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최저임금 갈등? 본질은 정작 다른 곳에 있다

새 날 2018. 7. 20.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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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적용 최저임금을 전년 보다 10.9% 인상한 8,350원으로 의결하면서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다양한 양태로 표출되고 있다. 노동계와 경영계 양측 모두 부정적인 기류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편의점 점주들을 필두로 한 소상공인들이 단체 행동에 돌입하기로 밝혀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대통령의 지지율도 최근 급락세로 돌아섰다.


최저임금 인상이 발표된 이래 특히 편의점주들의 반발이 가장 거세다. 인건비를 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논리를 앞세우고 있는 그들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시선은 대체로 곱지 못 하다. 너 나 할 것 없이 뛰어들어 포화 상태를 자초한 업주들의 자업자득일 뿐,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 받기 위해서는 작금의 인상률로도 여전히 배가 고프며, 때문에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사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보더라도 바로 옆집에 서로 다른 브랜드가 다닥다닥 붙어 있을 만큼 편의점의 숫자가 포화 상태에 이른 건 엄연한 사실이다. 업계에 따르면 1987년 7개에 불과하던 전국 편의점 매장 수가 올해 4만 개를 돌파했단다. 인구 대비 국내 편의점 수는 1,268명당 1개꼴로, 이른바 편의점 왕국이라 불리는 2,336명당 1개인 일본보다 2배가량 많다. 그러다 보니 출혈경쟁이 불가피하다. 나눠먹기가 돼버린 것이다. 인건비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는 점주들이다.



그렇다면 왜 자영업자의 무덤이라 불리는, '갑 오브 더 레드오션' 편의점 시장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뛰어들고 있는 걸까? 국세청의 2016년 통계에 따르면 국내 자영업자의 절반 이상(58.7%)은 40, 5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실적인 정년의 나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추세 속에서 자의든 타의든 직장을 그만두게 될 경우 그 연령대가 재취업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인 게 현실이다. 결국 마땅한 대안이 없어 자영업을 하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중장년층이 어쩔 수 없이 자영업 시장으로, 그것도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편의점 시장으로 대거 뛰어들고 있는 셈이다.


국가 자원의 대부분은 개인보다 기업에 맞춰져 있는 경향이 크다. 정부가 실업률에 민감해하고, 취업률에 목을 매는 이유 또한 다 이 때문이다.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의 사회안전망도 회사에 적을 두고 있을 때에나 온전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일례로 건강보험의 경우 직장 가입자가 아닌 지역 가입자의 신분에서 조그만 차 한 대만 장만하더라도 보험료는 껑충 뛰어오른다. 개인 신분으로는 신용카드 한 장 발급 받기가 쉽지 않다. 반면 직장인이라는 신분 하나만으로 1분 안에 대출을 해주겠노라는 모 금융회사의 광고는 개인에겐 무척 씁쓸하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연합뉴스


회사라는 조직의 그늘 아래에 있을 때는 결코 느낄 수 없을 법한 현실들이 그늘을 막 벗어나는 순간 비애로 돌변, 아프게 파고들기 십상이다. 이렇듯 세상은 회사원의 신분과 회사원이 아닌 신분으로 양분돼 있으며, 그 격차가 극명하다. 이런 사회를 이른바 '회사사회'라 일컫는다. 회사란 이렇게 좋은 것이다. 때문에 모두들 회사원이 되고 싶어 안달한다. 자의든 타의든 기존 회사로부터 이탈한 4,50대의 중장년층 역시 생애 전반에 있어 가장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시기를 관통 중인 터라 어떡하든 회사에 다시 몸담게 되기를 희망한다.


정부도 이러한 그들을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발벗고 나섰다. 취업패키지를 통해 열심히 재교육을 시켜 취업을 알선하고 있으며, 각종 제도를 활용한 중장년층 고용정책을 펼쳐나가고 있는 와중이다. 지방자치단체도 나섰다. 서울시의 경우 50+재단을 만들어 50세 이상의 연령층에게 사회공헌일자리 등을 제공한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중장년층이 그럴 듯한 곳에 취업할 수 있는 문호는 그리 넓지 않다. 지자체와 정부의 노력으로 일자리 숫자는 눈에 띄게 늘어난 듯보이나 그 속내를 들춰보면 대부분 양질의 일자리와는 거리가 멀다. 단시간 동안 재능을 기부하는 등 일자리라고 말하기엔 그 요건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사회보장서비스도 제대로 받을 수 없고, 기업이라는 조직에 비해 모든 측면에서 자원이 부족하기만 한 자영업 시장에 어쩔 수 없이 너도 나도 기웃거리게 된다. 더욱 우려스러운 건 우리 사회가 중장년층을 위한 안정된 일자리를 질적으로 대거 확충하지 않는 한, 비단 편의점이 아니더라도, 아울러 음식점이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린 채 보장이나 혜택, 그리고 지원 따위 일절 없는, '회사사회'로부터 완벽하게 이탈하여 그 어떠한 안전장치 하나 없는 자영업자 신분으로 내던져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사실이다.


때문에 한계 절벽으로 내몰린 편의점주 등을 비롯한 자영업자에게 돈이 없으면 알바를 고용하지 말라고 하거나 악덕사업주로 몰아붙이며 비아냥거리는 행태는 저급하기 짝이 없다. 표면적인 현상만으로 한쪽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행위가 바람직스러울 리 만무하다. 최저임금 인상이 마치 모든 갈등을 한꺼번에 야기하기라도 한 양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 사회가 꽤 긴 시간 동안 축적해온 구조적 모순들이 표면으로 불거지면서 작금의 갈등을 빚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갈등의 해결은 의외로 간단할지도 모른다. '회사사회'로 일컬어지는, 국가 대부분의 자원을 기업에만 몰아줄 것이 아니라 자영업자 등 개인에게도 일정 부분을 할당해주는 방안을 마련하든지, 그도 아니라면 어쩔 수 없이 자영업자로 나서게 되는 이들의 발길을 되돌릴 수 있도록 안정적인 일자리를 대거 창줄하면 될 노릇이다.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떤 길로 나서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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