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자살 보도 사례로 짚어본 우리 언론의 문제점

새 날 2018. 7. 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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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다. 비가 오는 날을 나는 유독 좋아했다. 물론 지금도 좋아한다. 어린 시절엔 특별한 이유 없이 무작정 비 맞는 행동을 즐겨했던 것 같다. 오는둥 마는둥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됐든 아니면 마치 화살촉이라도 되는 양 강하게 내리꽂히는 형태의 비가 됐든, 어쨌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괜시리 마음이 땅 위로 스며든 빗물처럼 착 가라앉으며 감성적으로 변모하곤 한다. 당시의 감정 상태에 따라 울적해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런데 이번 비는 그 양이 범상치 않아 보인다. 장마전선과 태풍이 콤보로 한반도 공격에 나선 탓이다. 태풍이 한반도를 관통하는 건 무려 5년만의 일이라고 한다. 반갑다 태풍아. 덕분에 내가 살고 있는 지역만 해도 무려 300mm의 물폭탄이 예보돼 있다. 이 정도의 양이라면 단순히 감상에 젖어 있기보다는 비로 인한 피해 예방과 대비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조용한 휴일 아침, 울적한 기사 하나를 접했다. 누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이다. 앞서도 언급했듯 비는 그날의 감정 상태에 따라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곤 한다. 누군가의 자살 소식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울한 감정을 모락모락 피어오르게 하는데, 여기에 비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상승효과가 제대로인 듯싶다. 게다가 별다른 생각 없이 읽게 된 기사의 제목은 오늘의 우울감을 극대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도 남는다.


"울산대교서 소방공무원 투신 사망"


이미 목숨을 끊은 망자의 신분이 공무원이기 때문이 아니다. 많은 직업인 가운데 국민들로부터 가장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는 소방관이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사건 내용을 쓰고 제목을 뽑은 기자와 이를 기사로 내보낸 언론사가 내겐 몹시 못마땅하게 다가온다. 모두가 알다시피 언론의 자살보도는 그 파급효과가 만만치 않은 까닭에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도록 되어 있다. 이른바 '자살보도 권고기준'이다. 


하지만 해당 기사는 이따위 권고쯤이야 하며 이를 깡그리 무시한 듯한 흔적이 역력하다. 온통 문제투성이다. 자살과 관련한 상세 내용은 최소화해야 함에도 자살을 시도한 장소며, 자살 방법까지 무척 친절한 형태로 안내하고 있다. '울산대교', 일반적으로 자살 보도에서 특정 장소나 특징적인 장소를 명시할 경우 해당 장소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킬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 상대적으로 해당 장소로의 접근성이 뛰어난 이들의 자살을 유도할 수도 있다. 특정 장소를 굳이 언급해야 할 그 어떤 명분도 없는 셈이다. 



아울러 해당 기사에서는 제목에 '투신'이라는 자살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자살 방법의 기재는 일종의 자살 수단을 제공헤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낳기에 후폭풍을 유발하기 십상이다. '소방공무원', 이 기사에서 목숨을 끊은 이의 직업을 이처럼 뚜렷하게 언급해야 할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던 걸까? 혹여 소방관들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처우를 이 사건을 통해 부각시키려는 의도였다면, 기자는 번지수를 완전히 잘못 짚은 게 분명하다. 특정한 사회적 문제 제기를 위한 수단으로 자살 보도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권고로부터 한참이나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3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13년 연속 OECD 자살률 1위를 기록 중이다. 통계청의 2016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한 해 평균 13,092명으로,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가 25.6명에 달한다. 이쯤 되면 재앙 수준이라 할 만하다. 자살률을 떨어뜨리기 위한 범 국가적인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실정이다. 


ⓒ연합뉴스


사회적 책무가 막중한 언론 역시 작금의 현실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아니 그동안 자신들의 책무를 망각한 보도 관행으로 인해 도리어 자살을 부추긴 원죄마저 없지 않다. 수년 전 인기 연예인의 잇따른 자살 사건이 불거졌고, 이를 별다른 성찰이나 고민 없이 무차별적으로 보도한 언론의 그릇된 행태로 인해 자살 모방 행위가 연이어 빚어져 많은 이들, 특히 꽃다운 나이의 청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사례가 있다. 이후 자살 관련 보도에 있어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사회적 논의를 거쳐 한층 업그레이드된 자살보도 권고기준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번 보도 사례만 놓고 보더라도 언론인이며 언론사 가릴 것 없이 이들에게 자살과 관련한 경각심 및 사회적 의무감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인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대중들은 근래 기자를 기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기레기'라는 말이 입버릇처럼 돼버렸다. 덕분에 요즘 기자들은 일할 맛이 영 안 난다고들 토로하곤 한다. 자괴감도 클 것 같다. 자업자득이다. 


하루종일 비가 내리고 있고, 앞으로 며칠 동안 장대비가 예보된 상황에서 모처럼 감상에 젖어보려 했거늘, 우울한 기사 하나로 인해 산통이 다 깨져버렸다. 기레기들아, 내 소중한 감정 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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