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법과 제도는 왜 현실을 제대로 반영 못 할까?

새 날 2018. 5. 1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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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여왕 5월이다. 조금은 거친 듯싶은 데다 제법 차가운 느낌마저 드는 바람이지만, 모처럼 미세먼지가 걷힌 파란 하늘과 푸르름을 더해가는 싱그러운 식물들을 바라보며 이를 얼굴 전면으로 맞이하다 보니 문득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지는 시기이다. 덕분에 동네 하천변 위로 조성된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는 근래 연일 인산인해를 이룬다. 운동을 하려는 사람, 반려견과 산책을 즐기려는 사람, 조용히 사색에 빠져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 자전거를 타려는 사람 등등 그 모습은 정말로 각양각색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요즘 이곳 천변에 그 숫자가 눈에 띄게 늘어난 부류가 있다. 다름 아닌 개인 이동수단으로 불리는 전동휠이나 전동킥보드를 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천변에 조성된 자전거도로 위에서는 원칙적으로 이를 타서는 안 된다. 이러한 사실을 개인 이동수단 이용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지자체는 각종 방법을 동원하여 계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천변 진출입로 곳곳에는 이와 관련한 현수막도 내걸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동휠 이용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장 만만하면서도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자전거도로로 일제히 몰리고 있는 양상이다. 


그렇다면 왜 자전거도로 위에서는 전동휠을 타서는 안 되는 걸까? 전동휠 등에는 원동기 장치가 달려 있다.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니까 법적으로 이를 분류해보자면 개인 이동수단은 오토바이와 동급에 해당한다. 원동기 자격증이 없으면 원칙적으로 이러한 장치를 타고 다녀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그럼 원동기 자격증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하지만 비록 이 조건을 충족시키더라도 법적 지위를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한 개인 이동수단은 그저 애물단지에 불과하다. 



인도며 자전거도로며 그 어느 곳에서도 이 장치는 환영 받지 못한다. 개인 이동수단은 오토바이가 그런 것처럼 도로교통법상 원칙적으로는 차도에서만 이용 가능하다. 그렇다고 하여 도로 위를 질주하기에는 너무도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동차 운전자 입장에서는 자전거와 오토바이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이거늘, 이들 개인 이동수단마저 도로 위를 활보하려 든다면 탐탁지 않게 다가올 게 틀림없다. 즉, 개인 이동수단을 차도에서 이용하는 현상은 이를 직접 타는 이들이나 자동차 운전자 모두가 꺼려할 만한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비교적 안전할 것으로 판단되는 공원 내에서의 이용은 어떨까? 서울의 경우 공원 내에서 원동기를 타는 행위는 조례로 금지되어 있다. 과태료 5만 원 부과 대상이다. 결국 도시에서는 전동휠 류를 이용하는 이들이 마음 놓고 탈 공간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2001년 미국의 발명가 '딘 카멘'이 발명한 세그웨이를 기점으로 전동휠은 어느덧 우리 생활의 일부로 아주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새로운 탈 것의 등장이지만, 앞서의 이유 때문에 이를 최초로 발명한 딘 카멘의 표정이 썩 밝지는 못할 것 같다.


ⓒ연합뉴스


법과 제도가 세상의 변화 속도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덕분에 전동휠을 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범법자로 전락할 처지로 내몰렸으며, 일반 시민들은 아무 곳에서나 불쑥 튀어나오는 전동휠 때문에 신체적인 위협을 느끼는 일이 허다하다. 이와 비슷한 대표적인 사례로 전기자전거를 꼽을 수 있다. 이 역시 법적 지위를 부여 받지 못해 그동안 애물단지로 취급되어 오다가 지난 해 국회에서 관련 규정을 현실화한 '자전거이용 활성화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비로소 오는 9월 페달과 전기모터로 가는 '파스' 방식을 갖추고 시속 25㎞ 이하로 운행하며, 차제 중량 30㎏ 미만의 전기자전거에 한해 자전거도로 주행을 허가한 것이다. 


전기 자전거가 우리 생활 속에 등장한 건 꽤나 오래 전의 일이다. 이는 법과 현실의 괴리가 뚜렷함에도 법과 제도가 이를 뒷받침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있는가를 여실히 입증하는 사례다. 그동안 국회는 무엇을 했던 것인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무척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의 변화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정신이 없을 정도로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것들이 자꾸만 등장한다. 4차산업혁명시대로 접어듦과 동시에 이러한 현상에 가속마저 붙고 있는 양상이다. 법과 제도는 현실의 삶을 뒷받침해주는 등 든든한 토대 역할을 해야 한다. 변화를 지금처럼 느긋한 속도로 뒤쫓아 가다가는 가뜩이나 복잡한 세상에 혼란만 가중시킬 게 뻔한 노릇이다. 



개인 이동수단에 원동기 장치가 달렸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오토바이와 동급으로 취급하는 건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자 입법을 책임진 이들의 직무 유기에 다름 아니다. 무엇보다 개인 이동수단에 대한 올바른 법적 지위 부여가 시급한 실정이다. 전동휠 류는 시속 20킬로미터 이하의 속도 제한을 걸어두어 자전거도로 위에서만 탈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하며, 스텔스처럼 소리 없이 다가와 보행자를 위협할 소지가 다분하기에 인도나 공원 등에서는 이의 이용을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 


그렇다면 작금의 법과 제도는 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걸까? 입법의 전당 국회가 요즘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한 번 보시라. '드루킹' 사건을 둘러싸고 여야 간 첨예한 대립 양상을 빚으며 결국 4월과 5월 임시국회는 개점휴업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의 세비 1,149만 원은 매달 20일 그들의 통장으로 꼬박꼬박 입금된다. 이처럼 부당한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싶다. 일손을 놓는 바람에 정작 챙겨야 할 민생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이고 덕분에 온갖 불편함 및 갈등은 오롯이 시민들의 몫이 되고 있음에도 이들은 직장인 평균 급여의 수 배에 달하는 세비를 꼬박꼬박 받고 있으니 말이다. 


의원들이여, 제발 일 좀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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