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나잇값 하라'는 표현은 일종의 편견이다

새 날 2018. 1. 29.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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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프로그램 '미운우리새끼'에 등장하는 가수 김건모 씨(이하 존칭 생략)는 50세가 넘었다. '쉰건모'라는 별칭은 이로부터 기인한다. 나이 50이면 지천명이라고 한다. 하늘의 명(命)을 알게 된다는 나이다. 즉, 현재의 삶이 자신의 의지만이 아닌 하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을 느끼게 될 나이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건모는 여전히 아이와 비슷한 감성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피규어나 프라모델 등을 갖고 노는 걸 좋아하며, 근래엔 드론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이다. 


해당 나이대에 걸맞지 않은 듯한 생활을 하고 있는 그를 시청자들은 신기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혹자는 그가 철이 들지 않은 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쉽게 단정 짓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볼 땐 그가 철이 들지 않은 것도, 아울러 신기하게 바라볼 법한 일도 결코 아닌 것 같다. 부모의 시각으로는 그 나이에 이를 때까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자식이 영 못마땅한 데다가 다른 한편으로는 안타깝겠지만, 그는 자신이 그러고 싶어 그렇게 사는 것일 뿐이다. 남 눈치 보지 않고 살고 싶은 방식 대로, 그러니까 하늘의 섭리 대로 사는 것일 뿐이다. 



김건모가 어느 누구보다 창의성과 예술성이 뛰어난 천재적인 뮤지션인 이유도 바로 지금처럼 어린 아이와 같은 감성을 지녔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그 역시 우리 같은 일반인들의 시선에 갇힌 채 이른바 나잇값 하며 살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예능 감각이나 예술성 따위를 일절 발휘하지 못한 채 능력이 고스란히 사장되고 말았을 게 틀림없다. 일반인들의 시각에서 보자면 김건모는 정말 나잇값 제대로 하지 못하는 철부지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듯 '나잇값 해야 한다' 류의 표현은 비록 김건모 같은 천재적인 뮤지션이 아닌,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내게도 무척 거추장스럽게 다가온다. 20대가 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거나, 30대, 40대 혹은 50대 등등 특정 나이가 되면 응당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의, 일종의 편견에서 비롯된 속박 따위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아울러 자식을 낳아 기른다고 해서 좀 쫄싹맞게 행동하면 안 되는 걸까? 한 가정의 가장이라고 하여 힘들 때가 없지는 않을 텐데, 그럴 때마다 힘들다고 내색하면 안 되는 걸까? 어른이 되었다고 하여 꼭 어른답게 행동해야만 하나? 그렇다면 어른답다는 기준은 또 무언가? 이 또한 일종의 편견 아닐까? "남자는 우는 거 아니야" 따위 류와 뭐가 다른가. 왜 남자는 울면 안 되나. 왜 슬픈 영화를 보면서 여성들은 마음 놓고 우는데, 남성들은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주변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부끄러워 해야 하나. 이 놈의 편견 따위 확 거둬낼 수는 없는 걸까?



얼마 전 국민동요라 불릴 정도로 인기있는 동요 애니메이션 '상어가족'이 성역할을 고착화하는 편견을 심어준다고 하여 논란이 된 바 있다. 상어가족에서 여성인 엄마와 할머니에게는 각각 '어여쁜'과 '자상한'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남성인 아빠와 할아버지에게는 '힘이 센', '멋진'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이에 대해 여성은 반드시 예쁘고 자상해야 하며, 남성은 무조건 힘이 세고 멋져야 한다는 식의 성역할을 고정시킨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가치관이 아직 미형성된 어린 아이들에게 이러한 인식을 심어준다면 말그대로 남성과 여성을 특정 이미지로 고정, 이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별 시답잖은 걸로 트집을 잡는다는 식의 시각도 드러내고 있으나, 성역할에 대한 편견을 심게 될 것이라는 우려뿐 아니라 캐릭터와 관련한 색상 고정에도 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왜 여성은 한결 같이 분홍색이어야 하며, 남성은 또 파란색이어야 할까.



마트의 아이들 장난감 코너에 가서 보면 여아들 쪽엔 온통 핑크핑크한 것들로 가득하고, 반대로 남아 쪽엔 상어가족 남성 캐릭터와 비슷한 류의 분위기로 도배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소한 듯싶은 이러한 요소들이 바로 편견을 심어주고, 결과적으로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일쑤다. 이렇듯 우린 편견과 고정관념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편견을 거둬내려는 사회적 노력이 아직은 많이 미흡한 탓이다.


'나잇값 해야 한다' 역시 편견에 가깝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내 생각이다. 아울러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도리와는 다른 측면에서의 얘기다. 이 편견은 부지불식 간에 우리의 자의식과 행동을 스스로 통제하거나 옭아매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개성의 발현도, 창의력의 발휘도 쉽지 않다. 가뜩이나 힘든 세상이라 제정신을 차리고 살아가기에도 버거운 판국이거늘 나잇값 제대로 지키면서 살아간다는 건 더더욱 어려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난 나잇값 하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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