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무더위 날려버릴 북유럽 추리소설 '올빼미는 밤에만 사냥한다'

새 날 2018. 7. 12. 21:13
반응형

노르웨이의 숲 한적한 곳에서 어느 날 의문의 사체 한 구가 발견된다. 오각형의 형상으로 촛불이 차례로 놓여진 펜타그래프 안에 어떤 소녀가 알몸인 채 양 팔이 기이한 각도로 꺾이고 입에는 하얀색 백합꽃이 물린 상태에서 무언가를 상징하는 듯한 자세로 숨져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사체 주변에는 온통 새의 깃털 같은 것들로 가득했다. 흡사 정체 모를 종교 의식 따위가 치러지고 죽은 소녀는 그의 제물이 되기라도 한 양 끔찍한 형상을 띠고 있었다. 


당시의 현장은 누가 보더라도 범상치 않은 사건임을 짐작케 한다. 덕분에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영광(?)을 누리게 됐으며 해당 사건은 강력범죄를 다루는 특별수사팀에 배당된다. 뭉크를 팀장으로 하는 특별수사팀이 급거 꾸려진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강력범죄를 도맡아 해결해온 뭉크, 동료인 미아가 이번 사건 역시 제대로 해결할 만한 적임자임을 직감하게 된다. 


죽은 소녀는 카밀라 그린으로 밝혀졌다. 수사 결과 한 보육원에서 생활하며 보호를 받아오다가 수개월 전 실종된 것으로 전해진다. 보육원장 등 그녀 주변으로 관계가 얽힌 수많은 사람들이 수사 대상에 오르거나 용의선 상으로 부각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특별한 단서를 포착하지 못 한 채 제자리만 빙빙 도는 듯 보이는 수사팀에는 능력이 없다며 여지없이 언론의 십자포화가 가해지는데...



미아는 수년 전 자신의 분신으로 여겨오던 쌍둥이 여동생 시그리를 잃었다. 동생의 죽음을 남자친구 탓으로 굳게 믿었던 미아는 우연히 마주친 그를 사적으로 응징하는 바람에 경찰 직무를 정지당하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만 했다. 현재 미아에게는 살아 있는 자체가 고통이었다. 시그리와 관련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동생 곁으로 영원히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그녀의 내면을 뒤흔들어놓곤 했다. 이런 와중에 뭉크의 미아를 향한 배려는 다시금 그녀를 간택케 하였으며, 이로써 미아는 카밀라 그린의 살해 사건 수사팀에 전격 합류하게 된다.  


노르웨이의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다. 고위도에 위치하고 있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10월이면 벌써부터 겨울의 흔적이 넓은 영역에 걸쳐 아주 낮게 드리워진다. 낮의 길이는 더욱 짧아지고 덕분에 일상은 한없이 긴 밤의 심연 속으로 일제히 파묻힌다. 우리는 북유럽국가 가운데 하나인 노르웨이의 복지 혜택과 깨끗한 자연환경을 막연히 부러워하곤 했는데,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현지 사람들은 이러한 계절적 변화를 지긋지긋해 하는 모습이다. 



겨울의 긴 터널 속으로 본격 진입하려는 초입에 노르웨이의 숲에서 벌어진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이 기이한 살인사건, 평소 북유럽을 동경해 마지 않던 막연한 환상과 조우하며 일종의 상승효과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추운 계절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고위도의 그 살벌한 추위에 어느 모로 봐도 섬뜩하기 만한 소녀를 둘러싼 살인사건이 더해지면서 우리의 몸을 더욱 오싹하게 만들었을 법한데, 다행히도 지금은 장마전선이 밀려난 뒤 무덥고 습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덕분에 시원한 한기를 느껴가며 읽을 수 있다.


다양한 성향의 인물이 대거 등장하고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될 법한 요소들이 연이어 나타나지만, 정작 이야기가 끝 지점으로 치달을 때까지 사건의 용의자가 누구인가를 콕 집어 특정하거나 짐작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이야기의 구조를 치밀하게 짜놓은 채 의구심을 가질 법한 것들을 의도적으로 하나 둘 노출시키지만, 독자들의 시선이 분산되는 까닭에 결정적인 건 베일에 철저하게 가려진다.


끔찍한 살인사건의 배경에는 대부분 인간의 감정과 욕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마련이다. 이 소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단순히 재미로 읽히는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등장 인물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결핍과 상실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 군상의 민낯을 엿보게 한다. 물질적으로는 많은 것을 갖추고 있는 듯싶으나 최근 정신적인 허기와 결핍을 호소하는 현대인들이 즐비하다. 



소설 속에서도 무언가 결핍이 엿보이는 여러 인물들을 그려 놓았다. 이들의 결핍은 그 종류가 사뭇 다른듯 싶지만 결과적으로는 같은 줄기로써 서로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신적인 허기를 채우려는 뒤틀린 욕망은 이성을 마비시키며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이렇듯 결핍을 호소하는 인물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잃은 상실감에 허우적거리는 인물의 구도는 흡사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다. 


북태평양고기압과 세력 다툼을 벌이며 힘겹게 버티던 장마전선이 마침내 물러나면서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덕분에 한반도 상공은 북태평양고기압이라는 거대한 공기덩어리 즉, 기단이 독차지하게 됐다. 본격적인 무더위를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열대야로 인해 밤잠을 얼마나 설쳐야 할지 생각만으로도 벌써부터 끔찍해진다. 이럴 때 막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고위도에 위치한 북유럽국가 노르웨이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뭉크와 미아를 전면에 내세워 기이한 살인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 추리소설 한 권이면 웬만한 무더위 정도는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저자  사무엘 비외르크

역자  이은정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