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노회찬 의원 그리고 진보적 가치

새 날 2018. 7. 23.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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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23일 숨진 채 발견됐다. 진보 정치의 아이콘이라 불릴 만큼 인지도가 높고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았던 그의 죽음은 그래서 더욱 충격적이며 안타깝다. 노회찬 의원은 최근 드루킹 측으로부터 불법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특검의 수사 대상에 오른 바 있다. 그는 그동안 드루킹과 관련하여 어떠한 금품 거래도 없었노라며 관련 혐의를 전면 부인하였고, 향후 조사에도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을 줄곧 피력해 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가 남긴 유서에는 자금 수수를 인정하는 내용의 글이 담겨 있었다. 짐작컨대 이러한 사실이 그를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 한 듯싶다.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4천만 원에 해당하는 자금을 받았다고 실토한 것이다. 다만 청탁은 없었으며, 회원들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판단하여 받았으나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건 어쨌든 자신의 불찰이라고 주장했다.



노회찬 의원은 우리 정치권의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이다.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와 함께 진보 정당의 유일무이한 3선 의원이기도 하다. 그가 존재했기에 진보 정치가 지금까지 맥을 이어 왔으며, 오늘날의 입지를 다져올 수 있었다. 그의 인기 비결은 무엇보다 촌철살인과도 같은 입담이다. 재치 있는 비유와 논리정연한 발언은 진보의 가치를 대중들에게 깊숙이 각인시켜 왔으며, 진보 진영을 대변하는 역할 또한 자임해 왔다.


특히 우리 사회에는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삼성'이라는 공룡에 홀로 맞서 싸우며 의원직을 상실하는 등 만신창이가 되면서까지 그가 묵묵히, 그리고 끝까지 지키려 했던 가치는 아직까지 유효하다. 노동자와 서민을 대변하겠다며 서슬 퍼런 권력을 향해 주저 없이 시원한 독설을 퍼부었던 인물 또한 항상 노회찬 그였다. 우리는 그의 사이다 발언 덕분에 묵은 체증을 한꺼번에 내려보낼 수 있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유야 어찌 됐든 그가 드루킹 측으로부터 받은 정치 자금은 그동안 자신이 걸어온 행보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결과에 다름 아니다. 그의 정치 인생에 있어 최대 위기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된 셈이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가 선택한 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였다. 많은 사람들이 수 조 원을 해먹은 사람도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회인데, 고작 4천만 원 때문에 목숨을 끊은 건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면서 법정에서 다퉈볼 여지가 있음에도 굳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건 안타까운 결과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러나 수수한 정치 자금의 액수와 관계 없이 노회찬은 자신이 살아온 삶 그리고 추구해온 가치와 정면으로 배치된 행위에 대해 스스로가 무한 책임을 진 채 불구덩이 속으로 자진해서 뛰어든 셈이다. 당시 그가 어떤 심경이었을지는 유서에 적혀 있는 글의 일부 내용으로 짐작 가능하다.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



진보 정치는 그의 죽음으로 다시 한 번 위기에 봉착했다. 어쩌면 노회찬이라는 사람 덕분에 진보 정치가 그동안 실낱 같은 생명을 유지해 온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의 부재는 곧 한국 진보 정치의 위기인 셈이다. 깨끗함과 선명성을 전면에 내세워 온 진보 진영으로서는 그의 뜻하지 않은 행보로 인해 이미지에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됐다. 진보 정당이 첫발을 내딛는 일도 사실은 쉽지 않았으나, 작금의 입지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더욱 험난했다.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노회찬 의원은 죽음을 코앞에 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모든 허물은 그의 탓이니 자신을 벌하고, 정의당을 계속 아껴줄 것을 당부했다.


노회찬 의원의 유언 대로, 그의 죽음이 진보 정치의 몰락으로 이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진보적 가치는 어떤 상황에서도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논리정연한 독설(?)과 촌철살인 같은 멋진 비유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에겐 너무도 큰 상실감으로 다가온다. 정치색과 진영을 떠나 늘 약자의 편에 서 왔고, 불의 앞에서는 제 목소리를 올곧게 내던 인물인 그가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된 건 진보 진영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정치권 전체로 봤을 때도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안타깝다는 표현 외에 달리 생각나는 말이 없다.


고 노회찬 의원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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