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과거의 질곡으로 빚어낸 현재 '기억해줘'

새 날 2018. 9. 21.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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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그랬지. 하지만 이젠 아냐. 스무 살이 넘어서 독립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부모 탓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 삶을 오롯이 자신의 사랑으로만 채워가던 엄마를 끝없이 원망하기만 하던 안나, 해인이 "아직도 엄마를 원망하느냐"며 던진 질문에 불쑥 내놓은 답변이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누구나 과거의 사건, 부모의 양육방식, 성장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으나, 자신에게는 문제가 전혀 없다고 믿고 싶어하는 경향성 때문에 문제의 원인이 과거에만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시선을 과거가 아닌 미래로 향해야 한다." 


그러니까 안나의 답변과 아들러의 주장은 궤를 같이하고 있는 셈이다. 아들러의 철학이 내 마음에 쏙 들어왔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렇듯 우리의 삶이 마치 운명론처럼 과거의 질곡에 얽매인 채 질질 끌려다니기보다는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얼마든 이를 바꾸거나 헤쳐나갈 수 있게 하는 용기를 불어넣어준다는 점 때문이다. 


소설 '기억해줘'의 두 주인공 해인과 안나의 성장환경은 남달랐다. 해인의 엄마 혜진은 명석한 부모 덕분에 훌륭한 유전자를 타고 났으나 고등학생 시절 국내 최고 대학에 재학 중이던 오빠 친구와의 인연으로 인해 이후의 삶이 송두리째 뒤바뀌고 만다. 감춰져 있던 욕망의 근원을 우연히 건드리게 되면서부터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단 한 차례도 어긋남 없이 성장한 탓에 억눌린 그 무언가가 내재돼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이것이 분출되자 그녀는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된 것이다. 일탈이 일상으로 돌변하고 만다.



중매를 통해 결혼한 남편은 자신의 일에 충실한 매우 선량한 사람이었다. 혜진은 그를 존경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혜진의 내재돼 있던 욕망을 해소시켜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니 적임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욕망을 좇아 불도 마다 않고 뛰어드는 불나방과 진배 없었다. 해인의 여동생이었던 딸아이의 느닷없는 죽음은 그녀를 더욱 나락으로 떨어뜨리게 하는 유인이 되게 한다. 해인의 말수가 유독 적고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 못하는 데에는 이러한 가정환경이 한 몫 단단히 거들고 있는 듯싶다. 


한편 안나의 엄마 정인에게는 사랑이 곧 삶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었다. 급작스레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 것도 전부 이 유부남과의 사랑 때문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안나의 의중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안나는 사랑 때문에 뉴욕으로 갔다가 또 다시 사랑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이 말도 안 되는 운명이 그저 피곤하기만 했다. 왜 자신의 삶에 대해선 일절 고려하지 않는 것인지 야속했다.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엄마의 삶이 계획되고 실행되어지는 동안 안나가 끼어들 틈이라곤 일절 없었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그녀의 삶은 배척되기 일쑤였다. 



각기 다른 상처와 결핍을 안고 살아가던 해인과 안나의 첫 만남은 다름 아닌 뉴욕에서 이뤄졌다. 아직은 앳된 열일곱,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해인과 글쓰기를 좋아했던 안나는 머나먼 이국 땅에서 같은 한국인으로서, 아울러 사뭇 다르면서도 엇비슷한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로서 서로 인연을 맺고 이를 이어가게 된다. 


한편 부모를 비롯하여 어느 누구도 해인을 원망하지는 않았으나 해인 스스로는 동생의 죽음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더구나 지울 수 없는 상처로 각인된 동생의 죽음이 엄마의 애정을 간절히 바라는 형태로 발현되고 있었으나 어쩐 일인지 엄마와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엄마가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며 그의 삶에도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질 때 안나를 만나게 된 건 그나마 행운이었다. 


집착과도 비슷한, 비뚤어진 엄마만의 사랑을 좇았던 삶 덕분에 안나는 일찌감치 독립심을 키울 수 있었다. 그런 그녀 앞에 느닷없이 나타난 해인이라는 소년은 안나에겐 일종의 해방구였다.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가보자. 스무 살이 넘어 독립하게 되면 부모 탓을 해선 안 된다는 말은 곧 아들러의 철학처럼 우리의 시선을 과거와 단절시키고 오로지 미래로 향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것 같다. 만일 그렇다면, 즉 시선을 미래로 향한다면, 우리는 과거의 질곡을 완전히 끊어내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걸까? 과연 그럴까? 해인과 안나의 현재 삶을 들여다보자.


30대가 된 해인에게는 연인이 있었다. 하지만 왠지 자신의 곁을 떠날 것 같은 느낌이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그의 곁을 훌훌 떠나버리고 만다. 다른 남자를 사귀고 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인의 마음에는 전혀 동요가 일지 않는다. 해인은 그녀가 혹여 결혼한 사이였다 해도 왜 그랬냐며 묻기보다는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를 지키며 일상을 묵묵히 살아가는 방식을 택할 것이다. 여전히 그림을 그리면서 말이다. 


안나는 소녀 적 꿈을 이뤄 마침내 글을 쓰는 작가가 되어 있었다. 아울러 사랑하는 사람도 생겼다. 공교롭게도 유부남이었다. 30대 안나의 외모는 그맘때 엄마 정인의 외모를 쏙 빼닮았다. 그토록 원망하면서도 은근슬쩍 엄마를 곁에서 도와주던 딸이 어느덧 성장하여 엄마처럼 매혹적인 외모를 갖추게 되었고,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번역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엄마처럼 그녀 역시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게 되었으며, 엄마의 사랑을 그토록 싫어했으면서도 그녀 역시 엄마와 비슷한 방식의 사랑을 이어가고 있었다.  



저자  임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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