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드러나지 않아 간과하기 쉬운 세상 이치

새 날 2018. 3. 2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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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재학 당시 난 학교 구성원들에게 학교 주변 소식을 전하던 학교 신문 제작 동아리 '신문편집반' 활동을 한 적이 있다. 매주 한 번씩 돌아오는 특별활동 시간에는 어디든 가입하여 의무적으로 활동을 해야 했는데, 마땅히 할 것도 없었고 비교적 편하면서 만만할 것 같아 이를 덥석 신청한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볼 때 이는 큰 판단 착오였다. 분기마다 발행되는 학교 신문 제작은 생각만큼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다른 활동은 정확히 1주일에 한 번씩 다소 형식적으로 이뤄졌건만, 이 동아리는 방과 후 거의 매일 학교에 남아 활동을 벌여야 할 만큼 고된 데다가 대충 시간을 때울 수도 없었다. 심지어 방학 때에도 학교에 나와 관련 학습을 진행하거나 신문 제작 작업을 도와야 했다. 도제식으로 작업이 이뤄지는 바람에 선후배 사이의 위계 질서가 매우 철저했으며, 이를 책임지던 선생님도 엄격했다. 


취재를 나가고 기사를 작성하는 건 오롯이 2학년의 몫이었으며, 1학년은 교정 업무를 도맡았다. 이를 위한 학습도 병행됐다. 국문법을 익히고, 띄어쓰기며 맞춤법 강의가 선배들에 의해 이뤄졌다. 교정 작업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갔다. 원고는 사람의 손을 많이 탈수록 점차 빨간색 볼펜 자국투성이로 변모해 갔다. 최종 교정은 선생님의 몫이었다. 


ⓒ한국일보


이렇듯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활자로 인쇄된 신문으로부터는 어김없이 오탈자가 발견되곤 한다. 그럴 때마다 허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또 다른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 오곤 했다. 선생님의 꾸중 때문이라기보다 완벽하지 못한 나 스스로가 짐짓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당시 신문편집반 활동은 우리 반원들에게 많은 후유증(?)을 남겼다. 글을 볼 때면 내용에 집중하기보다 띄어쓰기며 맞춤법 등 곁가지에 거의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심지어 교과서를 볼 때조차 그랬다. 


최근엔 취업준비생과 대입준비생의 자기소개서를 각기 봐줄 기회가 있었다. 자신의 삶과 가치관 그리고 개인적 역량을 특정 글자 수 안에 오롯이 가둬놓는 이 작업이 쉬울 리 만무했다. 그들의 삶을 경청하고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함께 치열하게 고민해야 했으니 말이다. 당사자 없이 달랑 자기소개서만 가지고 이를 첨삭해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어쨌거나 누군가의 삶에 개입하는 일인 까닭에 이 작업은 언제나 신중 모드였다. 그 때문인지 앞서 언급한 신문편집반에서의 기사 교정 작업도 결코 만만하지는 않았으나 자기소개서 클리닉은 그보다 몇 곱절은 더 많은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느낌이었다. 



전교생들에게 읽히는 학교 신문이 인쇄물로 뽑혀 학생들의 손에 쥐어지기까지, 즉 특정 결과물로 완성되기까지, 비록 눈에 띄거나 각광을 받지는 못해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엔 그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며 에너지를 쏟아붓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삶과 앞으로의 의지가 담긴 자기소개서를 어느 누가 읽더라도 편안하고 뚜렷하게 다가오도록 하기 위해 꼼꼼이 이를 훑으며 다듬어주는, 그 이면에서 말 없이 수고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일보가 책 교정교열 직업에 대해 소개한 기사를 지난 24일 보도했다. 책 한 권이 인쇄되어 독자들 앞에 나오기까지 그 뒤에서 치열하게 활자와 싸우는 이들의 직업 세계를 짚어본 기사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기를 책을 쓸 정도의 작가라고 한다면 글의 완성도가 상당히 빼어날 것이라 짐작하기 마련이다. 띄어쓰기며 맞춤법 따위는 절대로 틀리지 않을 것 같고, 흡사 일필휘지로 써내려 가듯이 왠지 완벽한 글솜씨를 뽐낼 것만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손에 쥐어지는 책의 대부분은 흠결이 거의 없을 만큼 매끈하게 작업된 완성본이기 때문일 테다. 


ⓒ한국일보


그러나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은가 보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글로 써서 책을 지어낸 사람, 즉 저자는 완벽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닐 뿐더러 교정과 교열을 보지 않은 이들의 맨글 내지 초고가 공개되면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저자가 부끄러워할 만큼 엉망진창이라고 하니 말이다. 거의 매일 블로그 공간에 포스팅을 작성하는 나 또한 글을 발행하기 전에 막 써내려간 초고를 읽다 보면 얼굴이 화끈거리기 일쑤이니 왜 아닐까 싶기도 하며, 저자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일 테니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다. 


이를 거꾸로 말하자면 그만큼 교정교열이라는 작업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남의 글을 보면서 교정교열을 하는 직업인들은 아마도 예전에 내가 신문편집반 활동을 한 이래 활자만 접하게 되면 한동안 자연스럽게 띄어쓰기 내지 맞춤법 따위에 신경이 쓰이던 류의 직업병에 시달리기가 십상일 듯싶다. 기사에 따르면 실제로 이들은 다음과 같은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활자를 보는 것 자체가 괴로워요. 신문기사도 거의 보지 않아요.. 교정교열자를 포함한 책 편집자는 ‘원고’만 볼 뿐, ‘책’은 보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요. 화장실 거울에 붙은 광고의 맞춤법과 글자 간격 같은 걸 저도 모르게 따져 보곤 해요. 엉망인 광고를 보면 괴롭고요. 휴대폰 문자에도 맞춤법, 쉼표를 철저하게 찍는 것도 직업병이에요. 저는 일부러 마침표를 안 찍거나 두 개씩 찍어요.



목과 허리 디스크, 거북목, 안구건조증, 노안처럼 신체를 통해 발현되는 직업병도 이들에게는 일종의 천형처럼 다가온다고 한다. 자신들의 노고가 고스란히 담긴 책이 인쇄되어 출간되면 보람을 느끼기 전에 공포감부터 먼저 밀려든다는 이들의 하소연은, 과거 학교 신문이 인쇄되어 학생들에게 배부될 때마다 겪게 되던 그 정체 모를 불안감 따위와 어쩌면 매우 유사한 현상이 아닐까 싶다. 


한 인격체가 올곧게 성장하기까지 부모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도움과 보살핌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듯이, 누군가의 자기소개서가 완성되어 기업체나 대학에 보내지기까지 또 다른 이들의 수고로움이 뒤따르듯이, 전교생들에게 읽히는 학교 신문이 제작되어 배부되기까지 담당 선생님을 비롯한 그 제자들의 노고가 오롯이 담겨 있듯이, 책 한 권이 독자의 손에 쥐어지기까지 누군가는 직업병을 앓아가며 사투를 벌이고 또한 에너지를 소진시켜야 하듯이, 이처럼 세상 모든 결과물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로움이 깃들어 있는 법이다. 교정교열 직업인을 소개한 이 기사는 어쩌면 이제껏 너무도 당연한 듯 여겨오거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우리가 흔히 간과하기 쉬운 이 이치를 새삼 깨닫게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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