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세계 '고양이'

새 날 2018. 8. 26.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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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테트는 올해로 3살된 암컷 고양이다. 그맘때 고양이라면 으레 그러하듯이, 아울러 자신의 집사인 나탈리가 그러한 것처럼 바스테트는 자신의 외모가 무척 빼어나다고 생각하는 이른바 자뻑 고양이다. 덕분에 웬만한 수컷 고양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바스테트에게는 여느 고양이들로부터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특기 하나가 있다. 마음만 먹으면 다른 종족과 기꺼이 소통이 가능하다고 여기고 있던 참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바스테트의 잇따른 소통 시도가 영 신통치 않은 결과를 빚곤 하지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바스테트 앞에 문득 나타난 의문의 수컷 고양이 피타고라스, 이 녀석은 다른 놈들과 확연히 달랐다. 샴 고양이 품종만이 갖는 특징 때문만은 아니다. 어딘가 모르게 기품이 느껴지는 데다가 결코 가볍지 않은 행동과 말투는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끌리는 구석이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피타고라스는 예사 고양이가 아니었다. 외모부터 남달랐다.


정수리에 USB단자가 심어진 채 뇌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른바 제3의 눈이다. 덕분에 그가 갖추고 있는 지식은 놀라울 정도다. 집사가 인간의 수많은 지식을 피타고라스에게 전수해준 덕분이다. 바스테트는 피타고라스와 만나 그의 방대한 지식을 전해 들을수록 애정이 더욱 깊어짐을 느끼게 된다. 한편 인간 세상은 각종 시위와 폭력 그리고 테러 행위로 몸살을 앓고 있던 참이다. 분위기는 날이 갈수록 험악해져 갔으며, 전쟁의 위협마저 고조돼 가던 찰나다. 때마침 전염병 페스트가 도시를 휩쓰는 바람에 쥐떼가 도시를 점령하고, 인간들은 달아나는 사태가 빚어진다. 바스테트와 피타고라스는 쥐떼와의 전쟁을 벌이기 위해 의기투합하는데...



이 책은 진보를 거듭해온 인간의 오만이 극에 달하면서 또 다시 2보 후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상황, 실험실에서 실험 도구화됐던 고양이를 통해 인간의 지식을 수신케 하고, 이종 생물간의 소통에 능한 고양이로 하여금 인간과의 소통을 시도케 하는 등 두 고양이 피타고라스와 바스테트의 개인기를 이용하여 위기를 돌파하면서 인간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소설이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는 그동안 3보 전진, 2보 후퇴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진보해 왔다.


물론 우스갯소리일 테지만, 만물의 영장 인간을 지배하는 건 사실상 고양이이며, 이의 증거로 수많은 인간들이 고양이 집사를 자처한다는 점을 꼽곤 한다. 하지만 인간의 오만한 속성은 고양이라고 하여 예외일 수 없다. 반려동물을 입양하여 기르는 과정 속에서 인간의 잔인함은 극에 달하곤 한다. 오로지 인간의 잣대에 따라 개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의 생식 기능을 거세, 번식 본능의 싹을 제거하거나 갓 낳은 고양이 새끼를 없애버리는 일 등은 다반사로 벌어진다.



바스테트의 집사인 나탈리가 새로이 입양해온 수컷 고양이 펠릭스의 중성화 수술 그리고 바스테트가 낳은 새끼를 나탈리의 연인 토마가 변기물에 내려보내는 장면은 독자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 함은 물론 안타까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씁쓸하게 하는 건 거세 당한 뒤 그저 주어진 환경에 쉽게 순응하고 마는 펠릭스와 새끼를 잃은 분노를 온전히 표출하지 못해 기껏해야 소소한 복수전을 펼치던 바스테트의 힘 없는 발악 속에서 찾게 된다.


사람과 공존을 꾀해야 하는, 오로지 반려동물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동안 인간이 동물들에게 아무런 죄 의식 없이 행해온 몹쓸 짓들이 과연 온당한 것인가는 한 번쯤 되짚어봐야 할 대목이 아닐까 싶다. 이렇듯 지구의 모든 생물들 가운데 자신이 가장 우월하다는 착각 속에 빠진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인간은 올바르고 건전한 소통 방식보다는 테러나 폭력 그리고 전쟁 등의 극단적인 소통 방식을 선호해온 덕분에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자멸의 길로 들어선 것임이 분명하다.



이 책의 주인공인 바스테트의 장점을 꼽자면 듣는 귀가 발달해 있으며, 사고가 유연하고 개방적이라는 점일 테다. 피타고라스를 만나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면서 사유의 범위가 대폭 넓어지는 등 성장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빨라진다는 점도 그에 덧붙일 수 있겠다. 인간이 그동안 쌓아온 지식과 물질문명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피타고라스는 인류의 지식을 이식 받은 유일한 고양이다. 다만 자신의 생각이나 의사를 인간에게 발신할 수는 없는, 즉 소통 능력은 없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인간과의 소통, 더 나아가 이종 생물간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나머지 반쪽 능력은 바스테트가 선보임으로써 비로소 완전체가 되게 하는 것이다. 지식묘와 철학묘의 절묘한 콜라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인간이 축적해온 지식은 모두 책 속에 들어 있으며, 우리는 결국 책을 통해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의 저자 임승수 역시 책 한 권을 남기기 위해 저자가 쏟은 시간을 생각하면 시간을 버는 최고의 남는 장사는 결국 독서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독서를 통해 저자가 아낌 없이 쏟아부은 긴 시간과 열정의 결정체인 지식 및 경험을 비교적 짧은 시간에 압축하여 얻어가는 셈이니 이처럼 꿀이득인 게 또 어디 있겠는가 싶다.



저자  베르나르 베르베르

역자  전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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