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정치 혐오 부추기는 막말 쇼는 이제 그만

새 날 2017. 12. 2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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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을 지내오던 한 여성 정치인이 소속 당으로부터 제명을 당했다. 예상 대로 그녀는 즉각 반발에 나섰다. 당 대표라는 사람이 과거 당 회의 전 자신에게 발언을 주의하라는 취지에서 "밤에만 쓰는 것이 여자의 용도다"라는 식의 막말을 했다는 폭로로 이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녀는 이를 묵묵히 참았다고도 했다. 


그녀가 제명됨과 동시에 작정하고 내뱉은 단말마의 성격이 짙은 이러한 발언은 과연 무슨 의도였을까? 여성 정치인으로서 여성을 비하하는 사회적 악습이 정치권에도 만연돼 있음을 자신의 입으로 직접 폭로하고, 이참에 주의를 환기시키려 했음일까? 아니면 어차피 제명된 판국이니 그동안 서로 얼굴을 붉히며 설전을 벌여온, 한때는 유난히 가까운 우군이기도 했던 정적 홍준표 대표에게 어떡하든 흠집을 내고 장렬히 산화라도 할 작정이었던 걸까? 


ⓒ류여해 페이스북


그동안 대중들 앞에서 그녀가 끊임없이 펼쳐온 나름의 퍼포먼스는 어떤 측면에서는 참신함 그 자체였다. 혹여 도가 조금 지나친 측면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흡사 정치와 예능을 반반씩 섞어놓은 듯한, 영역을 과감히 넘나드는 협업 체제의 새로운 시도는, TV 예능 프로그램의 재미를 훌쩍 뛰어넘곤 해 충분히 칭찬 받을 만한 결과물이었다. 더구나 인형 등의 소소한 도구까지 활용, 정치판에서조차 대중들로 하여금 환한 웃음을 유발시켰던 그 탁월한 감각은 전적으로 그녀 류여해만이 지니고 있을 법한 창의력 덕분이었을 테다. 


더구나 제1야당 대표가 한 발언치고는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여성 비하 표현에 대해 여성의 한 사람으로서 이를 과감히 폭로하기까지 했다. 멋지다, 류여해. 응원한다, 류여해. 



홍준표 대표가 그동안 내뱉어 온 막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막말의 대명사격이다. 특히 여성 비하 발언은 그의 전매특허이기도 하다. 돼지발정제 사건부터 시작해 "이대 계집애들 싫어한다 꼴 같잖은 게 대들어 패버리고 싶다", "설거지는 여자가 하는 일", "넌 또 뭐야 니들 면상 보러 온 게 아니야 너 까짓 게" 등등 셀 수 없이 많다. 여성을 남성보다 한 단계 아래로 낮춰 인식하는 듯한 평소 그의 사고체계로 보아 류여해 씨의 폭로가 전혀 신빙성이 없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그녀 언행은 사실상 돌출적인 성격이 짙었다. 정치판에서 이뤄지는 퍼포먼스는 흥미로웠으며, 참신한 이벤트는 더없이 좋았다. 다만 자신의 정체성을 각인시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몸짓으로 보이기도 해 때로는 애잔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왠지 모르게 상대적으로 진정성이 덜 느껴진다. 이번 발언 역시 그의 연장선쯤으로 다가온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홍 대표의 평소 언행에 문제가 전혀 없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그의 여성 비하 발언이 사실이라면 그는 정치인으로서, 아니 일개인인 남성으로서도 자격이 없다.


ⓒ데일리안


하지만 이 대목에서 정작 심각하게 다가오는 건 따로 있다. 진흙탕처럼 혼탁하기 만한 자유한국당의 내분을 온 국민이 모두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해당 발언의 진위 여부와는 별개로, 아울러 누구의 입에서 나온 것이든 관계없이, 국민들에게는, 특히 여성들에게는 크나 큰 상처가 될 법한 발언들이 그들 사이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처럼 쓰인다는 사실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이런 구태의연한 정치 집단이 대한민국의 제1야당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더없이 암울하게 한다.


자유한국당이 펼치고 있는 막말 퍼레이드와 희극 못지 않은 볼썽사나운 볼거리는 대중들에게 헛웃음을 유발시키곤 한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면 차라리 다행일 듯싶다. 대개는 분노와 불쾌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로 인한 피로감마저 증폭시키기 일쑤이니 말이다. 이들의 막말과 꼴불견이 미디어 매체를 통해 노출이 자주 이뤄질수록 그에 비례해 정치는 희화화되고 대중들로 하여금 정치 혐오감은 더욱 부풀려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정치 혐오의 일상화는 대중들로 하여금 그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토대이자 장치이기도 한 정치 참여로부터 점차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낳게 하고, 불과 얼마 전까지 만해도 혹세무민을 일삼던 적폐세력의 득세와 같은 아주 불쾌한 결과물을 소환시키기도 한다. 어깃장을 놓으면서 억지논리로 국정 운영의 발목을 잡은 채 국회를 파행으로 이끌고, 입으로는 민생을 부르짖으면서도 이렇듯 막말을 밥 먹듯 일삼으며 정작 입법부로서의 소임을 내팽개치고 있는 그들이다. 게다가 온갖 쇼로 점철된 집안 싸움을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노출시키고 있다. 이런 엉터리 정치 집단이 국정 파트너인 제1야당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정치 수준을 한 단계 끌어내리는 탓에 통탄스러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정치 혐오 부추기는 막말 쇼를 멈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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