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불의 무한궤도 초열대야 현상은 예고된 재앙

새 날 2018. 8. 4.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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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낮 기온이 섭씨 40도에 육박할 만큼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급기야 지난 1일과 2일 밤에는 최저기온이 30도를 웃도는 초열대 현상까지 나타났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고 무더위에 지쳐 밤잠을 이루지 못 한 채 밤새 뒤척인 건 말할 것도 없다. 열대야 위에 초열대야가 존재하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무언가 한계를 뛰어넘은 느낌이다. 물론 이러한 한계 돌파는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될 성질의 것이지만 말이다.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기에 그 여파가 하루종일 이어져 정상적인 생활마저 어렵게 한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금세 땀을 줄줄 흘려야 하는 통에 활동을 최대한 억제할 수밖에 없다. 흡사 좀비가 된 듯한 느낌이다.


한낮의 바깥은 생지옥이 따로 없다. 도시의 아스팔트는 스스로도 버티기가 어려웠던 듯 열기를 연신 뿜어내기 바쁘다. 달궈질 대로 달궈진 대기는 호흡기에 화상을 입히게 할 것처럼 뜨겁다 못해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이쯤 되면 서울을 '서프리카'로 바꿔 불러야 할 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싼 전기요금 때문에 대다수의 서민들에게 있어 이 무더위 시즌을 나는 일은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에어컨을 마음 대로 활용하기 어려우니 대안을 찾느라 분주하다. 40도에 육박하는 환경에서는 선풍기가 제 역할을 하지 못 한다.


이를 보완한 제품이 냉매 및 얼음물을 활용한 냉풍기인데, 선풍기보다는 바람이 조금 차가울지 몰라도 실내 습도를 높이는 탓에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 등 미덥지 못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시시때때로 얼음과 물을 보충해야 하는 일은 번거롭기 짝이 없다. 위생적인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 하다는 측면도 구입을 꺼리게 하는 대목이다. 자연스레 이동형 에어컨이나 창문형 에어컨 등으로 관심을 돌리게 된다. 전력 소모 측면에서 일반 에어컨보다 월등히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제품 역시 소음이나 냉각 효과 등에서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이 대세다. 결국 에어컨으로의 수렴이다. 



에어컨은 물질의 상태변화라는 과학적 원리가 적용된 이기(利器)이다. 즉, 융해, 기화 등 열을 흡수하는 물질의 상태변화는 주변의 열을 빼앗아 온도를 내려가게 하고, 반대로 응고, 액화 등 열을 방출하는 물질의 상태변화는 주변으로 열을 방출시켜 온도를 높인다. 에어컨은 액체 냉매를 기화, 주변의 열을 빼앗아 실내의 온도를 낮추게 하며, 반대로 기화됐던 냉매를 액화, 앞서 낮추는 데 활용됐던 열에너지만큼을 밖으로 방출시킨다. 실외기 부근을 지날 때 뜨거운 바람에 불쾌감을 호소해야 했던 경험은 바로 이러한 연유 때문이다.


한반도의 여름철 기온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어느덧 에어컨은 생활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집집마다 그리고 사무실이나 상점마다, 심지어 자동차마다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실내에서 시원하게 체감할 수 있을 만큼 인위적으로 크게 낮춘 온도에 비례한 그 뜨거운 열에너지를 실외에 고스란히 방출한다고 한번 생각해 보자. 가뜩이나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이다. 실외에서 동시에 내뿜어지는 이 엄청난 열에너지들은 모두 어디로 향할까?


ⓒ네이버


서울처럼 인구가 몰려 있는 대도시는 열섬 현상을 피해가기 어렵다. 열섬 현상이란 낮 동안 데워진 아스팔트 도로와 콘크리트 건물 등이 밤에 열을 방출하면서 기온을 낮추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더워지게 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고층 빌딩과 아파트, 그리고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도로로 인해 바람길이 막히고 공기가 순환하지 못 해 기온이 올라가게 되는 원리다. 가정과 사무실, 각종 상점 그리고 거리 위에 즐비한 차량들 저마다 가동하는 에어컨으로부터 방출된 방대한 양의 열에너지는 이러한 현상을 한층 가속화시킨다.


숲과 녹지를 없앤 자리에는 어김 없이 대단위 아파트촌이 들어서는 등 콘크리트 숲이 대신해 왔다.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아마존강 유역이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지구촌 전체를 병들게 하고 있듯이 도시의 숨구멍 역할을 하던 숲과 녹지 대신 칙칙한 콘크리트 덩어리로 높이 쌓아올려진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외형의 인공물 난립은 자연의 산물인 바람을 원활하게 순환시킬 리 만무하다. 되레 그들의 통로를 막는 데 앞장서왔다.


여기에 각 가정 및 사무실, 그리고 자동차마다 에어컨을 가동시킴으로써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열에너지 가운데 흡사 누구의 것이 더 뜨거운가 경쟁을 벌이기라도 하는 양 마구잡이로 방출시키고 있다. 태양의 복사에너지와 지구 자체의 복사에너지, 더불어 인간이 만들어낸 이 뜨거운 열에너지가 열섬 현상과 한데 합쳐지면서 우리가 사는 이 곳의 온도를 더욱 높이고 있는 모양새다. 열대야를 넘어선 초열대야 현상의 등장은 그래서 예고된 재앙이자 인류를 향한 자연의 경고다.



통유리로 이뤄진 넓다란 창, 아름다운 인테리어로 장식된 방과 거실, 아이들은 해맑은 얼굴로 뛰어놀고 있고 젊은 부부는 행복한 표정으로 이들을 바라본다. 물론 이들 가족이 이토록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건 거실 한 귀퉁이에 놓인 에어컨 덕분이다. 첨단 기술은 어느덧 바람이 나오지 않으면서도 빠른 속도로 실내에 찬 공기를 유입시키는 에어컨을 선보이고 있다. 광고속 가정은 한여름임에도 무척 쾌적한 듯 이상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하지만 이 광고는 절대로 실외의 모습을 비춰주지는 않는다. 이들 가족이 실내에서 쾌적한 생활을 누리는 동안 실외는 에어컨이 만들어내는 뜨거운 열에너지로 몸살을 앓으며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데도 말이다.


40도를 육박하는 기온과 초열대야 현상은 자칫 시민들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심지어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 앞서 살펴봤듯 이런 무더위 속에서 에어컨 말고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는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으로 에어컨을 꼽을 정도로 이는 인류 문명의 이기임이 분명하다.


다만, 신체의 항상성을 무너뜨리게 하는 자연, 그리고 자연의 항상성을 무너뜨리고 있는 인간의 힘 겨루기를 보는 듯싶어 작금의 상황은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는 데다가 갈수록 독해지는 더위가 에어컨의 활용을 높이며, 한반도를 더욱 뜨겁게 달궈 에어컨의 사용을 폭증시키고, 또 다시 우리가 사는 지역의 기온을 더욱 높이는 불의 무한궤도, 즉 그 끝을 도무지 알 수 없는 악순환을 낳게 하는 건 아닐까 싶어 심히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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