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찢어진 눈 그리고 기업윤리

새 날 2018. 5. 21.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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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를 둘러싼 인종 차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는 지난 4월12일 미국 필라델피아 스타벅스 매장에서 흑인 남성 2명이 음료를 주문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는 이유 만으로 매장 직원이 경찰에 신고, 이들이 체포되는 어이없는 사건을 기억한다. 백인 일행이 뒤늦게 도착하여 인종차별이라며 항의에 나섰고, 체포된 흑인 2명은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이 과정을 담은 동영상이 SNS에 퍼나르기 되면서 거센 인종 차별 논란으로 불거졌던 사건이다. 이후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됐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5일 뒤인 17일에도 비슷한 논란은 또 있었다. 한 흑인 남성이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매장에서 화장실 사용을 거부 당하고 쫓겨나는 영상이 공개된 것이다. 이 영상에서 흑인 남성은 매장 직원에게 화장실 비밀번호를 묻고 있다. 그러자 직원이 "음료를 구입해야만 영수증에 있는 화장실 비밀번호를 알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음료를 구입하지 않은 다른 백인 남성에게는 흑인과는 달리 비밀번호를 친절히 알려주어 논란으로 불거진 것이다. 


계속되는 인종 차별 논란에 스타벅스는 결국 미국 내 8000여 개 매장의 문을 닫고, 17만 명이 넘는 직원들에게 인종 차별 예방 교육 및 또 다른 이슈들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이러한 대증요법 만으로 근본적인 해결은 기대 난망일 듯싶다. 최근 라틴계 남성을 비하하는 일이 또 다시 불거졌기 때문이다. 한 라틴계 남성이 주문한 음료 라벨에 남성의 이름과 함께 '비너'(Beaner)라는 문구를 적은 것인데, 이는 멕시코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라고 한다. 앞서 불거진 사건 이후 스타벅스가 발빠르게 후속 조치에 나섰으나, 이쯤 되면 실수라고 둘러대기에는 무언가 멋적은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스타벅스의 인종 차별 논란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라고 하여 예외일 수 없다. 이른바 '찢어진 눈' 논란이 가장 찜찜하게 와닿는다. 지난 2012년 2월 애틀란타에 위치한 쇼핑몰 내 스타벅스 매장에서 한 한국 교민이 동양인을 비하하는 표현인 찢어진 두 눈이 그려진 음료 컵을 받으면서 논란으로 불거졌다. 비슷한 사례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2016년 독일 뮌헨의 한 매장에서도 스타벅스 직원이 한국인 손님에게 예의 그 ‘찢어진 눈’이 그려진 음료를 제공하여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고객에 대한 서비스 마인드를 갖추고 단순히 응대만 하면 될 일을 굳이 논란으로까지 야기시키는 스타벅스 직원들의 이러한 어리석은 행위를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딱히 대단한 도덕심이나 가치관이 요구되는 사안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더욱 답답하다. 일개 직원의 행위는 경영진의 경영 철학 및 자질과 직결되는 요소다. 스타벅스 경영진은 돈을 벌어들이는 능력만큼은 분명 타고난 듯싶으나 윤리적인 영역의 역량만큼은 왠지 함량 미달이 아닐까 싶다. 


특별히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계를 향한 차별이 가장 심각하다고 하는 사실은 화를 더욱 돋우게 하는 요소다. 한 매체가 '찢어진 눈' 등의 표현으로 인종 차별을 받고 있는 동양인들이 흑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욱 차별 받는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4월 불거진 흑인 차별 논란 당시 스타벅스는 신속한 공식 사과와 원인 규명, 그리고 보상 절차에 나섰으나 이른바 '찢어진 눈'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건 등 동양인과 얽힌 사안은 그동안 해당 직원들을 해고하는 선에서 마무리되는 게 해결책의 전부였던 까닭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흑인들은 논란이 불거짐과 동시에 조직적인 시위와 불매운동을 벌이며 스타벅스의 인종 차별 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질타하고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찢어진 눈' 사건은 비슷한 논란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일각에서는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의견이 간간이 나오기도 했으나, 자신의 일이 아닌 까닭에 찻잔속 태풍이 아닌 미풍으로 그치고 만다. 동양계를 향한 차별이 유독 극심한 데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를 더욱 씁쓸하게 하는 건 한국에서 만큼은 인종 차별 논란이 무풍지대인 것도 모자라 스타벅스가 갈수록 되레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스타벅스 매출은 액수 그 자체로는 세계 5위에 해당하지만 인구 수로 계산하면 당당히 1위이다. 스타벅스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1조2634억 원, 영업이익은 1144억 원을 기록했다. 국내 커피전문점 최초로 매출 1조 원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것이다. '찢어진 눈'이라는 우리를 향한 비하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스타벅스라는 브랜드를 가장 사랑하는 국민으로 우뚝 선 셈이다.


전년대비 매출은 25.9%, 영업이익은 33.9% 증가한 실적이다. 이용자 수는 하루 평균 50만 명에 이른다. 특히 스타벅스의 매장은 모두 직영 형태라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동반성장위원회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규제 적용을 받는 동종 프랜차이즈 매장의 반경 500미터 이내에 신규 출점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는 규제 정책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은 해당 기업에 날개를 달아주는 형국이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도심 뛰어난 상권에는 불과 반경 백 미터 이내에 스타벅스 매장 수 개가 진을 친 채 고객들을 쓸어담는 진기한 광경도 벌어진다.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게 기업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이긴 하겠으나, 기업 경영자는 대중과의 관계에 있어 높은 가치관, 정직한 행동, 정당한 실행을 유지해야 하고, 아울러 직원들로 하여금 도덕적 규범을 유지시켜야 하는 기업 윤리를 마땅히 따라야 하는 책무를 지닌다. 그로부터 벗어날 때 대중들의 비난을 자초하고 소비자로부터 외면을 받게 되는 건 당연한 이치이다. 


스타벅스는 글로벌 기업이다. 본사 경영진의 경영 마인드가 전 세계 모든 매장에 일관성 있게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미국이나 독일 등 우리 내부가 아닌 기타 국가의 사례라고 하여 작금의 인종 차별 논란을 남의 일인 양 결코 가볍게 치부해서는 안 될 노릇이다. 게다가 앞서도 살펴봤듯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은 흑인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욱 차별 받고 있는 입장 아닌가. 


기업이 그들의 도덕적 책임인 기업윤리의 책무를 망각할 때 이를 직접 일깨우고 경고해야 하는 건 소비자의 권리 가운데 하나다. 두 번까지는 실수로 받아들일 수 있어도 세 번째는 결코 실수라고 볼 수 없다. '찢어진 눈'이 아닌 '매의 눈'으로 이들의 행동을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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