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실 석촌호수 위에 거대한 인형 하나가 누워 있습니다. 범상치 않은 모습입니다.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 카우스의 작품입니다. 이 인형을 통해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유 그리고 일상으로부터 탈출하여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더군요. 하지만 누워 있는 거대 인형 '컴패니언'의 모습은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왜 휴식을 취하고 있음에도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일까요? 호수 위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 본다지만, 정작 눈은 X자의 형태로 하늘을 바라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휴식을
취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왠지 여유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일보
제 눈에는 오히려 번아웃증후군에 빠진, 지친 현대인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다가올 뿐입니다. 인형 전체를 휘감고 있는 회색톤의 칙칙한 색감 하며, X자 모양의 눈, 그리고 해골 형상의 얼굴은 여유와 휴식이 본래 갖고 있을 법한
어감과는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지칠 대로 지쳐 완전히 탈진해버린, 현대인의 본 모습을 형상화한 듯합니다.
ⓒ한국일보
특히 거리상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의 뷰는, 그러니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롯데월드타워의 세련된 자태 아래에 누운 컴패니언의 모습은, 자발적 휴식을 취한다기보다는 흡사 너무도 빠르고 가파르기만 한 이
세상의 변화를 좇다가 그만 자체 소진되어버린 현대인을 풍자하기라도 하는 양 피로감에 절어 있는 모습입니다. 이제는 쉬고 싶다며 아예 탈진해버린 것 같습니다.
어마어마한 높이의 뾰족한 형상의 롯데월드타워는 지금 이 시각에도 숨가쁘게 변모해가는 가속화시대를 상징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아울러 석촌호수 위에 애처로이 떠 있는
컴패니언은 그 가속화시대를 좇다가 번아웃 증후군에 빠진, 완전히 탈진해버린 현대인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빠른 변화를 뒤쫓는 일만으로도 숨이 가쁜 세상입니다. 격한 운동 뒤엔 으레 호흡이 가빠지듯이 우리의 삶에도 쉼이 절실합니다. 혹시 진흙탕물을 가만히 놓아둬 본 적이 있으신가요? 진흙 등 부유물들이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원래의 맑은 물로 되돌아오지 않던가요? 신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복잡한 머리와 지친 몸도 이 쉼 과정을 통해
잃어버린 여유를 되찾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때의 쉼이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거창한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비단 해외여행을 가거나 멋진 호텔 등에서 한껏 여유를 만끽하는 등의 행위 따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멍때림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자신의 모든 생각과 짐을 내려놓는 행위가 진정한 쉼에 가깝다고 생각됩니다. 진흙탕물을 가만히 놓아두는 것만으로 더러웠던 물이 깨끗이 정화되듯이 우리의 몸과 마음 또한 가만히 놓아둔 채 각종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잠깐 동안만이라도 벗어나 있음으로써 재충전이 가능해지며 행복감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운이 좋으면 참다운 나와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컴패니언은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거나 알면서도 애써 외면해온, 정신 없이 바빠 과부하가 걸린 채 어쩔 수 없이 가속화시대를 누벼야 하는 우리의 일상에 잠시 동안만이라도 쉼이 필요함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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