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자유한국당이 인공기에 집착하는 이유

새 날 2018. 1. 2.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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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기가 은행 달력에 등장하는 그런 세상이 됐다. 금년 지방선거는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는 선거가 되게 할 것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2018년 첫 일성으로 발표한 신년사 내용의 일부다. 인공기가 모 은행 달력에 등장했다고 하니 화들짝 놀랄 만한 소식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지난해 우리은행이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을 받아 주최한 ‘제 22회 우리미술대회’ 초등학교 4∼6학년부에서 대상을 수상한 그림 ‘쑥쑥 우리나라가 자란다’를 은행이 발간한 책상 달력에 삽입한 사실을 두고 이처럼 호들갑이란다. 


그림을 살펴 보았다. 기특하게도 아이는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를 꿈꾸며 통일나무를 그렸고, 그 나무의 양 줄기에 태극기와 인공기를 나란히 배치했다. 우리 민족의 번영과 행복한 미래를 꿈꾸게 하는 긍정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이러한 초등학생의 그림마저도 종북몰이의 수단으로 삼고 싶었던 모양이다. 종북 타령으로 그동안 심심찮게 재미를 봐오더니 눈에 뵈는 게 없는가 보다.


ⓒ우리은행


이들은 그림의 전체 맥락은 살피지 않은 채 오로지 인공기 하나만을 트집잡고 있었다. 즉, 달을 쳐다보라며 손가락이 달을 가리키고 있건만, 정작 달은 보지 않은 채 손가락을 쳐다보며 뭐라고 하는 꼴과 진배없다. 장제원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1일 공식 논평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친북 단체도 아니고 우리은행이라는 공적 금융기관의 달력에 인공기 그림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탁상달력마저 이용해 정권에 아부하려는 우리은행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당은 사회 곳곳에 만연한 장밋빛 대북관과 뿌리 깊은 안보 불감증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반드시 지켜내겠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한 언론사의 지적처럼 자유한국당의 인공기에 대한 집착은 유별나다. 지난 해 대통령선거 당시 이들이 어떤 짓을 벌였는지 우리는 또렷이 기억한다. 자신들이 제작한 선거 홍보물에 인공기를 버젓이 그려놓은 채 이를 이용하여 종북몰이에 심취하더니, 초등학생이 미술대회에 참가하여 그린 작품 속 인공기에 대해선 안보 불감증이라며 핏대를 세우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형국 아닌가. 이러한 볼썽사나운 꼴이 바로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제1야당의 본 모습이다. 


심각한 인지부조화가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당 대변인과 대표까지 직접 나서서 한 아이의 순수한 동심마저도 색깔론으로 교묘하게 둔갑시켜 놓았으니 말이다. 아이의 재능을 칭찬하고 다독여주어도 시원찮을 판국에 동심 파괴 행위를 일삼으면서도 이들은 부끄러워할 줄을 모른다. 


이들의 인공기에 대한 집착은 사실 예전부터 있어 왔다. 지난 2014년 6월 현충원에 설치됐던 국민화합과 평화통일을 상징하는 모 대학 산업디자인학과 학생들이 만든 '평화의 문'이라는 작품은 인공기가 그려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철거됐으며, 그에 앞서 2013년 5월 MBC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산 헬기 '수리온'의 실전 배치 기념식 참석과 관련한 보도를 하면서 배경화면으로 연설 중이던 박 전 대통령의 얼굴 옆에 인공기를 배치한 영상을 내보냈다가 방통위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기도 했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고, 북한의 도발 위협이 상존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 하에서 종북몰이는 당하는 측 입장에서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최근 화두로 떠오르는, 실화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 '1987'에서도 대공 임무를 맡은 이는 누가 됐든 최고의 권력을 휘둘러왔던 곳이 바로 대한민국 사회다. 자유한국당은 그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들을 비롯한 이른바 자칭 보수세력들이 종북몰이 등 색깔론을 손에서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북한 김정은의 신년사로부터 비롯되고 있는 남북 간 화해 무드는 올해 평화와 안전을 정착시키겠노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소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케 한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한국당의 인공기 해프닝은 시의로부터는 물론, 국민적 여망으로부터도 크게 벗어나 있다. 자유한국당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근혜 정부와 한 몸이었던 세력이다. 이렇듯 이전 권력의 실정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에도, 즉 적폐세력의 잔당임에도 불구하고, 당 이름만 슬쩍 바꿔 헤쳐모여한 뒤 모르는 척 애써 얼굴색을 싹 바꾸고 있다. 


도덕적으로 보나 정책적으로 보나, 어느 모로 보아도 열세에 놓인 까닭에 궤멸 위기에 처한 그들은 결국 색깔론이 아니고서는 생명 연장이 불가능한 집단이다. 죽어가는 자칭 보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고 하지만, 그 방식은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다. 지방선거까지는 반 년도 채 남지 않았다. 다시 일어서느냐 완전히 궤멸되느냐의 갈림길에 놓인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그동안 종북몰이와 색깔론을 통해 짭짤하게 재미를 봐왔던 경험이 그들을 자꾸만 인공기에 집착하게 만드는 유인이 아닐까 싶다. 정말로 한심한 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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