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인간을 향한 자연의 엄중한 경고

새 날 2018. 8. 5.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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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폭풍이 휘몰아치는 메마른 대기, 모래만 푸석거리는 땅에서는 그 어떠한 종류의 작물을 심어도 소용이 없다. 지구는 더 이상 생명체가 사는 행성이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화됐다. 지구를 대체할 행성을 찾아 우주로 눈을 돌리는 인류... 디스토피아로 돌변한 지구 탈출 프로젝트로 시작되는 영화 '인터스텔라'의 이야기다. 지구의 자전 탓에 우리나라가 위치한 북반구 중위도엔 연중 편서풍이 불어온다. 우리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이러한 자연 환경 속에서 중국이라는 국가가 한반도의 좌측 바로 옆에 붙어 있다는 현실은 일종의 재앙에 가깝다.


'세계의 굴뚝'을 자처하는 중국의 대기오염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만의 논란거리가 아닐 만큼 심각하다. 편서풍을 타고 중국으로부터 밀려드는 대기 오염물질의 양과 빈도는 우리가 인내할 수 있는 임계치를 훌쩍 넘어선 지 이미 오래이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로 황사가 몰려오는 봄철과 겨울철에만 우리에게 영향을 끼쳤는데, 최근에는 시도 때도 없다. 연중 무휴에 가깝다.


영화 '인터스텔라'


물론 우리나라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오염물질의 양 또한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둘이 합쳐지면서 제대로 된 상승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언젠가부터 창문을 열기 전 미세먼지 예보부터 확인하는 게 일상이 돼버렸다. 야외를 그나마 맘 편히 활보하기 위해서라면 이제 마스크는 선택이 아닌 필수품이 됐다. 그런데 올 여름철 찜통더위가 본격 시작된 이래 한낮 기온이 40도까지 치솟고, 최저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등 미증유의 초열대야 현상을 경험하면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기에 대한 우려는 어느 순간 우리의 뇌리에서 일순간 사라졌다.



미세먼지에 의한 효과는 당장 눈에 드러나는 요소가 아니지만 무더위는 신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온전하게 놔두지를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생물은 위기 상황에 내몰리게 되는 경우 본능에 따라 움직이게끔 프로그램화돼 있다. 일종의 생존본능이다. 자연스럽게 덥지 않은 곳을 찾아가게 마련이다. 때문에 오늘자 머니투데이의 '폭염에 대처하는 ‘문화적’ 방법…“25도 이하 공간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기사는 살인 더위를 피하려는 생물의 본능에 가까운 엑소더스 장면을 연상시킨다.


ⓒ머니투데이


해당 기사에 따르면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세종문화회관 그리고 예술의전당 등은 악기 및 전시품 보존을 위해 낮은 온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시행하는 에너지 규제 정책의 제외 구역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25도 이하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공연장과 전시회장 등이 대중들에게 최적의 실내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전통적인 피서지인 해수욕장 등 야외에는 피서객이 대폭 줄어들어 인근 상인들이 울상을 짓고 있는 반면, 백화점과 쇼핑몰, 극장 등의 실내 공간에는 수많은 인파로 연일 미어터져 특수를 누린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문득 영상 하나가 떠오른다. 화성을 공간적 배경으로 제작된 SF영화 '토탈 리콜'속 장면이다. 화성의 대기는 인간이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이 공동으로 머물 수 있도록 건물을 짓고 이 곳에 공기를 공급해주어야 하는 이유다. 때문에 인간이 숨쉴 수 있는 공기가 이곳에서는 곧 무기다. 시원한 실내공간을 찾아 떠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토탈 리콜'이나 '인터스텔라'에서처럼 극단적인 상황의 디스토피아까지는 아니더라도 문득 그와 비슷한 영상 장면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영화 '토탈 리콜'


요즘 때가 때이니 만큼 삼성전자의 무풍 에어컨 광고가 연일 공중파TV의 광고 시간대를 장악하고 있다. 물 만난 고기마냥, 혹은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상황을 실제 눈으로 확인시켜 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말이다. 에어컨이 작동 중인 실내에서 한 무리의 가족이 무척 행복해 보이는 일상을 즐기는 모습이다. 광고 속에서는 이렇듯 철저하게 실내의 쾌적한 환경만을 비춘다. 그렇다면 그곳으로부터 단 몇 발자욱 옮긴 문 밖의 상황은 과연 어떨까?


실내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생산된 열에너지를 실외기를 통해 뿜어내느라 가뜩이나 40도를 육박하는 바깥의 환경은 지옥이 따로 없다. 만에 하나 초열대야 현상이 일상이 되고 한낮의 온도가 40도를 넘나들게 된다면 사실상 실외에서의 생활은 힘들어진다고 판단된다. 이쯤 되면 여타의 생활공간으로의 이동을 위해서는 바깥공기와 완벽하게 차단된, 집과 연결된 통로가 반드시 필요해지고 지하철 등과 같은 지하공간이 시민들의 여름철 주요 활동무대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구 온난화로 대변되는 작금의 기후변화의 원인이 과도한 화석연료의 사용 때문이라는 가설이 존재하는 건 엄연한 현실이다. 이로 인해 탄소 배출량을 규제하자는 국제적 합의가 도출되는 등 긴밀한 움직임이 있었으나 얼마 전 세계 2위의 탄소 배출국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기후 협약을 일방적으로 탈퇴하면서 이마저도 흐지부지되고 마는 실정이다. 비록 가설이긴 하나 그나마 급격한 기후변화를 예방할 수 있는 한 가닥의 가능성마저 사라진 지금 우리 지구는 올해 유난히 뜨거운 여름철을 맞이하고 있다. 인간의 오만에 대한 자연의 엄중한 경고 신호 아닐까?


문제는 앞으로 이러한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리라는 전망이다. 여름철은 너무 뜨거워 바깥 활동이 불가능해지고, 그 외의 계절은 인터스텔라급 대기오염으로 인해 야외 생활이 힘들어지는, 지금 우리 삶의 터전인 지구는 영화에서 연출됐던 디스토피아를 향해 맹렬히 달려가고 있는 건 아닐까? 범상치 않은 사상 초유의 무더위를 몸소 겪으면서 앞서 언급한 장면들이 결코 먼 미래의 모습이 아닐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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