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인성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새 날 2018. 9. 29.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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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SNS에 올라온 택배기사의 글이 새삼 화제다. 택배업종의 특성상 자연스레 수많은 계층과 접촉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해당 택배기사가 중산층과 서민층을 접해오면서 느꼈던 개인적인 소회를 글로 옮겨놓은 것이다.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한 마디로 말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은 인성이 좋고, 서민층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글의 소재가 다분히 자극적인 까닭에 격한 논쟁을 불러왔으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급기야 모 언론사를 통해 기사화되기에 이르렀다. ('[와글와글] 택배기사가 본 생활수준에 따른 인성' 참고)

 

해당 기사의 말미에 달린 댓글은 나의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택배기사의 주장에 공감하거나 동조하는 입장이 다수를 이룬다. 이를테면 돈과 인성은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고 말하는 척하다가도 종국에는 확실히 돈 많은 부자, 그리고 부자 동네가 더 친절하고 인성도 좋다는 식이다. 아무 생각 없이 이 기사를 읽고 댓글을 관심 있게 들여다본 사람들이라면 자칫 부자의 인성은 좋고, 서민의 인성은 나쁘다라는 그릇된 인식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그렇다면 해당 택배기사의 경험과 주장 하나만으로 부자는 정말로 인성이 좋은 것이며, 서민은 인성이 좋지 못하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지나친 일반화 아닐까? 인성이란 과연 무얼까? 한 사람의 됨됨이, 즉 성품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돈이 많고 적음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편하거나 불편함 따위의 인자가 되게 할지언정 사람의 됨됨이와는 그다지 관계가 없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인성까지 좋다면야 더이상 바랄 게 없겠으나 정량적 잣대가 아닌 정성적인 잣대에 해당하는 한 사람의 됨됨이가 돈으로 평가된다는 건 그야말로 소가 웃을 일이다.

 

 

그렇다면 부자가 인성이 더 좋다는 대중들의 보편적인 인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혹시 기업체에 입사할 때 치러야 하는 인성검사가 근래 사전에 학습되어지는 경향이 있고, 인성 교육을 의무화해놓은 세계 최초의 인성교육진흥법이라는 요상한 법이 만들어지면서 착해 보이게 한다며 인성마저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던 사례로 인한 결과물은 아닐까? 게다가 그동안 사교육은 돈 많은 계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을 가르는 확실한 잣대 역할을 해오지 않았던가. 인성이라는 정성적인 요소마저 이러한 잣대에 포함시켜놓더니 이제는 이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대중으로 하여금 착각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군가의 말마따나 돈이 많으면 불편함 따위를 느낄 겨를이 없으니 삶에 여유가 생길 테고, 그에 따라 마음 씀씀이도 조금은 너그러워질지 모른다. 물론 이 또한 경우에 따라 달라지는 사안이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러다 보면 태도나 행동을 통해 친절함이 절로 묻어나올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친절함이 곧 인성은 아니다. 인성을 이루고 완성하는 수많은 요소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택배기사가 중산층으로부터 느꼈다는 인성이란 바로 이 친절함이라는 태도적 가치에 해당하는 유형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친절이 인성으로 둔갑될 수 없는 건, 인성이란 교묘히 감춘다거나 의식적으로 좋게 표현한다고 하여 바뀌는 성질이 아닌 데 반해, 친절이란 속마음이나 사람의 됨됨이와는 별개로 겉으로 드러나는 그 자체로 평가되는 까닭이다.

 

 

단언컨대 부(富)가 한 사람의 인성을 결정 짓지는 않으며 그럴 수도 없다. 택배기사의 경우 서민층이 다소 불친절하게 자신을 대했던 숱한 경험으로 인해 그들의 인성이 좋지 않다는 인식으로 둔갑, 각인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상 그동안 인성이 좋지 않아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사례는 서민이 아닌 돈이 아주 많아 주체할 수 없던 사람들로부터 비롯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벌 2세나 3세의 갑질 행위야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불거졌던 사안이고, 정치권이나 관료 그리고 학계 등 모든 영역에서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는 인사들이 보여준 볼썽사나운 행태는 인성과는 아예 담 쌓은 성질의 것으로서, 이른바 서민층의 그것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 

 

이땅에 존재하는 언론과 언론인이라면 마땅히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는 등 공익을 지향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익에 눈이 멀어 이를 외면하고 특정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다 보니 기레기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가뜩이나 돈이면 안 되는 것 없노라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세상인데,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인성까지 쉽게 돈으로 살 수 있는 시대라 여기고 있고, 누구보다 객관적이어야 할 언론마저 이에 동조하고 나선 것 같아 여간 씁쓸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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