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손에 잡힐 듯 성큼 다가온 한반도 평화시대

새 날 2018. 4. 28.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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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 사이의 심리적 경계는 그 폭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주제를 놓고도 이의 성공을 기원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을 정도로 우리가 안고 있는 갈등의 골은 여전히 깊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남과 북을 둘로 가르는 물리적 경계는 고작 50cm밖에 안 된다. 극적인 대비다. 그동안 우리는 이 50cm의 경계 턱을 사이에 두고 극한 대치를 이어 왔다. 


판문점은 바로 이 50cm의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분단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이다. 아울러 비록 제한적이긴 하나 그동안 남북대화와 교류가 이뤄져 온 통로이기도 하다. 남과 북 두 정상이 27일 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이 연출됐다. 앞서도 언급했듯 군사분계선은 높이 5㎝, 폭 50㎝의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다. 이 콘크리트 턱을 기준으로 남쪽에는 자갈, 북쪽에는 모래가 깔려 있다. 


ⓒ한국일보


남측에서 이 턱을 넘어 모래를 밟을 경우 월북으로 간주되고, 그 반대일 땐 월남으로 간주되는 셈이다. 그러니까 남한과 북한의 경계가 고작 이 콘크리트 턱 하나에 의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실수로라도 월북 또는 월남 사태가 발생할 개연성을 미연에 차단하고 남과 북의 영역을 보다 명확하게 구분 짓고자 한쪽은 모래, 그리고 다른 한쪽은 자갈을 깔아놓은 모양이다. 


27일 오전 9시30분, 마침내 극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북측 최고 지도자가 이 군사분계선을 넘은 것이다. 이는 한반도 분단 이래 최초의 일이다. 그러니까 반 세기 하고도 십 수 년 만의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군사 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손을 맞잡는 장면은 멀게만 느껴졌던 남과 북의 심리적 경계를 일시에 무너뜨리게 한다. 북측 판문각에서 나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던 김 위원장의 모습은 이것이 진정 실화일까 싶을 만큼 극적인 장면 연출이었다. 



마침내 군사분계선 앞에 선 김 위원장, 그가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를 청할 땐 순간 시간이 멈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유난히 긴장해야 했다. 하지만 이내 다른 감정으로 바뀌었다. 뭉클함이었다. 특히 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 콘크리트 턱을 넘어 남측으로 온 뒤 문재인 대통령의 손을 잡고 북측으로 함께 건너가 포즈를 취하는 장면은 얼굴에 절로 흐뭇한 미소를 띠우게 하던 명장면이었다. 흡사 어릴 적 서울과 경기도 경계선 사이에서 한 발자욱 옮겨 서울과 경기도를 왔다 갔다 하던 장난처럼 다 큰 어른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남과 북을 그렇게 오르락 내리락 했으니 말이다. 


두 사람이 손을 맞잡을 당시나 군사 경계선을 넘나들 때 TV 화면상으로는 두 정상 사이에서 무언가 대화가 오고 간 것으로 보였지만, 우리로서는 무슨 말이 오갔는지를 알 방도가 없다. 궁금하던 차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언론보도를 통해 당시 대화 내용들이 속속들이 밝혀졌다. 판문각에서 성큼성큼 군사 분계선으로 다가온 김정은 위원장에게 문재인 대통령은 "오시는 데 힘들지 않았습니까.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단다. 


ⓒ한국일보


이에 김정은 위원장은 "정말 마음 설렘이 그치지 않고요. 이렇게 역사적인 장소에서 또 대통령께서 분계선까지 맞이해준 데 대해 정말 감동적입니다"라며 화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 대통령은 다시 "여기까지 온 것은 위원장님 아주 큰 용단이었습니다" 라 말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50cm의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으로 넘어 온 뒤 기념사진을 촬영할 때 이렇게 물었단다. "남측으로 오시는데, 저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을까요?" 


그러자 김 위원장은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 라고 말하며 문 대통령의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훌쩍 넘어 북측으로 함께 건너가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10초 간 머물다가 남측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날의 가장 극적인 장면은 이렇게 연출됐다. 이번 정상회담은 모든 과정과 절차가 온통 화제거리를 낳고 있는 데다가 그 자체로 역사를 만들어가는 순간들의 모둠이었으나 그 가운데서도 나는 두 정상이 군사분계선에서 손을 맞잡고 잇따라 월남과 월북을 시도했던 이 장면을 가장 상징적이면서 남북 정상회담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꼽고 싶다. 



우리가 사는 이 땅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와 공존의 물꼬가 트였다. 이날 발표한 공동선언문 대로 한반도의 평화 구축 프로젝트가 착착 진행되고 마침내 우리 땅에 진정한 평화가 안착하게 된다면 27일 군사분계선에서 이뤄진 두 지도자의 만남은 평화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의 분기점이 될 공산이 크다. 이제는 6.25전쟁의 직접 이해당사자인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일시적인 평화가 아닌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마련하는 일에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할 테다. 


박근혜 정권 당시 일방적으로 폐쇄, 남북의 상황을 극한으로 몰고갔던 개성공단사태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이산가족상봉도 곧 이뤄질 전망이다. 무늬만 비무장지대였던 곳을 진정한 비무장지대로 탈바꿈하기 위한 노력들이 진행될 예정이기도 하다. 우리 국민이 금강산에도 곧 갈 수 있게 될 것 같다. 온통 화해 무드다. 두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라면서 평화시대를 천명했다. 그동안 분단시대의 상징 같은 존재였던 판문점이 한반도 평화시대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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