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올 세대의 마음을 적시고 울리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등 그의 노래는 사실상 모든 세대를 아우른다. 



이렇듯 대중들에게 영원한 친구이자 오빠, 동생, 그리고 광대로 남아 있을 김광석 이름 석자를 딴 거리가 대구에 들어섰단다. 다큐멘터리 3일 제작팀은 대구 대봉동에 위치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의 생동감 넘치는 현장을 3일 동안 밀착 취재, 시청자들에게 생생히 전달했다. 대중가수의 이름을 딴 최초의 거리인 이곳은 요즘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단다. 



애초 1천 개에 이르는 점포들로 붐볐던 방천시장이 쇠락하자 이를 살리기 위한 방편으로 이곳에서 태어나고 인연이 닿은 김광석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하는데, 김광석이 세대를 아우르는 폭넓은 대중성을 갖춘 덕분에 해당 프로젝트가 제법 성공을 거둔 것으로 읽힌다. 평일에도 관광객들로 곧잘 붐비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공연되는 1인극 '이등병의 편지'는 전 회에 걸쳐 연속 매진에 이를 만큼 대중들의 반응이 좋다. 아울러 상인들의 말을 빌리자면, 김광석 거리가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진작 시장 문을 닫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김광석 그의 영향력은 막강한 것이었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위에는 늘 김광석의 노래가 조용히, 때로는 심금을 울릴 정도의 꽤나 큰 진동으로 흘러나온다. 버스킹 공연 등을 통해 여러 예술인들에 의해 직접 불리기도 하지만,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곳곳에 마련된 형형색색의 이쁜 벽화와 김광석 조각은 노래와 함께 관광객들의 추억 남기기에 더없이 훌륭한 아이템이다. 알록달록 예쁘장하게 색칠되고 꾸며진 거리를 오고 가는 무수한 사람들, 이들은 김광석이라는 이름 석자에 애써 묻어놓은 추억을 꺼내들고, 또 다시 새로운 추억을 쌓기에 바쁘다. 



화면을 통해 펼쳐지는 예쁜 거리가 안구를 정화시키고 김광석의 아름다운 노래가 청각세포를 자극해온다. 더불어 일행과 함께 방천시장 선술집에 모여 막걸리 잔으로 뒷풀이에 이르면 그야 말로 오감을 충족시키는 행복이 절로 찾아들 것만 같다. 노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 노부부가 손을 맞잡은 채 포즈를 취하던 모습은 여느 젊은 연인 못지 않게 아름다웠다. 영원한 가객 김광석, 이제 그의 이름은 거리에 아로새겨진 채 수많은 이들에게 추억을 선사해줄 테고, 그의 노래는 이 사람 저 사람의 입을 통해 불리며 생명체처럼 살아 꿈틀거릴 테다. 


거리를 지나다가 문득 하늘을 쳐다본다. 은행나무들의 잎 색깔이 유난히 샛노랗다. 며칠 사이에 잎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조만간 휑한 모습만 남을 것 같다. 가을도 어느덧 끝자락에 이른 셈이다. 저물어가는 계절이 아쉽기만 한 이 즈음과 너무도 찰떡궁합인 방송 소재를 찾아 정성껏 이쁜 화면 및 소리의 형태로 작품을 빚어낸 다큐 3일 제작팀에 박수를 보낸다. 해당 프로그램 끝 무렵 한 인터뷰이가 말했듯이 앞으로도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흐르지 않고, 문화가 있으며 예술이 강물처럼 늘 흐르는,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아름다운 거리로 영원히 살아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이미지 출처 : POOQ(푹) 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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