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누군가의 아빠가 된다는 것 '배드파파'

새 날 2018. 10. 3.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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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유지철(장혁)은 늘 돈에 쪼들리며 살아가는 평범한 한 가정의 가장이다. 전세 보증금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줄기찬 요구에도 이를 애써 무시하며 꿈쩍 않던 그였으나, 아내(손여은)의 묵직한(?) 압박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다. 더구나 딸 영선(신은수)마저 친구들이 메고 다니는 값비싼 가방을 사달라며 떼를 쓰는 처지이니 그의 축 처진 어깨는 아래로 더욱 내려갈 수밖에 없다. 그런 그가 가족 앞에서만큼은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걱정하지 말라며 큰 소리를 치기 일쑤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현실은 비루하기 짝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도박으로 의심되는 범죄 현장에서 그들 일당 중 하나가 그에게 현금을 몰래 찔러준다. 뒤늦게 눈치를 챈 유지철, 이를 당사자에게 돌려줄 계획이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아내의 수중에 들어가고 만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딸 아이마저 학교에서 불거진 불미스러운 일로 목돈이 필요하게 된 상황, 뇌물 수수 혐의로 정직 처분을 받게 된 그는 막다른 길로 내몰린다. 그러다가 신약을 개발한 뒤 임상실험을 계획 중이던 모 제약회사에서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목돈을 마련할 요량으로 이에 응하는데...

 


김성민이 쓰고 전창민이 연출한 총 32부작 MBC 월화 드라마 '배드파파'가 지난 10월 1일 드디어 첫 전파를 탔다. 가끔은 무모하기도 하고, 약간은 덜 떨어져 보이기도 한 캐릭터이지만 어느 누구보다 가족을 아끼며 사랑하는 아빠 유지철의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고군 분투기를 그린 판타지 장르의 드라마다. 깨지거나 떨어지고 금이 간 부위를 비닐테이프로 대충 붙여놓아 누가 보아도 임시 처방한 것으로 보이는 그의 자동차는 결코 외양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멀쩡히 달리다가 곧 멈춰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기계적인 상태는 더욱 취약하기 짝이 없었다. 현재 그에게 처해진 비루한 현실과 완전히 판박이다. 그럼에도 젊어보인다는 뭇여성의 한 마디에 좋아 어쩔 줄 몰라해하며 입이 헤벌쭉 벌어지는, 전형적인 철딱서니 없는 아빠였다. 한편 명품 가방을 사달라며 조르는 딸 아이를 외면하기 힘들었던 딸바보 아빠의 딸 사랑은 도리어 나비효과가 되어 그를 더욱 궁지로 내모는 유인이 되게 한다.  

 

 

인권이 물 흐르듯 자연스레 흐르는 이 세상에서 권투처럼 야만적인 경기가 여전히 스포츠 범주에 포함되고 올림픽 종목에도 들어 있다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경기라고 하지만, 사실상 승자도 패자도 없다. 폭력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승자가 됐든 패자가 됐든 둘 모두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 합법적으로 인정된 폭력을 행사할 뿐이다. 이를 지켜보는 관중들은 환호성을 내지르거나 그도 아니면 안타까움에 탄식을 뱉어내곤 한다. 이렇듯 권투는 인간의 내면 속에 감춰진 폭력성을 양지로 끄집어내어 스포츠라는 명분으로 교묘히 포장하고 있다. 이를 스포츠라고 부르기엔 낯부끄럽다. 

