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소중한 것일수록 대체로 짧다

새 날 2018. 10. 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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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이라는 글자는 보면 볼수록 참 매력덩어리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이 세상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단음절 어휘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은 무언가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는 평소 눈여겨 보지 않는 이상 눈치 채기가 쉽지 않은 대목이다. 물, 불, 흙과 같이 지구 행성을 이루는 근본 물질부터 시작하여 해, 달, 별, 풀, 숲, 뫼, 꽃, 땅 등 자연을 이루는 수많은 것들 역시 단음절의 어휘다. 사람은 '밥'을 먹고, '땀'을 흘리면서 '일'을 통해 '돈'을 벌어 '삶'을 영위한다. 이때에도 물론 작은 따옴표로 묶인 단음절의 어휘들이 열일을 마다 않는다. 


내 '몸'은 '뼈'의 토대 위에 '살'이 붙은 형태이며, 살아 있는 한 그 안에는 항상 따뜻한 '피'가 흐르기 마련이고, '넋'이 이를 지배하는 구조다. 이렇듯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요소들도, 손과 발, 눈, 코, 귀, 입 등 가만히 살펴보면 단음절의 어휘가 유난히 많다. 구성원 모두가 함께 꾸려가는 이 사회는 또 어떤가. '너'와 '나' 그리고 '벗'이 서로 어우러질 때 비로소 공동체가 완성된다. 오늘도 우리는 '꿈'을 이루기 위해 비록 힘들지만 낯선 이 '길'을 향해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긴다.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 나를 비롯한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당시 인도네시아의 한 마을을 땅이 통째로 집어삼키는 위성 영상이 공개됐다. 단 12초에 불과한 이 영상은 자연의 가공할 만한 위력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분명히 고체로 알고 있었던 땅이건만, 지진 발생과 동시에 흐물흐물해지면서 물 흐르듯 흐르다가 끝내 마을의 흔적을 순식간에 지워버리고 만다. 



토양 액상화로 불리는 이 현상으로 인해 한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과학기술이 제아무리 발전하였다고 한들 이렇듯 삶의 터전을 일순간 사라지게 하는 엄청난 물리력 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듯싶다. 나는 삶의 토대 역할을 하는 이 지구라는 행성을 만들고, 아울러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을 창조한 주체가 다름 아닌 신이라면, 도대체 왜 이러한 시련을 우리 인간에게 안기는 것인지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다. 신이라는 존재가 한없이 원망스럽다.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어떤 이들은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 그 자체를 삶이라고 말한다지만, 이번 인도네시아 사태처럼 그 주체를 아예 사라지게 한다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흙으로 이뤄진 땅은 먹거리를 제공해주고, 인간이 삶을 꾸려나가도록 하는 물리적 공간이다. 하지만 이번 지진에서도 보았듯이 때로는 이 땅 자체가 인간의 삶을 파괴시키는 주범으로 둔갑하곤 한다. 그것도 아주 끔찍한 방식으로 말이다. 생태계의 평형을 위한 자연의 섭리라고 한다면 꼭 이러한 방식이어야 했을까? 신에게 묻고 싶다.


그런데 '땅'도 그렇거니와 이 땅을 이루는 '흙', 물론 '삶'까지 모두가 단음절의 어휘 아닌가. 아울러 인간의 삶을 지탱시켜주는 건 물리적 실체인 '몸'이며, 이 또한 단음절 어휘다. 신이 사람의 몸을 흙으로 빚었다는 건 비단 해당 종교를 믿는 신자가 아니더라도 널리 알려진 가설이다. 그렇다면 이 창조론을 가설이 아닌 사실이라고 가정해보자. 만약 그렇다면 '흙'이 인간의 '몸'을 빚고 또 이 흙으로 이루어진 '땅' 위에서 '삶'을 누리는 주체가 다름 아닌 우리 인간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죽으면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고들 한다. 결국 삶이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끝없는 순환 과정이다. 그리고 이 순환고리를 꿰고 있는 본질적인 의미의 단어들은 신기하게도 하나같이 단음절의 한글 어휘로 이뤄져 있다. 



지진 등 자연재해는 인간 능력 밖의 일이다. 이 끔찍한 재앙 앞에서 우리 인간은 정말로 보잘 것 없고 하찮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기껏해야 지금처럼 창조론을 들먹이면서 우리에게 안긴 이 시련을 어떻게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의 의미를 애써 되새겨보는 과정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대비를 한다 한들 사전에 이를 막을 재간은 없으며, 그럴 수 있는 영역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흙은 사람의 몸뚱아리를 빚거나 땅이 되기도 하며, 삶의 토대가 되었다가 또 이를 일순간 앗아가기도 한다. 즉, 흙은 때에 따라 외양만 다른 형태로 바뀔 뿐 본질은 변함이 없다는 의미다. 이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등식이 성립한다. 흙=몸=땅=삶. 피가 우리 몸속을 끊임없이 순환하듯이 그동안 숱한 삶이 이러한 과정을 반복했으리라. 우리 모두는 그 무수한 순환 가운데 지금 어디쯤인가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순환고리 사이에 촘촘하게 꿰어진 단음절 어휘로 된 한글을 이정표 삼으면서 말이다. 


자연재해에 매우 취약한 우리의 삶도 그렇지만, 이러한 삶을 묘사하는 본질적인 한글 어휘들 역시 한 글자로 매우 짧다. 소중한 것일수록 대체로 짧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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