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작은 키 때문에 불만이시라고요?

새 날 2018. 11. 4.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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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사람의 마음은 본디 간사한 까닭에 본격 가을의 끝자락을 알리는 최근의 기후 환경에 흡족해 하며 당시의 고통을 금세 잊고 있겠지만, 어쨌거나 여름철에는 정말로 딱 죽지 않을 만큼 무더웠던 것 같다. 지구의 지표면은 이론상 흡수한 태양에너지의 일부만 받아들이고 대부분을 방출시켜야 하나 온실효과로 인해 이를 온전히 방출하지 못하고 뜨거운 열에너지를 그대로 떠안은 채 복사열을 내뿜었던 탓이다. 


그렇다면 지표면에 가까워질수록 지구의 복사열에 영향을 크게 받게 될 테고, 그와 반대로 지표면과 멀어질수록, 그러니까 지표면으로부터 일정 수준의 거리만큼 벗어나 태양과 보다 가까워질수록, 태양의 열에너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닐까? 물론 사람의 신체적 제약 조건 내에서의 거리 기준으로 보자면 이는 너무 미미해서 언뜻 생각해볼 때 영향이 거의 없을 듯싶다. 때문에 아마도 태양열이 지구의 복사열보다 더 뜨겁게 다가오려면 우리가 생각하는 높이보다 한참이나 위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서는 아래에서 살펴보자.) 



산에 오를 때의 효과로 견주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주장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비록 야트막한 산이지만 이에 오를 경우 주거지에 있을 때보다 상대적으로 시원함을 체감하게 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역시 우리의 발은 여전히 지표면에 닿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체감 온도가 낮아진 건 숲과 계곡 등 주변 환경의 영향 탓이 클 테므로 고도가 높아졌다고 하여 체감온도가 낮아진 결과라고 섣불리 단언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와 관련하여 과학적으로 제시된 근거가 있다. 키가 클수록 체감온도가 낮아진다는 내용이다. 이를테면 지표면 온도가 55도일 경우 키가 큰 성인은 30도의 체감온도인데 반해, 키가 작은 아이는 40도로 느껴지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와 어른의 키 차이가 아무리 벌어져도 보통 1미터 이내인 까닭에 체감온도가 무려 10도나 차이 나는 건 앞서 언급한 지구 복사에너지의 영향이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입증하는 사례다. 


일기예보 방송 영상 캡쳐


이 논리대로라면 실제로 키가 상대적으로 큰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위를 덜 느끼게 된다는 의미다. 한여름이면 조금이라도 덜 더운 곳을 찾게 되고, 에어컨 등 냉방시설이 잘 갖춰진 공간을 찾아 이동해야 할 만큼 온도에 민감해지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예측 불가한 기후변화가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와중에 이렇듯 키로 인한 혜택은 어쩌면 대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키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자체만으로도 어쩌면 앞으로의 생존 환경에 더욱 유리해진다는 의미 아닌가? 여기저기서 키 작은 이들의 탄식이 들려오는 듯싶다. 아울러 수년 전 논란이 됐던 KBS 2TV ‘미녀들의 수다’의 기억이 다시금 떠오른다. 당시 방송에 출연한 한 대학생이 ‘키가 작은 남자는 루저(loser)’라는 발언을 하여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던 씁쓸한 기억이 있다. 


남성들에게 있어 키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여성들에게 있어 얼굴과 몸매, 즉 외모가 자존심 영역에 포함되듯이 남성들에게는 키가 바로 그와 비슷한 류에 해당한다. 그런데 앞으로는 여름철 생존과 관련해서도 이 키가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농후하다고 하니 키 작은 남성들의 기가 더욱 꺾일 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작은 고추가 맵다'거나 '키 큰 사람은 싱겁다' 등과 같은 속설은 전혀 위로가 되어주지 못한다. 


'미수다' 논란 이후 한 매체(싱글 커뮤니티 프렌밀리)가 20, 30대의 미혼남녀들은 ‘키가 작은 남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남성의 11.82%, 그리고 여성의 20.88%가 '루저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회적 논란으로 불거질 만큼 민감했던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그 비율이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 청년들의 사고가 매우 건전하다는 방증이다. 다만, 남성에 비해 여성이 두 배가량 많았다는 사실은 평소 여성이 남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한 종류의 것인지 그의 일단을 읽을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키가 큰 사람은 타고난 성품이 원래 까칠하지 않고 편안하기 때문에 잘 성장한 것이고, 키가 작은 사람은 그와 반대였던 까닭에 그렇지 못하다는 논리를 혹자들이 간혹 주장하곤 하는데, 내 생각에 이는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키가 크고 작으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뭐니뭐니 해도 유전적인 요인이다. 여기에 성장 환경이 아주 조금 영향을 가할 뿐이다. 근래 자녀의 키를 늘리고 싶어 부모들이 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사례가 많은데, 물론 그들의 심리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생득적으로 얻은 결과를 과연 무슨 수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인지 그 장삿속에 눈이 절로 휘둥그레해진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키가 큰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이야기를 한 번 해보자. 키가 클수록 암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몸에 세포가 상대적으로 더 많기에 이런 경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이 한국과 노르웨이, 스웨덴, 오스트리아 등에서 진행한 암 연구자료를 메타분석한 결과, 사람의 키가 평균보다 10㎝ 커질 때마다 암에 걸릴 확률이 약 10%씩 높아진다는 내용의 연구논문을 지난 달 24일 발표했다. 


학창시절 과학 시간에 배운 기억을 더듬어보면, 생물의 몸집이 크고 작은 건 세포의 크기가 아닌 세포 수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던 것 같다. 실제로 키가 작은 사람보다 큰 사람이 세포수가 더 많고, 그러다 보니 암의 발생 원인인 세포의 돌연변이 가능성도 더 늘어난다는 논리다. 그런데 이와 같은 연구결과는 비단 이번 사례만 있는 게 아니다. 지난 2015년에도 비슷한 연구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스웨덴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키가 10㎝ 더 클 경우 암 발생 위험은 무려 30%나 높아진단다. 해당 연구팀 역시 연구 결과에 대해 앞서와 비슷한 소견을 내놓았다. 즉, 키가 크면 신체 세포 숫자가 더 많고 그만큼 에너지를 더욱 많이 흡수해야 하며, 성장 호르몬과 수용체의 관계도 암 발병에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란다. 


세상은 생각보다 공평한 것 같다. 키가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대체로 좋은 면과 나쁜 면이 함께 공존하고 있으니 말이다. 때문에 생득적으로 주어진 처지에 대해 조상과 유전자를 탓하는 등 지나치게 이에 매몰되어서는 안 될 노릇이다. 성인임에도 사고가 여전히 미성년에 머물러 있는 듯 덜 여문 일부 사람들의 '키 작은 남자는 루저' 따위의 발언에도 발끈하지 말자. 속설이나 편견 등에 휘둘림 없이 앞으로 전개될 우리의 삶을 잘 가꿔나가도록 내면의 근육을 더욱 단단하게 단련하는 일에 몰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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