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달달한 커피믹스가 좋다

새 날 2018. 11. 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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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믹스는 우리나라가 개발한 몇 안 되는 세계최초의 제품 가운데 하나다. 지난 1976년 우리가 익히 아는 커피믹스의 대명사격인 바로 그 회사가 이를 개발했다. 휴대가 간편하고 보관이 용이한 데다가 언제 어디서나 뜨거운 물만 있으면 손쉽게 타서 마실 수 있는 편리함이 부각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비록 예전만 못하다지만, 누가 뭐라 해도 커피믹스는 여전히 한국인이 가장 즐겨 찾는 커피다. 이는 통계 결과로도 입증된다.


1인당 커피 소비는 연간 500잔 이상이다. 국민 전체가 1년 동안 마신 커피를 잔수로 헤아려보니 대략 265억 잔에 달한다고 한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커피 시장의 규모는 11조7400억 원이었다. 종류별로는 커피믹스가 130억5000만 잔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지난 2010년을 전후, 커피전문점의 공격적 출점과 소비자들의 원두커피 선호도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인스턴트 커피 시장이 크게 위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하며 선전 중인 셈이다.


식사를 마친 뒤 입안에 개운함을 선사하는 데엔 사실 쌉싸름한 아메리카노 만한 게 없다. 텁텁한 원두 고유의 맛과 향이 온갖 종류의 음식물이 머물다 간 입안의 물리적인 흔적을 깨끗이 지워주거나 헹궈주기 때문이다. 커피는 이때 우리의 신체에 포만감만 남긴 채 몸과 마음을 식사 이전의 상태로 깨끗이 되돌려놓는 역할을 한다. 무언가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나 누군가와 두런두런 이야기 꽃을 피울 때에도 원두커피는 아주 좋은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한다. 향긋함만으로도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일종의 묘약과 같기 때문이다.



원두커피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에스프레소를 기반으로 하는 원두커피가 지금과 같은 대중적인 인기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생두를 갈아 커피메이커라는 기계에 의존해 내려 마시는 드립이 그나마 대중들이 원두커피에 쉽게 접근하는 유일한 방식이었는데, 아메리카노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을 길들이는 데 성공한 뒤로 커피 시장의 한쪽 쏠림 현상은 유독 두드러진다.


너 나 할 것 없이 출근길 퇴근길, 그리고 점심시간 등 특정 환경을 가리지 않고 틈만 나면 한 손에 원두커피 한 잔씩을 든 채 일과에 몰두하는 광경은 대한민국 성인들의 보편적인 일상 가운데 하나다. 이런 열풍이 아마도 1인당 매일 한 잔 이상의 커피 소비 광풍을 이끌어온 게 아닐까 싶다. 물론 나도 원두커피를 좋아한다. 원두가 품은 고유의 향미 자체도 좋지만, 그보다는 커피로부터 만들어지는 분위기, 즉 왠지 마음을 이완시키는 듯한 무언가 여유롭도록 돕는 그 감각이 좋다.


ⓒ한국일보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커피의 종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여전히 커피믹스를 택할 것 같다. 몸이 먼저 그쪽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동안 중요한 일에 몰두하거나 여행 등 좋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렸던 일, 그리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내 손에 늘 쥐어져 있던 커피는 원두커피가 아닌 믹스류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아메리카노가 내 삶에서 함께했던 시간은 매우 짧다. 누가 뭐라 해도 믹스를 접해온 시간이 원두커피의 그것을 압도한다.


그 때문일까? 평소 원두커피를 마신 뒤에도 뭔가 모를 부족함 따위가 느껴지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달달한 커피믹스 한 잔이면 모든 게 해소되곤 했으니 말이다. 커피믹스를 마셔야 비로소 커피를 마신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러고 보면 달달함이 선사해주는 각성효과 탓에 커피믹스를 선호해온 경향이 제법 크다. 하지만 그보다는 사람과 시간 그리고 공간 등 당시 함께한 수많은 아스라한 추억이 커피믹스라는 유무형의 사물에 고스란히 깃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울러 앞서도 언급했듯 믹스만의 그 달달함과 커피 특유의 씁쓸함 및 텁텁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맛의 조화는 그 어떤 종류의 원두커피로도 흉내낼 수 없는 고유한 종류의 것이리라.


번잡함이 질색인 내겐 언제 어디서나 물만 있으면 손쉽게 그리고 간편하게 커피 한 잔을 뚝딱 만들어낼 수 있으니 이처럼 좋은 게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점심식사 후 도저히 잠을 물리치기 어려운 마의 시간이 도래하면 으레 커피믹스 한 잔을 타 마시곤 한다. 그것도 한 개가 아닌 두 개를 타야 직성이 풀린다. 이때 커피 자체가 일으키는 효과보다는 왠지 혀끝을 화들짝 놀라게 하는 그 달달함이 먼저 나의 뇌를 각성시켜오는 느낌이다. 이를 마셔주어야 비로소 피곤이 풀린다. 물론 전신을 노곤함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한낮의 그 눅진한 잠을 완전히 쫓아버리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내가 정작 커피믹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근래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달달한 믹스보다 씁쓸한 원두커피를 선호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바로 당류 섭취를 줄일 수 있다는 건강과 미용적인 측면이 한 몫 단단히 거든다. 때문에 건강이 악화되었거나 다이어트를 고려하는 사람들이라면 으레 믹스보다는 원두커피를 즐겨하기 마련이다.


내가 아는 지인 역시 고혈압과 당뇨, 고지혈증 등 때문에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있는데, 나처럼 커피믹스를 좋아하는 이 분이 이를 타 마실 때면 한 봉을 전부 쏟는 게 아니라 설탕량을 조절해가며 조심스레 쏟곤 했다. 그에 비해 나는 아직까지는 그러한 염려가 없기에 믹스 한 봉을, 아니  두 봉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컵에 탈탈 털어 놓는다. 이렇듯 건강이나 미용 때문에 믹스를 즐길 수 없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는 흐름 속에서 나는 여전히 이를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이 편리하고 맛좋은 커피믹스를 더욱 사랑해주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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