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다른 세계를 꿈꿔온 진짜 나를 찾는 여정 '되찾은 : 시간'

새 날 2018. 7. 1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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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성동구 금호동, 이곳에 작은 책방 하나가 개업했다. 의외의 자리다. 왠지 책방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위치이기 때문이다. 책방 앞쪽으로는 구도심 개발 과정을 통해 들어섰음직한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위치해 있으며,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그 건너편 책방이 있는 쪽은 개발 구역에 포함되지 않은 듯 현대화와는 사뭇 거리가 멀어 보이는 비주얼이었다. 고만고만한 작고 오래된 상가 건물들이 도로 변으로 즐비하다.


원래는 주택이었으나 한 집 두 집 아래층을 상가로 개조하면서 너 나 할 것 없이 이에 뛰어든 듯 많은 건물의 1층은 상가, 그리고 2층은 가정집이었다. '프루스투의 서재'라는 범상치 않은 이름을 갖춘 이 책방 역시 2층 건물의 아래층은 상가, 윗층은 가정집으로 쓰이고 있는 듯보였다. 이 책은 책방 주인장인 박성민 씨가 책을 워낙 좋아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이를 나누고 싶어 독립서점 '프루스트의 서재'를 자신의 거주지이던 이곳 금호동에 개업하고, 1년 동안의 운영 과정과 그곳에서의 소소한 일화들 그리고 그와 관련한 자신의 생각들을 일기장처럼 차분히 기록해놓은 에세이집이다.


좋아하는 일이 아니지만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몸담을 때, 즉 오로지 밥벌이로써 일을 할 때 제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고 해도 그 사람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서글퍼 보인다. 반면 왠지 밥벌이와는 거리가 먼 듯 보이지만 평소 자신이 하고 싶어 했으며 몹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보다는 밥벌이로 여기는 일에 몸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저자는 후자에 속한다. 내가 그의 기록을 유심히 지켜보게 된 연유는 나 역시 그처럼 밥벌이로부터 벗어나 진정 원하고 즐겨하는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늘 마음 속에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돈벌이가 주 목적인 자본가적 시각으로 바라보자면 이 책방 주인은 제 정신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질 공산이 크다. 기존의 작은 동네 서점들이 차례로 문을 닫은 건 불과 엇그제의 일이다. 책방과는 전혀 어울릴 법하지 않은 생뚱맞은 위치에, 그것도 중고책과 독립서적을 다루는 책방이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뚱딴지 같은 발상인가. 저자가 이 책방을 연 데엔 책이 좋아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가까이 접할 수 있게 하고 이를 매개로 관계를 맺으며 같이 성장하는 것이 주 목적일 테지만, 사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어 이런 류의 책방 또한 밥벌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보란 듯이 알려주고픈 속내도 간직하고 있을 법하다.


문을 열고 며칠 되지 않아 뭐든 어색하기만 한 상황에서 처음으로 책 한 권을 팔았을 때나 책방 운영이 조금은 익숙해져 대량으로 납품할 기회가 생겼을 때에도 그의 소회는 그저 담담하기만 하다. 앞으로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 섞인 표현으로부터는 그의 소박하지만 야무진 꿈이 읽힌다. 월세만 겨우 낼 정도의 벌이임에도 그는 걱정보다는 앞으로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는 듯싶었다. 저자의 소신이 워낙 뚜렷하고 자신의 생각과 꿈을 묵묵히 펼쳐나가고 있는 터라 그 모습은 절대로 비루할 수가 없다.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이 분명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 덕분이다. 이 희망이 바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게 해주는 핵심 장치 아닐까?


ⓒ프루스트의 서재


책방의 이름은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이름에서 따온 듯싶다. 이 책의 제목 역시 프루스트가 쓴 대표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비틀어 '되찾은 : 시간'으로 정한 것 같으니 말이다. 저자가 자신의 꿈의 기원이자 발판인 독립서점 '프루스트의 서재'를 1년 동안 운영하면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으려 시도한 것들이 이 책에 차분히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그는 아무런 연고도 없으며 사전에 어떤 언질이나 예약 따위 일절 없이 지나가다가 문득 이곳에 들른 손님이나 주변을 늘 오가면서 언젠가 한 번은 꼭 와 보고 싶었다며 수줍은 모습으로 자신의 책방을 찾는 이들을 특별히 좋아한다. 그만큼 자신의 책방이 알려졌다는 의미로 다가오는 데다가 그가 한결 같이 꿈꿔오던, 책을 매개로 하는 문화의 저변 확대 가능성을 이들의 모습 속에서 조심스레 점쳐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저자는 다재다능하다. 이를테면 강의를 나간다든가 각종 모임을 주도하고, 문학뿐 아니라 문화계 전반에 걸쳐 폭넓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그가 꿈꾸는 건 자신의 책방이 더욱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책을 읽히게 하고 이를 매개로 다양한 장르의 문화를 온 동네에 활짝 꽃피웠으면 하는 바람일 테다. 이를 위해 마을 공동체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으나 이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주로 지역 단체에서 활동하는 이들이었던 까닭에 실망감만 잔뜩 안고 돌아섰던 사례도 담담히 기록되어 있다.



어느 날 그와 일면식도 없는 한 수인(囚人)이 다짜고짜 저자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내왔다. 편지 내용을 훑어본 뒤 교도소라는 갇힌 세상에서 활자를 통해 그나마 위안을 찾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으로 저자가 아무런 조건 없이 그에게 책자를 보낸 이야기는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가끔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이슈에 대한 생각의 일단을 풀어놓기도 한다. 덕분에 맘충 논란 그리고 무상 급식 등의 이슈에 대한 그의 짧은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저자가 책방을 통해 되찾으려 했던 시간은 과연 어떤 종류의 것일까? 세태를 좇느라 나다움을 잃고 살아온 지난 긴 시간들 아니었을까? 책방을 열고 이를 운영하며 그 안에서 세상 및 사람과 만나고 관계를 이어가면서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었던, 이 책에 깨알 같이 기록된 지난 1년이야말로 비로소 자신이 꿈꾸던 세상을 향한 힘찬 날갯짓 아니었을까? 더불어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동안 소원했던 책과의 간극을 좁히게 하고 세상과 소통을 가능케 하는 또 다른 창구를 마련해 놓은 셈이니, 이제부터 시간을 되찾는 일이란 말 그대로 시간 문제 아닐까?


진정 나다움을 추구하는 그의 삶의 방식에 여전히 의문부호가 붙는가?  밥벌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그러나 늘 다른 세계를 꿈꿔온 나를 비롯한 모든 딴짓러들이 그의 행보를 숨죽이듯 지켜보고 있다. 다행히 이 책이 쓰여진 지 햇수로 3년이 지난 지금 이 시각에도 '프루스트의 서재'는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으며, 어느덧 지역의 명물이자 핫플레이스로 발돋움하고 있다. 딴짓러가 꿈꾸던 세상이 한 발자욱 더 가까워진 듯싶어 내심 기쁘고 반갑다.



저자  박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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