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미닫이문에 담긴 작은 배려

새 날 2018. 11. 3.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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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닫이문은 문이 레일 위를 수평으로 이동, 개폐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이를 열고 닫을 때 특별히 별도의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다. 즉, 여닫이문처럼 문을 활짝 열 경우 문짝이 회전하는 반경만큼의 공간을 차지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방식이 불편하거나 수고로움을 초래하는 결과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단순히 앞으로 당기거나 밀면 쉽게 열리는 구조를 굳이 힘을 들여 옆으로 쭉 밀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확인해보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는 노릇이나, 미닫이문을 열 때 여닫이문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울러 설치 비용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여닫이문에는 굳이 필요 없는 레일을 깔아야 하는 탓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 미닫이문에는 유독 사람을 많이 생각하고 배려한 흔적이 적잖이 깃들어있다. 이를 이용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문을 열고 닫는 본질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며, 그 이전과 이후의 동작이나 주변 환경에는 딱히 신경을 기울일 필요가 없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덕분에 시민들 누구나 이용 가능한 공공기관의 출입구는 으레 미닫이 형태의 자동문으로 돼 있는 경우가 많다. 남녀노소, 장애인, 비장애인 구별 없이 누구에게나 개방되어야 하고 쉽게 출입이 가능해야 하는 공간은 대부분 이 자동문이 설치된다. 한편 각급 학교의 교실이나 교무실 등은 비록 자동문이 아니더라도 미닫이문인 경우가 많다. 병원의 입원실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계층의 사람이 됐든 해당 기관을 찾는 이로 하여금 적어도 문을 여닫는 일 자체만큼은 불편함이 수반되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누구든 편하게 드나드는 공간으로써 문턱의 높이를 한껏 낮추고 개방감을 높여 늘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역할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여닫이문은 당겨서 문을 열 경우 정확히 문짝의 회전 반경만큼 이용자나 주변의 사람들이 뒤로 물러서 있어야 한다. 반대로 밀어서 문을 열 경우 문을 사이에 두고 반대쪽에 위치한 사람은 문짝의 회전 반경만큼 물러서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칫 문짝과 충돌하거나 문이 열리지 않는 사태가 빚어질지도 모른다. 때문에 여닫이문 사용이 비장애인에게는 별것 아닌 일로 다가올지 모르지만, 휠체어 등을 이용해야 하는 장애인이나 중증 환자에게는 무척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학교나 병원 등에서 미닫이문의 활용이 보편적인 이유다.


적어도 문을 여닫는 이용자로 하여금 수고로움을 전가시킬 일 없는 미닫이문의 미덕은 그래서 나가거나 들어오는 사람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이들 모두를 한꺼번에 배려해준다는 사실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러니까 애초 해당 시설에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 셈이다. 공공기관뿐 아니라 사적인 공간에도 미닫이문의 철학이 담긴 자동문 설치가 근래 늘고 있다는 건 그래서 고무적이다. 설치비용이 낮아진 덕분인지 제법 대중화가 이뤄져 많은 곳에 설치되기 시작한 것이다. 상점 등에도 너 나 할 것 없이 해당 시스템이 적용되는 추세다. 


물론 여닫이문이라고 하여 다 같은 여닫이문은 아니다. 밀거나 당기는 등 오직 한 방향으로만 활용 가능한 여닫이문은 일단 논외로 하자. 밀고 당기는 등 양 방향으로의 개폐가 가능한 여닫이문의 경우만 생각하기로 하자. 평소 여닫이문을 열 때 미는 사람보다 당기는 사람의 마음 씀씀이가 나는 왠지 더 곱게 다가온다. 그의 태도에서는 미닫이문에 으레 깃들어 있을 법한 배려심 같은 게 절로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미는 힘이 당기는 힘보다 상대적으로 수월하다고 하여 누구나 밀어서 문을 열 경우 우리 생활공간 곳곳은 온통 아수라장이 될 공산이 크다. 아무 생각 없이 문을 밀고 들어가려다가 혹은 밀고 나가려다가 문 반대편에 누군가가 있을 경우 그 사람은 난 데 없는 봉변을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 피해 대상이 내가 될 수도, 혹은 당신이 될 수도 있다.  


문을 자신 쪽으로 늘 당겨서 여는 사람의 손은 비록 투박하고 못생겼더라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이의 섬섬옥수에 비해 왠지 훨씬 아름답고 따뜻할 것 같다.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늘 반대편 사람을 헤아리면서, 즉 우리 주변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잡아당겨 문을 여는 그 작은 손동작만으로도 왠지 마음 전체가 훈훈해지는 느낌으로 다가오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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