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난 거미줄을 걷어내지 않는다

새 날 2018. 7. 24.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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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통더위로 몸과 마음이 어느 때보다 지쳐 있는 요즘이다. 이런 최악의 환경에서 우리를 더욱 괴롭히는 존재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초파리라는 녀석들이다. 이들은 몹시도 극성스러운 데다가 게걸스럽기까지 하다. 과일이건 남은 음식물이건 종류에 관계 없이 무턱대고 덤벼드는 통에 우리의 정신을 홀딱 빼놓기 일쑤다. 녀석들 역시 나름 목숨을 부지하겠노라며 인간의 생활권까지 침투하여 발악을 하는 중이겠지만, 어쨌거나 사람을 귀찮게 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생물임이 틀림없다.


심지어 콧속을 파고들 때도 있다. 이 때의 느낌은 뭐라고 형언하기가 참 어렵다. 시원하게 마실 요량으로 아이스커피를 만들어놓으면 어느 틈엔가 유혹에 취한 듯 그 안으로 파고 든 뒤 자신의 몸이 액체에 젖어드는 줄도 모른 채 스스로를 기꺼이 희생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를 모르고 마셨다가 바닥을 거의 드러낼 즈음 녀석들의 정체를 눈으로 확인하고서는 순간 솟구치는 찝찝함에 입맛만 쩝쩝 다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쯤 되면 커피고 뭐고 간에 산통이 다 깨지고 만다. 이 조그만 녀석이 당췌 뭐라고 이러는지 알 수가 없다. 크기가 워낙 조그만 데다가 일반적인 물리 법칙을 훌쩍 뛰어넘은 듯 놀라울 정도로 민첩한 움직임 때문에 녀석들을 당장 제거하기 위해서는 살충제 말고는 딱히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아침 일찍 개수대로 향했다. 그런데 하수구 쪽에 무언가가 매달려 있었다. 작은 거미였다. 하수구를 가로질러 거미줄을 쳐놓은 채 그곳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초파리들이 부근에 많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곳이 먹이사냥에는 천혜의 조건일지는 몰라도 그 외의 요소들은 전혀 그렇지가 못 하다. 녀석의 행동은 다소 무모한 것이었다. 누군가 수돗물을 사용하는 행위만으로도 녀석의 운명은 일순간 어찌될지 알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될 테니 말이다.



녀석을 의식하느라 나름 조심스럽게 물을 사용하긴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랐는지 녀석은 거미줄에 위태롭게 매달린 채 어디론가 허겁지겁 도망치고 있었다. 그 모양새가 조금은 안 돼 보였다. 그런데 다음날 똑같은 자리에 녀석이 같은 방식으로 터를 잡고 있는 게 아닌가. 허허 일단 살아있음을 육안으로 확인했으니 다행이란 생각이 문득 든다. 다만 하수구 부근은 녀석이 생명을 부지하기에는 여전히 위험천만한 곳임이 분명하다.


소라게는 자신의 몸채만한 커다란 고둥 껍데기를 짊어지고 있을 때 비로소 완벽해 보이듯이 거미는 거미줄과 함께 있어야 가장 거미다운 것 같다. 거미줄에 매달려 있지 않은 거미는 무언가 위태롭기 짝이 없다. 간혹 비무장인 상태로 방바닥을 기어다니는 녀석들을 발견하곤 하는데, 그 길다란 다리로 미끄러지며 간신히 중심을 잡고 서 있는 모습이란 여간 불안해 보이는 게 아니다. 곤충 세계에서 거미줄 위의 거미는 먹이피라미드의 최상단 포식자 지위에 위치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존재일 테지만, 거미줄이 없는 상태에서는 한낱 힘없는 일개 곤충에 불과하다.


ⓒ동아사이언스


얼마 전까지 난 거미를 발견해도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가 없었다.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아니 간혹 마음이 울퉁불퉁한 날이면 바퀴벌레 류와 동급으로 취급, 되레 살충제 세례를 퍼붓곤 했다. 난 참 못 된 녀석이다. 그러나 근래 초파리가 하도 극성인 터라 나의 생각은 180도 달라졌다. 적어도 거미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는 존재 아닌가. 오히려 해충을 잡아먹으며 이로움을 주면 주었지,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해코지를 가하지는 않는 것 같다. 다만, 사람과 동일한 공간을 놓고 그동안 치열한 영역 다툼을 해온 사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미움을 톡톡히 사게 하는 느낌이다. 


사람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공간에는 여지 없이 거미줄이 하얗게 쳐져 있기 일쑤다. 집 내부에도 조금만 신경을 기울이지 않으면 구석구석 거미집이 지어져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공간을 놓고 인간과 거미 사이에는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줄다리기가 지속돼 왔던 것 같다. 인간이 떠난 공간에는 으레 거미집뿐 아니라 온갖 종류의 생물들이 저마다 존재감을 드러내곤 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고, 지구를 정복했노라며 큰 소리로 떠들어대고 있지만, 사실 알고 보면 자연 앞에서는 이렇듯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생물들과도 생존을 위해 늘 피말리는 다툼을 벌여온 경우가 허다하다. 



예전 같았으면 기겁을 하며 제거하려 했을 텐데 요즘 난 거미집과 거미를 발견하면 되레 반가워 한다. 곳곳에 지어진 거미집을 일부러 걷어내는 일 또한 일절 없다. 오히려 새로 생긴 거미집을 발견하면 쾌재를 부르곤 한다. 내가 특별히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이들이 집안 구석구석에 거미줄을 쳐놓은 채 모기와 파리 등의 해충을 제거해주니 이처럼 고마울 데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이들은 생태계의 규칙을 거스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생존 방식을 따르며 변함 없이 그리고 묵묵히 제 할 일만을 한다. 알고 보면 거미줄에는 놀라운 비밀이 감춰져 있다. 거미줄은 방탄복 소재인 케블라 섬유에 비견될 정도로 탁월한 강도와 탄성을 자랑한다. 악당을 때려잡는 히어로물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건 아마도 이러한 매력적인 요소 때문이 아닐까 싶다. 뿐만 아니다. 우리 생각과는 달리 단순히 거미줄만 쳐놓고 곤충이 걸려들기를 기다리기만 하지도 않는다. 보다 정교한 과학적 원리가 촘촘한 거미줄의 외양처럼 전체에 스며들어 있다. 거미줄과 곤충이 전기적 힘(+극과 -극)에 의해 서로 끌리는 작용을 일으키도록 돼 있어 자연스레 곤충 모으는 기능을 한다.


우리가 놀고 있을 때에도, 잠을 청할 때에도 거미는 항상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해로운 곤충들을 잡아낸다. 우린 이들에게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불평 불만 따위는 일절 없다. 온갖 종류의 살충제와 모기향 등 화학제품의 사용으로 주변 공기를 오염시키는 일도 없다. 누가 뭐라 하든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일만 진득하게 해낸다. 우리가 그의 반대급부로 감수해야 하는 건 구석구석 하얗게 지어진 거미집을 왜곡된 시선 없이 자연의 일부라 여기며 이를 걷어내지 않기만 하면 될 뿐이다. 이처럼 자연 친화적이며 위험하지 않고 고효율적인 해충 퇴치 방법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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