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나라를 통째로 넘기겠냐는 그들이 짠한 이유

새 날 2018. 4. 29.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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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은 많은 사람들을 심쿵케 하는 역대급 행보였다. 이러한 이벤트를 성사시키고 성공리에 마무리 지어 한반도 평화체제의 로드맵까지 순식간에 우리들 눈앞에 펼쳐보인 문재인 대통령은 단연 이번 회담 성과의 수훈 갑이다. 모 언론사 기자는 '文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관심이 없든 2018년의 우리는 빚을 졌다(이데일리 2018.4.28)'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오늘날의 결과는 모두 문재인 대통령의 숨은 노력과 개인기 덕분이라며 한반도는 그에게 빚을 졌다고까지 표현하고 나섰다. 


해당 기사의 마지막 문장만 슬쩍 인용해 보자. "2018년 4월 27일, 북측의 지도자가 처음으로 남측에 발을 디뎠던 때가 1953년 정전 협정 이후 한반도에 전쟁이 터질 가능성이 가장 낮았던 날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문 대통령의 개인기다. 2018년 한반도는 그에게 빚을 졌다." 


ⓒ뉴시스


그러니까 우리가 앞으로 마음껏 누리게 될 평화는 문재인이라는 걸출한 인물의 개인기 덕분이었노라는 기자의 평가다. 지금은 고작 이 정도의 평가 수준에 불과하지만, 짐작컨대 가까운 훗날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는 마중물로 각인될 경우 문재인 대통령이 행사한 가치는 지금보다 훨씬 높아지리라 짐작되는 대목이다. 물론 벌써부터 문 대통령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들도 더러 있다. 


ⓒ뉴스1


보수 성향의 어르신들 일부로부터 변화의 조짐이 읽히고 있는 것이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SNS에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보수 성향이라고 밝힌 한 어르신이 남북 정상회담을 있게 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달라고 했단다.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을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사과 의사와 함께 말이다. 뿐만 아니다. 남북정상회담 환송 길에는 보수 성향이 짙은 재향군인회 회원들이 나와 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이렇듯 문재인 대통령의 성과는 우리 사회를 좀먹어 온 이른바 진영 논리, 즉 진보와 보수 양측의 상대방을 향한 갈등과 반목마저도 어느새 무너뜨리고 있었다. 평화의 힘은 이토록 막강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절대로 시대적 조류를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집단은 있기 마련이다. 이번 회담 결과에 대해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의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현이나 홍준표 당 대표의 위장평화회담 따위의 어깃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이들이 왜 국민의 보편적인 정서로부터 크게 벗어나 있는지에 대해 짐작가는 대목이 있기는 하다. 누가 인정을 하든 그렇지 않든 이들은 대한민국의 보수를 아우르는 대표 세력으로 자처하고 나섰다. 이들 세력을 상징해 온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잇따른 구속으로 보수 궤멸이라는 절체절명의 위협에 처한 상황 속에서 6.13 지방선거를 회생의 기점으로 삼은 것이다. 모든 역량을 지방선거에 쏟아붓고 있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이들은 6.13 지방선거 구호를 '나라를 통째로 북에 넘기겠습니까'로 정했다고 한다. 누구의 발상인지는 몰라도 진정 어처구니가 없다. 홍준표 당 대표는 지난 25일 "중앙정부를 좌파에 넘기고 지방정부까지 통째로 넘기겠냐고 국민에게 물어보자"고 밝혔다. 그러니까 또 다시 색깔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졌고 한반도 평화체제마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들은 어떡하든 자신들이 짜놓은 선거 전략과 끼워 맞춰야 하는 옹색한 처지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오늘날의 무리수는 이렇게 하여 탄생했다. 


ⓒ뉴시스


어찌 보면 조금은 짠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대목이다. 그들도 살아 남겠다며 일종의 발버둥을 치는 꼴이니 말이다. 때문에 이들이 연일 뱉어내는 허튼소리는 어떤 측면으로 보자면 귀엽기까지(?) 하다. 이들보다 더욱 황당했던 사례는 따로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27일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은 행위를 두고 사회 일각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자칭 보수라고 주장하는 세력 일각으로부터 문재인 대통령을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들의 논리는 이렇다. 통일부 등 관계당국에 사전 신고와 허가를 받지 않은 무단 방북에 해당하기에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실정법 위반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번 남북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딴지를 걸거나 어깃장을 놓는 무수한 사례들 가운데 이 장면을 가장 결정적인 무리수로 꼽고 싶다. 나경원 의원이나 홍준표 대표의 발언은 그나마 애교 수준에 불과하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고착화시키고 극한 대립을 유도하면서 안보 장사로 정치 생명을 연장해 온 과거 시대에는 이 법이 실제로 유효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바로 좌파니 종북이니 빨갱이니 하며 색깔론을 내세우면서 지금도 여전히 이를 교묘히 활용하고 있는 누군가처럼 말이다. 하지만 한반도는 지금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냉전을 종식시키고 항구적 평화체제로 바꾸려는 대변혁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처음 만나 악수를 나누던 군사분계선은 모두가 알다시피 높이 5cm, 폭 50cm의 콘크리트 턱에 불과하다. 이 턱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 65년 이상을 대치해 온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 턱을 넘어 남과 북을 잇따라 다녀왔다. 이제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은 채 폭 50cm의 군사분계선을 넘어서는 순간 남북 사이의 멀고도 험했던 심리적 거리가 크게 좁혀졌듯이, 그와 동시에 국가보안법은 이미 그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상실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통치 행위에 나선 국가 지도자에게까지 국가보안법이라는 무시무시한 잣대를 들이대는 작금의 무리수는 그저 웃어 넘기기엔 너무도 아픈 우리의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시대정신을 담지 못하는 법과 제도는 바뀌거나 폐기되어야 하는 게 마땅한 수순이다. 이러한 운명을 맞이해야 하는 대상이 비단 법과 제도뿐일까?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못하는 세력을 1차로 걸러내고, 다음 선거에서는 그 나머지를 솎아내어 변화의 싹이 움트고 비로소 평화의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는 한반도에 새로운 기운을 듬뿍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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