 

권투 시합이 끝난 뒤의 모습을 한 번 유심히 살펴보라. 격렬했던 경기일수록 패자는 물론이거니와 승자마저 얼굴 등에는 폭력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게 된다. 고통에 의해 일그러진 선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대중들은 그동안 억눌리고 짓눌려온 폭력이라는 이름의 욕망을 거침없이 발현시키거나 대리만족을 느끼곤 한다. 어떻게 이런 류의 것이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교묘히 탈을 쓸 수 있었던 걸까? 오로지 주먹만을 사용하는 권투도 이럴진대 권투를 기반으로 하고 온몸을 무기로 활용해야 하는 격투기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이 드라마는 바로 이 자극적인 스포츠 경기인 격투기를 소재로 한다. 그래서 더욱 시청자들의 호기심과 욕망을 자극할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오히려 대중들의 인기를 한꺼번에 끌어 모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장혁의 다소 거친 듯한, 마초 냄새 풀풀 풍기는 저돌적인 연기가 더해지니 흡사 날개를 달아놓은 느낌이다.

 

 

그나마 작가가 단순히 재미와 흥미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다행스러운 대목이다. 판타지적 요소와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잘 버무려놓은 작품이면서도 그 이면으로는 우리 사회나 개인이 저마다 품고 있을 수 있는 모순과 문제점들을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흔히 진정한 교육자를 만나기 힘든 세상이라고들 한다. 유지철의 딸로 인해 다친 학생은 공교롭게도 학교 이사장의 자녀다. 사건 해결을 위해 병실을 찾은 교사는 이사장의 딸을 공개적으로 편애하고 나섰다. 물론 그 방식은 우리가 평소 익히 봐왔던 것들이다. 공부를 못하거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한꺼번에 편견적 시선에 가둬둠으로써 그 반대편에 위치한 이사장의 딸을 자연스레 띄우는 방식 말이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욕망 실현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엿볼 수 있다. 간혹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돕기보다 주변에서 이를 촬영하느라 정신줄 놓은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선 혀를 끌끌 찼던 기억이 있다. 교통사고로 부상을 당해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 차량 폭발마저 시시각각 다가오는 절체절명의 순간, 드라마는 이들을 구조하기보다 SNS에 올려 어떻게든 관심을 유발할 요량으로 관련 영상을 촬영하는 사람의 모습을 비추며, 우리 내면속 욕망이 만들어내는 실체가 얼마나 무서울 수 있으며, 우리에게 정작 중요하고 필요한 게 무언지 의문부호를 던진다.

 

첫날 방영된 1회와 2회는 앞으로 전개될 극의 방향 제시 역할을 한다. 얼마나 임팩트 있게 다가오느냐에 따라 향후 인기의 척도를 가늠하게 된다. 연출이나 배우들의 연기는 흠 잡을 데 없었고, 사고 신 등 핵심 장면은 어색함 없이 잘 구현된 듯싶다. 출연 배우들의 면면도 흥미로웠다. 어리숙하고 다소 모자란 듯 보이면서도 가족에 대한 사랑과 의리 하나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열혈아빠 장혁은 그 특유의 미소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언뜻 보면 정우성의 그 헛헛한 웃음을 빼닮은 듯도 싶다. 평소 통통 튀는 연기가 인상 깊었던 손여은은 이번 작품에서도 그 끼를 온전히 발휘하고 있는 모습이다.

 

 

유지철의 딸 영선이 어느 날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는 뭐가 되고 싶은데?"

"아빠? 아빠가 되긴 뭐가 돼. 아빠는 이미 아빠잖아. 영선이 아빠..."

 

누군가의 아빠가 된다는 것, 그 누군가에게는 세상 어느 누구보다 가장 소중한 사람 가운데 하나로 각인된다는 의미일 테다. 그만큼 아빠라는 사람이 응당 짊어져야 할 책임감은 막중하다. 여기에 그토록 갈망하던 아빠라는 이름의 무거운 짐을 짊어진 한 남자가 있다. 이미 누군가의 아빠가 된 이상 이제 그에게 남은 건 좋은 아빠가 되는 일뿐이다. 앞으로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그가 펼쳐갈 이야기들은 과연 어떠한 류의 흥미진진한 내용일는지 그의 고군분투기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 이미지 출처 : POOQ(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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