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신경외과 의사가 선보이는 깜짝 마술쇼 '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

새 날 2018. 8. 17.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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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이 짊어진 삶의 무게는 고작 12살에 불과한 소년 혼자 감내하기에는 무척 버거운 성질의 것이었다. 아빠는 특별한 직업 없이 술만 먹었다 하면 행패를 일삼는 등 전형적인 술주정뱅이에, 엄마는 아빠의 영향 탓인지 우울증에 시달리며 약물에 의지한 채 오로지 집안에만 콕 박혀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환자였다. 이들 가정은 정부의 지원 없이는 생계가 애초 불가능할 정도로 가난에 찌들려 있던 터다.


이 즈음 짐은 마술에 매료돼 있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놓여 있는데 반해 마술만은 자신이 지닌 기술의 난이도에 따라 관객들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짐은 동네에 마술가게가 있음을 알게 된다. 자석에 이끌리듯 그의 발길은 절로 그곳으로 향했다. 마술가게에는 루스라 불리는 할머니가 있었는데, 짐에게 진짜 마술을 가르쳐주겠노라며 제안해온다.



최근 한반도를 휩쓴 불볕더위를 연상케하는, 무려 40도를 웃도는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짐은 루스의 가르침을 배우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루스는 수 년 전 우연히 학교를 찾은 의사에 매료된 이래 장래희망으로 한결 같이 의사를 꼽아왔다.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루스가 가르쳐준 마술 기법을 열심히 수련,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의대에 진학하면서 꿈에 한 발자욱 다가서는데... 


이 책은 스탠퍼드 대학 신경외과 교수이자 의사인 제임스 도티의 삶을 반추해놓은 회고록에 가깝다. 어릴 적 마술가게에서 터득한 '루스의 마술' 덕분에 의사가 되고자 했던 꿈을 이루고, 삶의 목표 가운데 하나인 많은 돈과 멋진 차, 그리고 어느 누구와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게 되었음에도 어딘가 모르게 공허함을 느끼던 제임스 도티가, 루스의 가르침으로부터 너무 멀리 벗어났음을 뒤늦게 깨닫고 진정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뇌의 기능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이 진정 가치 있는가의 여부를 알려주는 심장과의 협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터득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마술의 근간은 호기심이다. 관객의 호기심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그 마술쇼는 이미 실패한 셈이다. '루스의 마술'이라고 하니 상당히 거창한 듯싶지만 사실 알고 보면 특별할 건 없다. 루스 할머니가 말하는 마술은 몸의 긴장 풀기, 마음 풀기, 마음 열기, 그리고 의도를 명확하게 하기 등 총 네 단계로 이뤄져 있다. 호흡법부터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등 어떻게 보면 명상과 호흡을 기반으로 하는 요가와 흡사하다.


짐은 루스의 마술 기법을 열심히 익혀온 데다가 실전에서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해온 덕분에 아무리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차근차근 달성해나간다. 대학 입학부터 의대 진학까지, 그의 삶은 장애물의 연속이었으나 루스의 마술에 의지해 이를 하나하나 극복하고, 이후의 모든 일들 또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주도해 나간다.



어느덧 성공한 의사에서 벤처기업가로 변신한 짐은 기막힌 사업 수완 덕분에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손에 거머쥐게 된다. 짐은 사실상 돈을 모으고 그에 부수적으로 딸려 오는 권력을 키우는 재미에 흠뻑 빠져 살았다. 그 때문일까? 어느 순간 건방지기 이를 데 없는 인물로 돌변한 짐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톡톡히 사기 시작한다. 실패는 성공 과정과는 달리 한순간이었다. 닷컴 거품이 꺼짐과 동시에 그의 모든 것을 일시에 앗아갔다.


비로소 자신이 제대로 된 마술사인가를 되돌아보게 된 짐, 문득 루스의 가르침 가운데 한 문장을 떠올려본다. "네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언제나 너한테 최선의 것은 아니다" 신경외과 의사였던 까닭에 오로지 뇌에만 집중해온 제임스 도티는 심장이 뇌에 보내오는 감정과 관계를 잇도록 해주는 신호를 무시해온 경향이 있다. 이후 뇌와 심장의 통합 지능체계에 대한 관심을 높이며, 삶의 진정한 변화를 이끄는 요체로 마음의 문을 여는 10가지 목록을 꼽아 실천해 오고 있던 터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한 사실과 커다란 실패를 맛보며 삶의 가치관이 변모했다는 점 등은 어쩌면 식상한 이야기에 해당할지 모르지만, 마술과 마술가게라는 흥미로운 설정, 그리고 물질만능 사조가 팽배한 가운데 오로지 성공만을 바라보며 내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마음의 문을 여는 목록으로 꼽은 연민, 존엄성, 평정, 용서, 감사, 겸손, 진정성, 정의, 친절, 사랑 등 10가지의 가치는 인간다움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한번쯤 곱씹어볼 만한 대목 아닐까?



저자  제임스 도티

역자  주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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