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일그러진 욕망을 향한 통렬한 풍자극 '상류사회'

새 날 2018. 8. 31.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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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대학 경제학과 교수인 장태준(박해일)은 근래 각종 미디어 매체에 자주 등장하면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여가던 와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상가 세입자들의 규탄 집회에 참석했다가 한 노인이 자신의 눈 앞에서 분신하는 모습을 포착하게 되고, 분초를 다퉈야 하는 급박한 사안임을 직감한 그가 분신노인에게 다가가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던져 구하면서 권력으로부터 눈도장을 제대로 찍히며 민국당 대표로부터 차기 총선 공천을 제안 받기에 이른다. 이러한 기회를 마다할 리 없는 그였다.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인 장태준은 본격적인 정치인 몸 만들기에 돌입한다.


한편 그의 아내 오수연(수애)은 미래미술관의 부관장으로서 차기 관장이 되고픈 욕망을 결코 숨기지 않는, 능력이 출중한 데다가 꽤 강단이 있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현재 관장인 이화란(라미란)은 물론, 미술관의 주인인 미래그룹 한용석(윤제문)에게 접근,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를 이용해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신의 의지를 줄곧 내비쳐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미술관의 재개관을 앞두고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현지 미술품 경매에 참석한 그녀, 불법 외환 거래 혐의로 검찰에 긴급 체포되는데..



장태준의 국회의원 만들기 과정은 그리 단순치가 않다.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 오수연의 손끝에서 시작되어 미래그룹을 거쳐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가는 매우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온갖 권모술수가 더해지고 조폭 등 물리적인 수단이 개입된다. 오수연과 장태준, 정상을 밟고 올라서려는 욕망은 한결 같지만, 아울러 기회가 왔을 때 이를 낚아채는 능력도 공히 탁월하지만, 본디 성향은 약간 다른 편이다.



오수연은 애초 욕망이라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채 초고속으로 질주하려는 속내를 내비치면서 그 어떠한 수단도 마다하지 않고 덤벼드는 인물이지만, 장태준에게는 아직 일말의 양심과 인간적인 면모가 남아 있었던 탓인지 정당하지 못한 사실 앞에서는 다소 주춤거리곤 한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국회의원이라는 욕망이 내면의 울림을 압도하는 바람에 순간 눈을 질끈 감고 오수연과 마찬가지로 절대로 하차할 수 없는 욕망의 엘리베이터에 과감히 올라타고 말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상류사회란 과연 어떤 곳일까?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오수연과 장태준 같은 사람들이 그곳에 편입되려고 이리도 발버둥을 치는 걸까? 영화 '하이-라이즈'에서는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이른바 상류 계층이 거주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커다란 빌딩이 등장한다. 누구나 조금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모습은 욕망의 날 것을 보는 듯싶어 조금은 불편하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갈등이 빚어지곤 한다. 꼭대기, 그러니까 펜트하우스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상류층이 거주하는 별천지 세상으로 묘사돼 있듯이 영화 '상류사회'에서 부부가 욕망을 숨기지 않고 있는 건 이 빌딩으로 말하자면 다름 아닌 단 한 층이라도 자꾸만 고층으로 올라가려는 온갖 종류의 시도일 테다.


미래그룹 회장 한용석(윤제문)은 하이-라이즈 별천지에 비견될 만한 놀라운 세상을 갖춰놓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란 고작 예술로 포장되거나 빙자한 욕망덩어리의 배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거대 목재 스피커에서 웅장하게 울려퍼지는 고전 음악과 함께 끈적끈적한 욕망을 배설하는 그의 모습은 자못 그로데스크하기까지 하다. 돈과 권력의 이면에는 으레 폭력이 뒤따르곤 하는데, 한용석이 가면을 뒤집어쓰고 주먹을 휘두르거나 각목으로 내리치던 장면은 수년 전 모 재벌 회장이 아들의 앙갚음을 대신했던 사건이나 운전기사 등을 향한 갑질 폭행 행위를 자연스레 떠오르게 한다.



상류사회에 속한 이들은 많은 돈을 갖고 있으면서도 단 1원이라도 허투루 쓰는 일이 없다. 무서울 정도로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때문에 이러한 돈을 지키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때로는 사람의 목숨까지 거래하거나 흥정의 대상으로 삼곤 한다. 이렇듯 우아한 이미지 뒤에 감춰진 폭력적인 본성, 그리고 예술로 교묘히 포장한 욕망 분출 행위를 일삼는 상류사회로의 진입을 꿈꾸며 기꺼이 그들의 불법행위에 한 발 걸친 채 모른 척 값비싼 옷차림으로 온몸을 휘감고 부드러운 가짜 미소를 흘리려는 그들은 솔직히 역겹기 짝이 없다.



이 작품은 욕망을 결코 숨기지 않는 현대사회를 비틀고자 제작된 통렬한 풍자극이건만, 일본 AV배우의 출연 등이 화제로 등극하는 바람에 정작 본질적인 메시지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점은 참으로 안타깝다. 아울러 두 부부의 욕망이 고조되어가다가 본의 아니게 덜컥 제동이 걸리면서 극을 과연 어떤 식으로 마무리하게 될 것인가 기대를 모았건만, 특별한 반전도 없거니와 밋밋한 데다가 다소 억지스러운 감동을 유도한 대목은 무척 아쉽게 다가온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극 중 미래그룹 한 회장과 민국당 대표(남문철)가 나누는 대사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론 정확한 표현은 아니니 그냥 취지만 헤아려주기 바란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돈에 만족하는 사람을 못 봤어요."

"자리는 또 어떤가요. 현재의 위치에 만족해야 하는데 더 높은 곳만 탐하네요."


그나마 우리 사회가 이러한 흙탕물 속에서도 유지될 수 있는 건 극 중 언급되고 있는 이른바 '꼴통'들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조검사로 분한 장소연은 윗선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미래미술관의 돈세탁과 그와 연루된 이면을 샅샅이, 그리고 깐깐하게 파헤친다. 이러한 그녀의 면면을 향해 장태준은 꼴통이라며 썩소와 함께 농담을 던진다. 조검사 역시 장태준더러 꼴통이라 호칭한다. 그렇다면 장태준은 도대체 무슨 짓을 벌였길래 그녀로부터 꼴통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 걸까? 이는 영화관에서 확인하자.



감독  변혁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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