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합리적 의심이 절실한 시대

새 날 2018. 9. 28.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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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수제 쿠키라며 SNS를 통해 제과를 판매하던 '미미쿠키'가 실제로는 모 대형마트에서 비슷한 제품을 사들인 뒤 포장지만 슬쩍 바꿔 판매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해당 업체의 쿠키는 아이들 건강에 좋은 유기농 재료를 사용한다는 엄마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온라인 카페를 통해 판매되는 등 큰 인기를 누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그 입소문의 매개는 SNS 플랫폼이다. 누구나 쉽게 예상 가능하듯이 SNS는 해당 업체의 대중적인 인기를 끌어모으는 도구로써의 역할과 동시에 판매 채널로써도 활용돼왔다.

 

이번 사건은 대중들의 지지와 인기라는 게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현재 굳건히 믿고 있는 정보와 지식을 기반으로 이뤄진 진실 따위가 실제로는 신기루와 같은 허상일 수 있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울러 스스로를 대단히 합리적이며 우월하기 때문에 적어도 보통 사람들보다는 한 발 앞서 나가 있을 것이라는 우쭐한 생각이 얼마나 부질 없으며, 위험하고 성급한 판단일 수 있는지도 여실히 입증한다.

 

이러한 결과를 놓고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의 피해자격이자 온라인 맘카페에 둥지를 틀고 활동 중인 일부 엄마들을 표적 삼아 이들의 극성스러운(?) 행태를 성토하면서 맘충이라 비하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는 말도 안 되는 궤변이다. 오히려 맘충이라며 아이들의 엄마를 여혐 도구이자 대상화로 가둬놓으려 시도한 당사자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피해자로 둔갑할 수 있는 사안이다. 때문에 누가 누구를 탓하며 욕하고 나서는 건 이번 사태를 빌미로 의도적인 특정 성별 혐오에 나서려는 행위이자 사건을 엉뚱한 방향으로 왜곡시키려는 비겁한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유기농 수제 쿠키라고 하던 미미쿠키의 제품 실체는 알고 보니 시중 대형마트 등에서 판매 중인 일반 쿠키였으며, 덕분에 이제껏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업체를 신뢰하고 제품을 구입했던 많은 사람들을 일제히 멘붕에 빠뜨렸다. 요즘처럼 SNS가 발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는 초연결시대에, 게다가 쉽게 소통이 이뤄지는 세상이거늘,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느껴왔던 집단 지성의 힘은 모두 어디로 사라지고 이렇듯 어리석음만 남은 걸까?

 

'왜 우리는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는가'의 저자 군터 위크의 주장처럼 정말로 개인은 똑똑하고 집단은 무지해서 그런 걸까? 이번 사건은 집단 지성이 한데 모여 이뤄낸 성과물이라고 해도 검증되지 않은 정보와 지식은 도리어 해로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첨단기술의 진보는 인간을 더욱 멍청하게 만드는 경향이 짙다.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는 굳건한 믿음 때문인데, 이로 인해 인간의 사고력은 갈수록 퇴화하고 있고, 그러면 그럴수록 기술에 더욱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져들게 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이를테면 근래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사례와 같은 맥락이다.

 

ⓒ뉴시스


군터 위크는 보다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좁은 시야, 서로 어긋나고 있는 소통, 눈가림용 사기와 조작질 등 오늘날 조직의 작동 방식 곳곳에 도사린 함정이 집단 지성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유인이라 판단하고 있는 듯싶다. 여기에 정보의 객관성과는 별개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싶어하는 확증편향성이 더해지면서 심각한 오류를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성은 근래 사회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는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오늘자 기사를 살펴보니 한 BJ가 한밤중에 온라인 방송을 통해 사람을 죽이러 간다고 말한 뒤 뛰쳐나가는 바람에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마음을 졸이며 경찰에 신고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다행히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불특정다수로부터 인정 받기 위해 어떻게든 환심을 사고 관심을 유발하려는 이러한 일탈 행위들이 지금 이 시각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유튜브 등 영상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이참에 너 나 할 것 없이 인기에 편승하려는 시도 가운데 하나다. 급기야 다리를 부러뜨릴 테니 구독해달라는 읍소형 유튜버까지 등장한 판국이다. 

 

가짜뉴스의 횡행, 그리고 일부 BJ와 유튜버들의 일탈 행위 등은 일견 이번 미미쿠키 건과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실은 비슷한 맥락에서 빚어진 사건들이다. 지식사회를 넘어 정보화사회로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유사 이래 가장 현명하며 똑똑한 시대를 살고 있고, 덩달아 우리 자신까지 그렇게 된 것처럼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도 불거졌듯이 알고 보면 죄다 허당들이다.

 

 

수제 유기농 쿠키가 사람 몸에 이롭다고 하니 가격대가 조금 비싸더라도 가족들, 특히 아이들의 건강과 영양을 생각하는 엄마들이 지극히 선한 의지에서 집단 지성이랄 수 있는 SNS 및 카페 등의 평판에 의지해 선뜻 구매에 나섰으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을 법한 확증편향성과 미미쿠키 업주의 악의적인 사기 및 조작 행위가 더해져 집단 지성을 무력화, 모두를 피해자로 둔갑시키고 만 것이다.

 

이런 경우, 즉 당국의 규제와 감독으로부터 벗어난 사업자의 상행위는 개인이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되도록이면 이를 피하는 게 상책이지만, 어쩔 수 없이 이용해야 한다면, 너무도 당연한 진실이자 무조건 옳다고 생각되는 것들조차 그저 관성에 의지해 의사결정을 내리고 행동에 옮기기보다는 한 번쯤 비틀어보거나 원점에서부터 다시 생각하고 판단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합리적 의심이 절실한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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