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사랑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는 과정 '내 사랑'

새 날 2018. 1. 7.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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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으로 장애를 타고난 모드(샐리 호킨스)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뒤 고모집에 얹혀 살고 있는 처지다. 그녀는 외양이나 걸음걸이가 비장애인에 견줘 다소 불편해 보이는 까닭에 거리를 다닐 때면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당하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마트에 들렀다가 우연히 여성 가정부를 구한다는 한 남성을 알게 되고, 다짜고짜 그의 집을 찾은 그녀다. 에버렛(에단 호크)이라 불리는 건장한 남성이었으며, 장작과 생선을 내다 팔거나 보육원에서 허드렛일을 도와주는 등의 일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에버렛 혼자 거주하던 집은 아주 조그맣고 보잘 것 없었다. 모드는 낯선 남성의 집에 무작정 들어서는 일이 내심 두려웠으나 결코 이를 내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드는 에버렛이 원하던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불편해 보이는 육체로 집안일 등 자신을 돕겠다고 나선 사실이 그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노릇이었다. 에버렛은 완고한 사람이었다. 그 때문인지 아니면 과거의 상처 때문인지 몰라도 타인에게 마음을 열어놓는 법이 없다. 덕분에 늘 혼자였으며, 주변 사람들 또한 그러한 그를 탐탁치 않아 했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 그의 괴팍한 성격은 오롯이 모드를 향하고 있었다. 모든 건 그 위주였으며, 그녀는 그의 지시를 그저 묵묵히 따라야만 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고모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집을 뛰쳐나온 터라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던 모드는 독선적이며 강압적이기까지 한 그의 완력에도 주춤거리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의 비위를 맞추려 애를 쓴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는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다른 사람들과 달라 보인다는 이유 만으로 차별이나 멸시를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모드는 장애인으로 태어나 행동이 부자연스럽고 어설프기 짝이 없다. 제 3자들로부터의 냉대는 그래도 견딜 만하다. 피붙이들마저도 그녀를 쉽게 외면하는 탓이다. 이렇듯 의지할 데라곤 일절 없던 그녀에게 그나마 유일한 위안으로 다가오던 건 바로 그림 그리기였다. 



어설픈 데다가 조금은 느리기까지 하지만 그녀는 그녀 만의 방식으로 에버렛과 세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선다. 덕분에 틈 나는 대로 집안 곳곳에 그려놓은 그림들이 세상과의 소통 창구가 되는 행운도 뒤따른다. 물론 기본적으로 그림과 관련한 재능 및 역량을 갖추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치 주종관계처럼 얽혀 있던 두 사람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는 모드의 그림을 매개로 분위기가 점차 누그러지기 시작한다.



이 작품은 나이브 아트(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작가들이 그린 작품 경향성)로 명성을 얻었던 캐나다의 실존 인물 '모드 루이스'의 삶을 그린 영화다. 장애로 인해 불편을 겪는 육체, 그리고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환경 속에서도 오롯이 자신 만의 삶을 개척해온, 세상을 마주하는 그녀 만의 방식과 두 사람이 어떻게 사랑을 완성해 가는가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으로 알려진 대서양에 위치한 캐나다 뉴펀들랜드의 그림 같은 풍광이 스크린 위로 펼쳐질 때마다 절로 탄성을 내지르게 된다는 사실은 더욱 매력적인 대목이다.  



모드나 에버렛 모두 부족함이 많은 사람들이다. 모드는 평생 관절염을 안고 살아야 하는 장애인으로 태어나 주변의 숱한 차별과 편견 속에서 성장했다. 에버렛 역시 고아로 태어나 보육원에서 성장한 뒤 생선 등을 팔며 생계를 잇는, 타인들과의 소통 없이 나홀로 살아가는 외톨이다. 두 사람에게는 이렇듯 공히 부족함을 안고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 상처를 받고 있다는 또 다른 공통점도 안고 있다. 



결핍투성이의 이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나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선다. 두 사람의 거처였던 에버렛의 집은 처음엔 황량하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으나 모드의 손길이 닿음과 동시에 점차 변모하기 시작한다. 그 모습은 흡사 두 사람 사이에서 싹트고 키워지던 사랑의 형체를 빼닮았다. 집 안팎에는 모드가 그린 아기자기하면서도 화사한 그림들로 가득 채워진다. 그녀가 그린 그림이 산드라(캐리 매쳇)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소통의 매개 역할을 하게 될 즈음, 사랑이 정점을 향해 치닫듯이 두 사람의 집은 점차 완전체로 수렴해간다. 



계절마다 각기 다른 특색을 뽐내는, 두근두근거릴 만큼 멋진 대자연과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마을 풍광을 보는 것 만으로도 이 영화를 관람할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요소다. 아울러 부족함을 지닌 사람들끼리 서로 부대끼며 삶을 누리고, 이를 통해 결핍을 메우는 등 서로에게 비록 느리지만 조금씩 다가서려는 진정 어린 몸짓은 우리에게 큰 위안으로 다가온다. 



감독  에이슬링 월쉬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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