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이기는 경기가 아닌 감동적인 경기를 보고 싶다

새 날 2018. 6. 1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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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러시아 월드컵 경기에서 한국 축구 대표팀이 스웨덴 대표팀에게 뼈아픈 일격을 당했다. 워낙 막강한 팀들과 다퉈야 하는 고된 싸움인 까닭에 상대적으로 말랑말랑한(?) 스웨덴만큼은 어떡하든 우리가 물리쳐야 하는 상대였다. 독일과 멕시코의 예측을 벗어난 경기 결과가 우리의 가뜩이나 험난한 입지를 좁혀 오는 탓에 더더욱 그러했다. 결과는 예측 이상으로 끔찍했다. 그러나 패배보다 우리를 더욱 씁쓸하게 하는 건 대표팀을 둘러싼 무성한 뒷말과 혹독한 비난 때문이다. 이 경기가 끝난 뒤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이 독일 방송사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한국이 이번 월드컵에서 3패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 답답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졸전을 벌인 탓에 우리 대표팀에게 가뜩이나 사방에서 조롱성 발언과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상황에서 과거 우리와 비교적 깊은 인연을 맺었던 그마저도 이렇듯 우리를 조롱하고 나섰으니 말이다. 뒤끝 작렬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이러한 독한 발언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다. 패배도 아쉬운데 우리 축구 대표팀을 전 세계적인 웃음거리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나선 꼴이기 때문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2014년 10월 한국 축구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이래 아시안컵 준우승을 비롯해 동아시안컵 우승, 러시아월드컵 2차예선 무패 행진을 이어가며 승승장구하다가 최종 예선에서 졸전을 치른 끝에 감독직에서 물러난 인물이다. 그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절대로 덕장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한때 한솥밥을 먹으면서 우리 팀을 진두 지휘하던 인물이 이런 값싼 발언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으니 말이다. 나머지 두 경기에서 좋은 경기를 펼치라며 덕담을 해주고 힘을 북돋워주어도 시원찮을 판국에 되레 상처 부위에 소금을 팍팍 뿌리는 이러한 인물을 우리는 결코 덕장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의 발언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돋쳐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러시아 월드컵에서의 첫 패배, 그것도 영패라는 민망한 결과를 두고 외신은 그렇다 쳐도 일부 우리 언론들마저 대한민국 축구팀을 향한 비난에 화력을 집중시키고 있는 모양새다. 장현수의 잦은 패스 미스가 국가대표팀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며 비난의 화살을 쏘아 올리더니, 골문 앞에서의 무리한 반칙으로 패널티킥을 허용해 결과적으로 패배를 자초한 선수로 지목된 김민우 등에 대해 맹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가뜩이나 울고 싶은 심정일 그들에게 위로는커녕 되레 뺨을 한 대 갈기며 아예 쐐기를 박고 만 것이다. 


한국 대표팀의 주장 기성용은 경기가 끝난 직후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기란 모름지기 혼자 하는 게 아니라 11명 모두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움직이기 때문에 경기 결과를 어떤 한 사람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모두의 잘못이다" 반칙으로 패널티킥을 유발한 김민우 선수 등 일부 선수들을 향한 일각의 비난에 대해 이들을 감싸 안으며 다독이려는 따뜻한 발언이다. 슈틸리케와 기성용, 이쯤되면 이들의 그릇 크기의 차이를 충분히 짐작되게 하고도 남는다.


ⓒSBS


스웨덴은 예상보다 강한 팀이었다. 전혀 말랑말랑하지도, 만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난공불락의 철옹성 같은 느낌이었다. 대체로 선수들이 장신에 체격이 좋으며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결정적인 역습을 노리는 전술을 구사한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으나 그들의 촘촘한 압박 수비는 우리 선수들을 옴짝달싹 못 하도록 꽁꽁 묶어두는 등 숨 쉬기조차 버겁게 만들고 있었다. 비록 수차례의 결정적인 기회를 어설프게 날려버리는 등 공격력은 비교적 무뎠으나 결과적으로는 막강한 수비벽 그 자체가 그들에게는 곧 필살기였던 셈이다. 상대 진영의 우월한 피지컬 능력에 가려 우리 선수들은 자신의 기량을 온전하게 발휘할 수가 없었다. 한 번 상상해보라. 지금 당장 눈앞에서 싸워야 할 상대가 나보다 훨씬 우람한 덩치에 키도 월등하다면 어디 주먹이나 제대로 휘두를 수 있겠는가 말이다. 싸우기 전에 이미 기가 질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할 상황 아니었을까? 


우리 선수들은 이러한 위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그것도 공을 잡았다 하면 주변에서 좀처럼 가만히 놔두지를 않는 강력한 압박 시스템 속에서 힘든 경기를 펼쳐야 했다. 이들에게 야유가 아닌 박수를 보내야 할 이유이다. 그러나 골망으로 향하는 유효 슛을 단 한 개도 기록하지 못 했다며 지금 이 시각에도 이번 월드컵은 너무 절망적이라는 등의 혹평이 횡행하고 있다. 물론 결과만 놓고 본다면 그렇게 하소연하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닐 테다. 솔직히 말하자면 경기를 TV로 지켜보는 나조차도 너무 답답했으며, 엉뚱한 곳에 볼을 배급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치밀어 오르는 울화통을 조용히 다스려야 했으니 말이다. 



TV로 경기를 관람하는 우리도 이처럼 답답했거늘 직접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은 오죽했을까 싶다. 그러나 축구는 혼자서 펼치는 연기가 결코 아니다. 상대적인 게임이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우리의 움직임도 그에 종속된다. 스웨덴은 우리에게 있어 마치 높은 산맥과도 같은 존재였다. 패널티킥을 성공시키면서 스웨덴의 첫 골 기록과 동시에 경기의 MOM으로 등극한 스웨덴 국가대표팀 주장 4번 선수의 그 큰 골격처럼 말이다. 이런 선수들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왜소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성인과 초등학생을 나란히 세워놓은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날카로운 공격 한 번 제대로 펼치지 못 한 우리 대표팀이 당시 겪었을 고충이 대략 어느 정도였을까를 헤아리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기술적으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경기였다. 고질병인 신중치 못한 볼 처리와 잦은 패스 미스는 이번에도 우리 스스로의 발목을 단단히 잡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들을 향한 비난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 우리는 이들에게 비록 질 때 지더라도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고 원 없는 경기를 펼칠 수 있도록 응원해주고 지지를 보내주어야 한다. 그라운드 위에 지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다음 두 경기만큼은 이들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도록 해주어야 한다. 비록 최고는 아니어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 속에서 사람들은 으레 감동을 받기 마련이다. 침대축구가 비난을 받는 건 최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웨덴이 선보인 침대축구는 비록 이겼으나 감동 따위는 전혀 없었다. 우리는 이기는 경기가 아닌, 감동적인 경기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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