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과학적 상상력에 강렬한 액션 덧입힌 판타지 영화 '마녀'

새 날 2018. 6. 2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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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정체 모를 무자비한 살상 행위가 한 시설에서 벌어졌다. 당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어린 소녀, 아이는 그녀를 뒤쫓던 괴한들로부터 간신히 도망친 끝에 시골의 한적한 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던 전 건축업자 구모(최정우) 씨 집앞 풀섶에 그만 쓰러지고 만다. 구 씨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소녀는 다행히 그와 그의 아내(오미희)의 살뜰한 보살핌 속에서 티 없이 맑게 자란다. 소녀는 그렇게 이들의 가족 구성원이 됐다. 어느덧 고등학생으로 성장한 소녀 구자윤(김다미), 학생 신분으로 일손을 열심히 도우며 가계에 한 몫 단단히 거들고 있기는 하나 소값 폭락 등과 같은 구조적인 경기 한파를 극복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느 날 자윤의 친구 명희(고민시)가 모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수퍼스타 오디션에 참가, 우승할 경우 거액의 상금을 거머쥘 수 있다고 자윤에게 슬쩍 귀띔한다. 자윤의 끼가 충만하다며 곁에서 부추기던 명희, 겉으로는 빼는 척하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팠던 자윤에게는 내심 기대를 갖게 할 만한 요소였다. 두 사람은 결국 대회에 참가, 월등한 실력을 뽐내며 예선을 차례차례 통과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자윤이 오디션에서 잠깐 선보인 초능력으로 인해 그녀 주변에 이상한 사람들이 자꾸만 나타나 다짜고짜 뜻 모를 이야기들을 일방적으로 건네며 접근해 오기 시작하는데...



구자윤은 출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의 등짝에 인식 번호 따위가 깊숙이 새겨져 있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아울러 수시로 머리가 아픈 듯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기 일쑤다. 그러니까 그녀의 탄생 이면에는 세계 최고의 뇌 과학자 닥터 백(조민수)이 관여돼 있다. 닥터 백의 연구 성과는 전 세계가 놀랄 만한 성질의 것이었다. 인간의 뇌 기능을 인위적으로 지금보다 월등한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일이 가능해졌으니 말이다. 물론 이러한 류의 기술에는 늘 그렇듯이 윤리 문제가 파생되는 등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기 십상이다. 



이 영화의 모티브는 현재 인간이 활용하는 뇌의 기능이 전체 용량의 10%가량에 불과하다는 사실에서 착안, 이를 첨단 생명공학기술을 통해 100%로 끌어 올릴 경우 어느 정도의 능력을 발휘하게 될까 하는 발칙한 상상력으로부터 출발한다. 비슷한 이야기는 사실 공상과학소설이나 영화 등에서의 단골 소재다. 지난 해 개봉한 영화 '컨택트'의 원작자인 테드 창이 쓴 단편소설 '이해' 역시 불의의 사고로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환자 '나'에게 최근 개발 중인 호르몬요법을 임상실험을 통해 제공, 이를 통해 발현되는 각종 현상들을 과학소설가 답게 상당히 분석적인 시각으로 접근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인간의 뇌가 지닌 잠재력은 엄청나다. 우리가 지금 활용하고 있는 건 그 가운데 고작 10%가량이라고 하니 더욱 실감이 된다. 뇌는 정신뿐 아니라 육체적인 영역까지, 우리 신체의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고도의 판단력과 분석력, 그리고 이해 능력 등은 물론, 신체 내외부로부터의 움직임과 변화에 반응, 이에 즉각적인 대응을 가능케 하는 등 몸의 움직임 전체를 관할한다. 결과적으로 볼 때 뇌 기능의 활성화는 운동신경을 더욱 예민하고 세심하게 발현케 하여 우리 몸의 움직임을 고도화시킨다. 



앞서 언급한 테드 창의 소설 '이해' 속 주인공 '나' 역시 잠자던 뇌의 잠재 능력을 호르몬요법을 통해 깨우면서 보통사람들에 비해 월등한 인지능력을 갖춤은 물론, 짐승과 흡사한 운동신경을 구비하게 되고, 학습과 경험이 축적될수록 더욱 진화, 점차 괴물로 변해간다. 영화 '마녀'에서 구자윤을 비롯한 닥터 백의 실험에 의해 탄생한 또 다른 마녀들의 운동신경은 게임이나 판타지 장르의 영화 같은 데서나 볼 법한 기민하고 날렵하면서도 정확한 움직임을 선보인다. 인간의 뇌 기능을 100%로 끌어올릴 경우 실제로 비슷한 결과로 이어지게 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론상으로는 얼마든 가능할 것도 같다. 



조민수가 간만에 스크린에 복귀, 세계 최고의 뇌 과학자 닥터 백으로 분했다. 닥터 백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미스터 최 역의 박희순은 닥터 백의 수하에서 그녀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화장기 하나 없는 천진한 외모의 자윤이 웃으면서 그와는 정반대의 소름 돋는 액션을 취하곤 하니 미스터 최 등이 그녀를 향해 '마녀'라 지칭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닌 듯싶다. 



수퍼스타 오디션에 본격 뛰어든 구자윤, 그녀의 매니저 역할을 자임하던 친구 명희로 분한 고민시는 이번 작품속 유일한 웃음코드를 도맡았다. 그맘때 아이들이 사용할 법한 찰진 용어와 액션의 구현은 물론, 때로는 푼수 짓으로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해준다. 구자윤 곁에서 늘 함께하는 등 의리로 똘똘 뭉친, 소녀적 감성을 잃지 않은 귀여운 캐릭터로 묘사돼 있다. 



과학을 기반으로 한 영화적 상상력 토대 위에 강렬한 속도감으로 전달되는 액션신이 더해지니 흡사 전혀 새로운 장르의 판타지물을 보는 듯싶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인간의 오만함이 만나 탄생하게 된 희대의 마녀, 누군가에게는 그녀가 진정 마녀로 비칠지 모르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천사로 다가오게 되지 않을까? 이번 작품은 마녀가 등장하게 된 배경에 많은 시간이 할애된 덕분에 본격적인 액션은 아마도 다음 편부터 선보이게 될 것 같다. 액션신이 비교적 짧은 분량으로 등장하고 있으나 워낙 강렬한 터라 후속편이 더욱 기대되는 영화다.



감독  박훈정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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