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윈프리2020, 그녀를 응원합니다

새 날 2018. 1. 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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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여러모로 의미 깊었던 행사다. 일단 배우들의 의상부터 특이했다. 레드카펫을 밟고 입장하는 할리우드 배우들은 당연히 화려하고도 멋진 의상을 갖춰 입었을 것으로 예상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법칙은 여지없이 깨졌다. 이날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와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들은 하나같이 검은 의상을 입고 있었다. 미국 영화계의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 추문에서 비롯돼 미국 연예계와 정계는 물론 전 세계를 강타한 '미투 캠페인'에 연대를 표시하기 위함이다. 


미투 캠페인을 주도한 배우들은 앞서 미국 내 성폭력과 성차별을 없애기 위해 단체를 결성한 바 있고, 이들을 중심으로 검은 의상 입기가 사회 각계로 들불처럼 번졌으며, 급기야 골든글로브 시상식마저 검은색 물결로 뒤덮인 것이다. 하지만 이번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백미는 단연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가 장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윈프리는 이날 공로상인 '세실 B. 데밀 상'을 받은 뒤 다음과 같은 수상 소감을 밝혔다. 


ⓒ연합뉴스


"나는 지금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모든 여성들이 새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인지하기를 바란다. 마침내 새날이 밝으면 그것은 많은 훌륭한 여성들 때문일 것이며, 이 중 많은 이들이 오늘 밤 이곳에 함께있다. 어느 누가 됐든 다시는 '미 투'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로 우리를 이끌기 위해 힘겹게 싸우고 있는 매우 훌륭한 남성들 때문이기도 하다"


이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시상식장 내에서의 열광적인 박수 세례 따위를 언급하려는 게 아니다. 소감 발표가 있은 지 얼마 후 윈프리가 2020년 미국 대선 후보로 급부상한 것이다. 해당 수상 소감이 화제를 모으며 여기저기에서 대선 후보 출마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트위터에는 2020년 대선 후보로 윈프리를 밀자는 의미의 '윈프리2020' 트윗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윈프리는 10대 싱글맘의 사생아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테네시주의 한 지역 방송사에 최연소이자 최초의 흑인 여성 뉴스 앵커로 발탁되었고, 이후 방송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그녀를 있게 한 '오프라 윈프리 쇼'는 1986년부터 2011년까지 25년 동안 진행한 바 있다. 



그녀가 실제로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게 될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본인의 의지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출마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이 성숙되느냐가 관건으로 보인다. 하지만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트럼프와 맞붙게 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노라는 평가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를 밑돌고 있고, 지난해 미국 퀴니피악대 여론조사에서 윈프리는 52%의 지지율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미 대중들이 그녀를 트럼프의 대항마로 지지하며 응원하고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혐오와 차별에 맞선 저항의 몸부림이자 절망을 딛고 희망을 찾으려는 소박한 몸짓이다. 인종차별, 성차별 등의 거센 막말과 기행으로 정치권과 언론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던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엔 극단적인 주장에 열광하게 되는 현상 즉, 거센 비난을 부르는 동시에 지지율을 급상승시키는, 이른바 '트럼피즘'이 자리하고 있다. 즉, 혐오스럽게도 혐오와 차별 따위의 것들이 그의 정치적 자산이 되고 있는 셈이다. 


예상대로 그의 기행에 가까운 정치 외교 행보는 전 세계가 동시에 치를 떨어야 할 만큼 경악스러운 것이었으며, 그의 막말과 여성편력 문제 등은 모든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미투 캠페인이 들불처럼 번지면서 트럼트 대통령으로부터 당했다고 공개된 여성만 17명에 이른다. 이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건 이 트럼프 현상이 국내에까지 침투해 들어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홍준표 대표의 발언을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KNN 앵커


현재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막말은 트럼프도 저리 가라 할 만큼 저속하기 짝이 없다. 트럼프식 혐오 선동이 미국에서 흥행하다 보니 그 또한 트럼프와 비슷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동일한 이미지로 수렴해가고 있는 와중이다. 그의 막말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지는 최근 그의 발언을 바라보던 부산경남방송 KNN 앵커의 표정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홍준표 발언 지켜보던 앵커들의 황당해하는 표정' 기사 참고)


정치를 흔히 쇼라고 하며, 정치인들은 이미지로 먹고 산다고도 한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표현이다. 때문에 극단적인 언행으로 지지자들을 끌어모으고 그들로부터 열광을 이끌어내어 지지율을 높이는 것을 그들만의 정치 행위 방식이라며 우길 수 있을지는 모르나 그로 인해 상처를 받고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데다가 사회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이들의 정치 노선이 올바른 길이 됐든 그릇된 길이 됐든 그와는 별개로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없다.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잉태하기 때문이다.



2020년은 차기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차기 선거에서는 적어도 트럼프보다 정상적인 사고 체계를 갖춘 것으로 예상되는 인물이 그를 압도적으로 눌렀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사람이 윈프리라면 더욱 좋겠지만 혹여 그녀가 직접 대통령 후보가 되지 않더라도 그다지 상관은 없다. 혐오와 차별을 떨쳐내기 위한 꿈틀거림과 절망을 딛고 희망을 찾으려는 움직임은 이제 윈프리 그녀를 구심점으로 본격 시작됐기 때문이다. 내가 윈프리를 적극적으로 응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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