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그 이름만으로도

산울림 맏형 김창완이 지닌 진정한 매력

새 날 2018. 3. 24. 13:50
반응형

한 매체가 형제 락밴드 산울림의 맏형 김창완과 인터뷰한 기사를 실었다. 반가움이 앞선다. 그러나 예전 같았으면 그의 이름 석자만으로도 설레고 흥분되었을 법한데, 이제는 나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그런 류의 감정 없이 차분한 마음으로, 아울러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내겐 만년 청춘으로 기억돼 있는 '김창완'이라는 이름 석자 옆 괄호 안에 쓰여진 64라는 숫자는 굉장히 낯설게 다가온다. 


하긴 그가 산울림이라는 이름으로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지도 햇수로 벌써 40년이 넘었다. 어쨌든 그나 나나 흐르는 세월 앞에선 어쩔 도리가 없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빙그레 웃는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천진난만함 따위가 묻어 나오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그를 좋아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순수함이 뿜어내는 매력 때문이 아니었던가. 


ⓒ동아일보


환갑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맑은 미소와 아이 같은 표정을 간직하기란 참 쉽지 않은 노릇일 텐데, 우스갯소리이지만 내가 역시 사람 보는 눈만큼은 조금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21세기에 태어난 이들은 김창완 하면 TV 드라마나 영화에 조연으로 가끔 얼굴을 비추거나 라디오 진행자쯤으로 그를 인식하기 쉬울 것 같다. 아니면 요즘 MBC 다시 만나는 드라마 '하얀거탑'에서 명인대병원 부원장 겸 소화기내과 과장 우용길 역으로 등장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오히려 쉽게 받아들일까? 그나마 이름 석자라도 기억하고 있으면 다행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는 사실 한국 가요계에 커다란 획을 그은 유명 대중 음악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다른 걸 모두 떠나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5위, 6위, 그리고 73위에 산울림의 1집부터 3집까지 차례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당시 활약상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객관적으로 입증한다. 1977년 데뷔곡 '아니벌써'로 가요계에 어마어마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그는 고작 1년 사이에 연거푸 네 장의 앨범을 발매한다. 



이 가운데엔 '개구장이'라는 국민 동요 앨범도 포함돼 있다.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고등학생 때 이미 수백 곡의 노래를 만들어놓았을 만큼 천재적인 뮤지션이다. 더욱 극적이었던 건 이후로 기억된다. 동생들의 군 입대로 김창완 혼자 남게 된 뒤에도 산울림이라는 이름으로 연거푸 수 장의 앨범을 발매했으니 말이다. 김창완의 독집 앨범 '기타가 있는 수필'도 이 즈음 발매됐다. 


동생들의 제대 후 뽑아낸 첫 앨범이 바로 '청춘'이라는 히트곡이 담긴 7집이다. 이 당시를 산울림 시즌 2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이들의 노래는 대중 친화적으로 변모했으며, 세련미까지 더해졌다. 내가 이들의 음악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자 이 앨범 덕분이다. 하지만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이름을 올린 앨범의 면면을 놓고 보더라도 산울림이라는 형재 그룹의 진면목은 초창기 앨범에 대부분 발휘돼 있다. 아마추어의 풋풋함과 기성 음악과는 전혀 다른 실험정신 따위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어느덧 환갑을 훌쩍 넘긴 김창완은 이제 음악인으로서의 명성보다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의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아니 어쩌면 글을 쓰는 작가로서 더 잘 알려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해 그가 펴낸 에세이집 ‘안녕, 나의 모든 하루’가 대한민국 전자출판 대상작으로 선정됐다고 하니 말이다. 그의 재능이 미치지 않는 영역이 과연 있기나 한 걸까? 그림이면 그림, 글이면 글, 음악이면 음악, 예능이면 예능, 연기면 연기, 방송 진행이면 방송 진행, 과연 못하는 게 무얼까? 


ⓒ동아일보


인터뷰를 통해 기자가 그에게 리더론에 대해 질문했던가 보다. 이에 대한 김창완의 답변은 대략 두 가지로 요약되는데, 첫 번째는 윤리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무장하고 무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올바른 리더라고 밝혔다.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이 현재 죄를 지어 구속되어 있고, 사회 일각에서는 미투 운동으로 문화예술이나 정치적으로 상당한 대중적인 인기를 끌던 이들이 연속적으로 추락하는 상황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답변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그의 두 번째 리더론이 훨씬 마음에 들었으며, 역시 김창완답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뒷방늙은이처럼 묵묵히 사람들을 배려하고 도와주는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인데, 이를테면 할머니의 존재감을 예로 들고 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이제 모든 걸 내려놓아 어느덧 뒷방늙은이라는 존재가 되어 있으나 그들의 힘없는 손, 희미한 미소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용기로 다가오게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연로해지신 부모님의 얼굴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발언이다. 세상은 힘없는 뒷방늙은이라며 당신들을 퇴물 취급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이제는 힘도 없고 특별히 하는 일도 없지만, 당신들께서 건네는 말없는 미소와 한 마디, 그리고 뒤에서 묵묵히 자식들을 응원해주는 그 존재감만으로도 우리에게는 큰 힘으로 다가온다. 세월을 버텨온 노고, 어쩌면 이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리더십이 아닐까 하는 김창완의 리더론은 그래서 깊은 울림을 준다. 


데뷔한 지 어느덧 40년도 더 지난 형제 그룹 산울림이 그 청아한 목소리와 맑은 연주로 우리에게 큰 울림을 선사해주었듯이 김창완의 리더론은 삭막하기 그지없는 이 시대 우리의 메마른 감성에 그의 해맑은 미소와 함께 촉촉한 파장을 일으킨다. 나의 젊은 시절 우상이었던 산울림과 김창완은 이제 또 다른 영역에서 여전히 그 존재감을 뽐내고 있기에 내겐 더할 나위없이 반갑고 기쁘다. 영원한 형제 그룹 산울림의 맏형 김창완이 지닌 진정한 매력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