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사랑에 대한 집요한 탐사 '사랑의 생애'

새 날 2018. 8. 24.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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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배와 선희는 같은 대학 같은 동아리 회원으로서 이른바 캠퍼스 커플이다. 형배가 선희보다 두 살 많다. 두 사람은 대개의 커플이 그러하듯이 수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술집에서 술과 함께 밤을 지새우곤 했다.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사랑 역시 차츰 무르익어갔다. 하지만 선희가 그를 사랑한다며 한 발짝 다가서자 정작 형배는 "나는 사랑할 자격이 없어" 라며 두 발짝 뒤로 물러서고 만다. 두 사람은 그렇게 헤어졌다.


그로부터 정확히 2년 10개월이 흐른 뒤, 두 사람은 지인의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3년에 가까운 시간의 흐름은 많은 것들을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선희도 그랬다. 어이없게 헤어졌던 당시와 비교해볼 때 많은 부분에서 달라져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게 되니 형배의 마음은 괜시리 설렜다. 조심스레 용기를 내보기로 마음먹는다. 그녀에게 고백한 것이다. 사랑한다고..


물론 선희에게 있어 이러한 상황은 다소 뜬금없다. 아니 솔직히 당혹스럽다. 사실 그녀는 그와 헤어진 뒤 직무상 알게 된 영석과 교제 중이었다. 영석은 선희에게 있어 전혀 관심 밖의 인물이었으며, 되레 그녀는 형배를 여전히 잊지 못하던 와중이었다. 평소 꿈에 그리던 작가가 된 자신에게 형배가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주기를 바랐지만, 비록 대행 역할극에 불과했음에도 이를 실행에 옮긴 건 결국 영석이었으며,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은 연을 이어가게 된다.



작가는 이 책의 서문을 통해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미묘하고 당황스러운 현상들을 탐사하는 데 할애한 소설이라 밝히고 있다. 실제로 여러 쌍의 연인과 부부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소한 사건과 감정의 변화 그리고 갈등 따위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사랑이라는 테마와 관련하여 아주 집요할 정도로 깊숙이 그리고 세세하게 파고든다. 평소 언어유희를 즐겨했던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사용된 단어나 문장의 흐름이 아주 유려하다.


사실은 책의 제목부터 심상치가 않다. '사랑의 생애'라니..


관념적 존재인 사랑을 마치 생명체 다루듯이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생애란 무엇일까. 한 개체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눈을 감을 때까지의 전 과정을 일컫는다. 사랑이 발아하여 성장하고 다시 소멸할 때까지의 시간이 다름 아닌 사랑의 생애일 테다. 작가는 영화속 에이리언이 사람을 숙주 삼아 그들 스스로의 생명을 이어갔던 것처럼 사랑 역시 사람을 숙주 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즉,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며 그 안에서 사랑이 생명을 이어간다는 매우 기발한 발상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어떻게 생을 시작할까? 작가는 누군가를 사랑하기로 작정한 순간, 사람의 내부로부터 사랑의 싹이 움튼다고 봤다. 안타깝게도 숙주인 우리는 몸 안으로 사랑이 들어오거나 혹은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어떠한 주체적인 역할조차 하지 못한다고 한다. 아울러 자격이 있다고 하여 사랑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사랑이 들어온 뒤에야 비로소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단다.


사실 형배는 처음부터 줄곧 선희를 사랑해왔다. 다만, 사랑이란 자격증을 딴 뒤 특정 자격을 갖추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눈이 멀면 절로 사랑의 싹이 트게 되고 자격을 부여 받게 되는 과정임에도 형배의 선희를 향한 사랑에 자격이 없다는 운운으로 인해 숙주로서의 역할이 흔들리게 되고 그 사랑은 이내 방황이라는 운명을 맞이하고 만다. 이때 형배가 선희로부터 확인하게 된 건 경멸뿐이었다. 이후 선희를 숙주 삼은 사랑의 대상은 형배가 아닌 영석으로 옮겨간다.


물론 선희 역시 형배와 헤어졌지만 마음 한켠엔 늘 그와 함께했으면 하는 미련이 남아 있었다. 미련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 미련은 우연한 기회에 영석을 향한 연민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사랑의 숙주는 그대로인데 사랑 자체가 변하게 된 것이다. "사랑이 변하나요?"가 절로 떠오르는 순간이다. 성장 환경 탓에 결핍을 필연으로 안고 살아온 영석에게 있어 선희는 그 결핍을 메워주는 은인이었다. 남녀간 이뤄지는 사랑에는 원래 상대방의 결핍을 메워주는 고유의 역할이 있긴 하지만, 영석과 선희의 그것은 비중이 조금 더 컸다.



그렇게 처음 발아한 사랑은 성장해 나가다가 숙주를 새로이 선택, 옮겨간 뒤 남은 생애를 지속하곤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아니 사랑의 종류가 워낙 다양한 만큼 이를 일일이 헤아린다는 건 의미 없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형배의 엄마처럼 상대의 사랑이 떠나가든 그렇지 않든 '처음으로 사랑하고 유일하게 사랑한 사람'을 향한 지고지순한 방식도 있겠지만, 준호처럼 결혼은 사랑과 무관하게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영원불변하는 사랑의 신화가 보호하는 제도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보다 많은 상대와 연애하는 방식도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사랑이 변하나요"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동일한 제목의 성시경 노래도 있다. 현실에서의 사랑은 변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울 수도 있다.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되는 삼각관계와 자유연애만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주의 주장 그리고 자신을 버리고 떠나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구걸한 남편을 끝까지 끌어안는 이해할 수 없는 행위 등 저자의 생각처럼 사랑이란 어쩌면 사랑의 숙주에 불과한 사람이 이에 대해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 없으며, 이성 사이에서 벌어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든 일들이 전부 사랑이 시킨 짓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  이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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