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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전제 조건 '그것이 알고 싶다: 외부인들'

새 날 2018. 10. 7.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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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6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1139회 '외부인들' 편에서는 의료기기 영업사원의 무면허 수술 행태가 다뤄졌다. 최근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부산 모 버스 기사의 의료 사고는 그 속내를 들춰보니 빙산의 일각이었다. 의사 신분이 아닌 외부인이 수술복을 입고 출입이 철저히 통제된 수술실에 들어가 수술 행위에 나선 상황은 어처구니가 없다. 더구나 이러한 불법행위가 업계의 관행이라는 표현에는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도대체 병원의 수술실은 어쩌다가 이렇듯 법의 사각지대가 된 걸까? 


의료기기 업체 직원과 의료인들의 제보에 따르면 사실상 개인 병원과 2차 병원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심지어 대학 병원 등의 대형 병원에서조차 무면허 수술 행태가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방송은 부산 버스 기사 사건의 실체를 시청자들에게 상세하게 전달하고, 제보자들의 제보를 근거로 이면에 감춰진 병원의 운영 실태를 파헤쳐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짚어나간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건 의료기기 영업사원들에게는 영업뿐 아니라 수술 실력까지 겸비되어야 한다는 업계의 요구 조건이었다. 의사가 되기까지 10년 이상의 적지 않은 공부를 해야 하는 마당에 이러한 행태는 결국 의사 스스로 자신들의 지위를 낮잡는 행위에 다름 아닐 테다. 



어느 누가 보아도 명백한 불법행위이자 생명윤리를 저버리는 끔찍한 결과물인 까닭에 외부에는 절대로 누설할 수 없는 비밀이지만, 그와는 반대로 해당 업계 내에서는 일종의 관행처럼 비슷한 행위들이 공공연하게 행해졌던 셈이다. 덕분에 의료기기 영업사원들은 외부인 절대 출입통제구역인 수술실을 제 집 드나들듯 마음대로 드나들면서 수술 보조는 물론, 심지어 수술까지, 그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집도할 수 있었다.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불법행위가 어떻게 병원에서, 그것도 수술실 내부에서 자행될 수 있었을까?



수년 전부터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대형 정형외과 병원들이 곳곳에 우후죽순 생기면서 영업망을 확장해온 배경에는 혹시 이러한 끔찍한 관행이 뒷받침된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거둘 수 없게 한다. 소문에 따르면 별것 아닌 부상에도 무조건 시술 내지 수술을 권유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배경과 맞물리면서 왠지 더더욱 의구심이 들게 한다. 어르신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우리 동네에도 최근까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정형외과 전문병원들이 대거 들어선 바다. 방송에 따르면 이들이 수술했던 수많은 환자들의 다수가 본인들은 절대로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무면허 무자격자에 의해 이뤄졌다는 의미가 된다. 무섭다.



병원과 의료기기 업체라는 특수관계 속에서 응당 발생하게 되는 금전적인 이해관계 그리고 비용을 아껴보겠노라는 병원 측의 얄팍한 상혼이 맞아떨어지면서 결과적으로 이러한 불법행위가 만연하게 된 셈이다. 의사라는 직업인은 생명을 다룬다는 점에서 여타의 직업인들과는 그 비중이 사뭇 달리 다가온다. 하지만 인명을 다루는 직업인이 금전에 눈이 멀어 생명 윤리를 도외시한 채 불법 행위를 자행해도 사법부에서는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고 있고, 행정부와 입법부가 관여했을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혹여 면허 취소를 당하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얼마든 재교부가 가능하기에 이들이 부담감 없이 불법 행위에 빠져들 수 있었을 테다. 


최근 이러한 불법행위가 이슈화되고 여론이 악화되자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비등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의사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이를 받아들이기보다 궤변만 늘어놓고 있는 실정이다. 환자와 의료진 사이의 신뢰가 깨지는 행위이기 때문에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참에 나는 그들에게 되묻고 싶다. 



정작 생명 윤리를 내팽개치고 의료진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든 당사자가 누구인가를 말이다. 환자와 의사, 국민과 의사 사이의 신뢰는 이미 상처투성이다. 이를 다시금 올곧게 일으켜 세워야 하는 건 의사 본인들 몫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자해지의 기회조차 그들 스스로 걷어 차버리려 한다. 의사를 포함한 의료진들은 최근까지 대리수술과 무면허수술이라는 불법행위에, 수술실에서의 생일 파티와 성범죄, 성희롱 등 온갖 반인륜 행위를 일삼아왔다. 그 어느 곳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철저하게 보장돼야 할 수술실 내에서의 이러한 각종 일탈 행위는 의료진들 스스로 신뢰를 갉아먹어온 셈이다. 안타깝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현재 의사들이 반대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지적 재산권 침해와 진료 위축 등의 우려는 앞서 살펴본 무면허 수술 행태나 기타 성범죄 등의 사례에서 보았듯 환자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범죄행위로 이어지게 할 개연성에 비하면 그다지 큰 비중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그 어떠한 직업보다 숭고한 일에 몸담고 있는 직업인이다. 의사가 될 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던 건 바로 이러한 연유 때문일 테다. 범죄 예방과 환자의 인권 보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의사들의 사적인 이득보다 월등하다면 CCTV 설치를 마다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파렴치한 일탈 행위를 일삼고 생명윤리를 저버리고도 지금처럼 여론에 반하는 주장을 서슴지 않는다면 대중들로부터의 외면은 필연적이다. 더 나아가 방송에서 언급된 것처럼 혹여 국민 생명을 볼모로 자신들의 이익을 앞세우려 한다면 신뢰는커녕 매서운 비난과 질책을 피해갈 수 없을 테다. 정부와 국회는 느슨한 의료법으로 인해 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 사실을 헤아리고, 보다 합리적인 방향으로의 법 개정을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의사들이 말하는 신뢰란 바로 이러한 것들이 전제될 때에만 성립 가능하다.


* 이미지 출처 : POOQ(푹) 동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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