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인성 부재의 시대가 낳은 씁쓸한 풍경

새 날 2018. 7. 1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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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직에 오랜 기간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다수가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현상 하나가 있다. 속 썩이는 아이들 때문에 정년을 결코 채우고 싶지 않노라는 속내다. 어떤 직업인들보다 직업적 소명 의식이 투철할 것으로 짐작되는 데다가 평생을 아이들과 함께해 온 분들이건만, 이제는 도리어 아이들 때문에 더 이상 교직 생활을 못 하겠다고 토로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30년 동안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한 지인은 5년가량 남은 정년퇴직을 포기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역시나 아이들 때문이란다. 교사를 교사로 바라보지 않는 요즘 아이들의 냉대 어린 시선과 학부모들의 막무가내식 행태에 그만 질려버렸다는 게 그의 일성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뒷받침하는 실재 통계 결과도 있다. 경기도교육청 대변인실이 전국 교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결과 2030세대의 젊은 교사 가운데 절반가량(47%)은 정년까지 교편을 잡을 마음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젊은 세대가 이 정도의 수준이니 상대적으로 경험이 많은 교사들이 현재 겪고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고충의 크기를 헤아리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교사들에게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주는 대상으로는 학부모(39%)를 으뜸으로 꼽았으며, 학생(24%)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아이들이 변화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지극히 자연스러우며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낯익은 현상 가운데 하나다. 기원전에 살았던 소크라테스조차 “요즘 것들은 싸가지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기성세대와 신세대 사이의 간극은 예나 지금이나 늘 존재해왔던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래의 변화는 과거의 것에 비하면 눈에 띄게 두드러진다. 마치 스마트폰이 이 세상에 등장한 이래 눈이 돌아갈 정도로 급변하고 있는 사회 현상과 비견될 정도다. 때문에 요즘 아이들과 대면할 때마다 느껴지는 이질감은 단순한 세대 차이의 수준을 넘어 극도의 괴리감으로 와 닿곤 한다. 정년을 포기하겠노라는 교사가 속출하고 있는 현상은 결국 이의 연장선에 가깝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요즘 아이들을 이렇게 변화시키고 있는 것일까? 물론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이 손에 쥐어진, 뼛속까지 디지털인 그들이 그렇지 않은 세대와는 무언가 달라도 많이 다를 것으로 짐작되게 한다. 학생 인권이 중요시되고 체벌이 사라진 일선 교육 현장의 변화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게 하는 건 역시 부모의 자식 양육 방식 즉, 인성으로 대변되는 가정교육으로부터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최근 모 빵집에서 있었던 사례가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더니 급기야 언론에까지 보도됐다. 한 어린이가 방금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빵을 손으로 만지고 있길래 직원이 다가가 이를 제지했더니 엄마가 아이를 말리기는커녕 직원에게 대뜸 화부터 내더란다. 명백하게 잘못을 저지른 행위조차 이렇게 두둔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의 인성이 올곧게 자리 잡을 리 만무하다. 


ⓒ연합뉴스


그맘때 아이들의 성향은 본디 충동적이다. 돌출 행위는 자연스럽다. 사리를 분별하기에는 너무 어리다. 때문에 이들의 관리는 당연히 부모의 몫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 부모들은 아이의 기를 죽인다며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조차 특별히 제재를 가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년 전부터 이미 논란으로 불거진 ‘맘충’은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신조어다. 여전히 찬반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노키즈존’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렇듯 요즘 어른들은 '귀한 내 자식' 하며 쓰다듬고 이뻐할 줄만 알았지, 정작 아이들의 그릇된 행위에 대해 잘못됐다며 따끔하게 일침을 가하는 경우가 없다. 아이들의 모든 행위를 감싸안으며 용납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서는 무엇보다 으뜸이 되어야 할 소중한 가치마저 이들 앞에서 빛을 잃고 그 존재감을 상실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빵집을 찾은 아이는 빵집에 들어왔으니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손님이어야 한다. 아이가 이를 아직 헤아리지 못 해 매장 안에서 소란을 피운다면 아이를 재빨리 손님으로 둔갑시켜야 하는 건 당연히 부모의 몫이다.


필요가 발명을 낳는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 엄마는 온라인의 활용에 있어 귀재에 가깝다. 자발적으로 커뮤니티를 만들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이른바 ‘맘카페’가 온라인에서 활기를 띠고 있다. 이들은 육아라는 공통 이슈를 통해 조직을 규모화하고 여론을 형성하더니 어느덧 권력을 누리는 신흥세력으로까지 급부상했다. 이들의 활동에 따라 누군가는 웃거나 우는 경우가 다반사다. 소비자로서의 영향력이 그만큼 막중해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도 속출한다. 최근 모 맘카페 회원이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 태권도장을 협박하는 등 갑질로 물의를 일으켰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어른들 품 속에서 자랐을 아이들의 인성이 우려되는 건 비단 나뿐일까?



최근 광주의 모 사립고등학교에서 불거진 1학기 기말고사 시험지 유출 사건은 의사 자식을 두고 싶었던 한 어머니의 비뚤어진 자식 사랑에서 비롯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시험지 유출 사건도 그렇거니와 앞서 언급한 맘충, 노키즈존 그리고 맘카페 논란까지, 근래 불거진 자녀를 둘러싼 이슈 대부분은 부모가 자녀를 과도하게 사랑하고 아끼려는 행위에서 비롯된 경향이 크다. 


근래에는 이러한 행태가 도를 넘어 성인이 된 뒤에도 대학 수강신청을 대신해준다거나 심지어 취업 과정에도 개입하는 등 이른바 ‘헬리콥터맘’이 활개를 치면서 사회 문제로 부각되기도 했다.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은 과연 어떤 특성을 지니게 될까? 의무는 정작 내팽개친 채 권리만 앞세우려 하고, 아울러 이익 앞에서는 사소한 것조차 참지 못 하면서 정작 불의 앞에서는 눈을 질끈 감고 마는, 나약한 구성원으로 성장하기가 쉽지 않을까? 


물론 모든 아이들이 그렇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여전히 많은 아이들은 부모의 그늘 아래에서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올곧게 잘 자라고 있을 테니 말이다. 다만, 교사들이 직업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빠른 속도로 잃어가고 있고, 아이들과 그들의 엄마로 인한 이슈가 자꾸만 불거지고 있는 작금의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닌 듯싶어 조금은 우려스럽다. 오늘날 부모의 그릇된 양육 방식이 교사로 하여금 교편을 간절히 놓게 하고 싶은, 인성 부재의 괴물을 양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깊이 성찰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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