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전쟁은 안 된다는 강렬한 메시지 '강철비'

새 날 2017. 12. 15.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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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쿠데타의 징후가 포착됐다. 정찰총국을 지휘하던 인물 리태한(김갑수)은 정예요원인 엄철우(정우성)로 하여금 쿠데타를 일으킨 박광동(이재용)을 암살하라는 비밀 지령을 내린다. 그러나 엄철우가 암살을 위해 대기하던 순간 뜻밖의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정작 쿠데타의 주인공인 박광동은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수많은 군중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건 남한에서 북한 1호라 지칭하는 북한내 최고통치권자였다. 북한 1호가 개성공단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의문의 폭탄 세례가 퍼부어짐과 동시에 그를 환영하기 위해 행사장에 나온 군중들을 일거에 쓰러뜨리고 만다. 북한 1호도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다. 



박광동의 암살을 위해 현장에서 대기 중이던 엄철우는 급박한 상황에 일순간 당황하지만, 일단 북한 1호를 차에 태운 뒤 우여곡절 끝에 중국 외교관들의 무리에 섞인 채 개성공단을 빠져나와 남한으로 도피하는데 성공한다. 북한 쿠데타 세력은 개성공단 폭격을 빌미로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미국은 미국 대로 평소 눈엣가시였던 북한을 향해 전략핵을 퍼붓기 위해 저울질을 하며 우리 정부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는 북한 1호의 치료차 도피한 병원에서 엄철우와 조우하게 되고, 자칫 전쟁으로 치달을지도 모를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그를 활용키로 하는데...



대외적으로는 고립을 선택하고, 내부적으로는 경제적인 곤란을 겪고 있는 북한은 통치권마저 예측이 불가능한 인물이 휘두르고 있는 터라 우리에겐 사실상 언제 폭발할지 알 수 없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다. 더구나 자위권 차원이라며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주변 여건은 더욱 암울하기만 하다. 북한의 쿠데타에 이은 도발 등 급변사태가 우려스러운 건 이렇듯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예단할 수 없는 불가측성과 핵무기의 결합 때문일 테다. 



여기에 자신들의 영토가 아닌 탓에 쉽게 핵무기로 선제 타격을 언급하고 실제로 이를 종용하는 주변국들의 압박이 더해지면서 한반도는 또 다시 전쟁의 참화로 뒤덮이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하기 십상이다. 영화 속에서는 때마침 남한에서 대통령선거가 치러지고 차기 대통령이 선출된 즈음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꾸려지고 현재의 권력과 미래의 권력이 나란히 공존하는 권력의 중첩기에 접어들게 된다. 



안타깝게도 현직 대통령(김의성)과 차기 대통령(이경영)의 정치적 이념은 판이했다. 때문에 민족 전체의 앞날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북한의 급변상황 앞에서 현재의 권력과 미래의 권력은 사사건건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이러한 현실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남한과 북한을 오고가는 영상에는 세련미가 더해지면서 어색함을 찾아볼 수 없는 덕분에 사실감을 더욱 부각시킨다. 



배우 정우성에게는 엄철우의 배역이 인생 연기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찰떡궁합이었던 것 같다. 대화보다는 눈빛 연기가 많았던 탓인지 정우성에게는 왠지 이러한 연기가 더욱 잘 어울린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능청스럽고 뻔뻔한 역의 달인 곽도원과의 케미도 신선하다. 두 사람의 대화 장면을 보고 있으면 마냥 썰렁하긴 한데, 아주 가끔은 그 안에서 웃음 보따리가 터져나오곤 한다. 결과적으로는 북한의 급변사태와 우리를 둘러싼 열강의 긴박한 움직임, 전쟁이라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만들어내는 긴장감과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지면서 극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북한 쿠데타 세력의 특수요원으로 등장, 강렬한 액션을 선보인 조우진의 열연이 특히 돋보인다. 그에겐 이렇듯 차갑고도 날렵한 배역이 왠지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김갑수가 펼치는 최고 존엄만이 뿜어낼 법한 강렬한 카리스마는 오금을 저리게 할 만큼 막강함으로 다가온다. 반가운 배우들의 현재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점도 매력적인 요소다. 엄철우의 지고지순한 아내 역할을 맡은 박선영, 곽철우와 이혼한 아내 역의 김지호, 김지호의 친구로 등장한 산부인과 의사 박은혜 등은 평소 스크린에서 볼 수 없었던 배우들이라 더욱 반가웠으며, 리선생의 배역으로 등장한 원로배우 김명곤의 근황을 알 수 있었던 점도 좋았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던지는 메시지는 확고하다. 미국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들은 눈엣가시인 북한을 핵으로 선제 폭격하자며 우리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고, 보수 정권인 현재의 권력 역시 이번에야 말로 북한을 칠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마지막 명분이라며 미국에 동조하고 나섰지만, 과거 냉전시대의 대리전을 우리 민족이 치르며 엄청난 희생이 뒤따랐듯이 또 다시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얽혀 막대한 피해를 입고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건 결국 우리 민족뿐이라는 사실이다. 



영화 속에서 미국이 북한을 선제 타격하라는 지시를 내린 뒤 취재기자를 비롯 자국민들을 이웃국가인 일본으로 대피시키는 장면은 최근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 고조되자 주한미군 가족들을 미국으로 대피시킨다는 설이 파다하게 퍼졌던 현실 상황을 오버랩시킨다. 스토리가 짜임새 있으며, 극의 흐름 위로는 긴박감이 더해지고, 폭격 장면 등의 특수효과에서는 현실감이 제대로 전해져온다.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지면서 완벽에 가까운 작품 하나가 탄생한 느낌이다. 여기에 어떡하든 전쟁만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강렬한 메시지까지 더해졌다. 



두 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타임이지만,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몰입감과 흡인력이 뛰어난 작품이다. 분단 상황에서의 국민은 분단 자체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기 보다 분단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세력 때문에 고통을 겪게 된다는 극중 대사가 강하게 뇌리에 꽂힌다.



감독  양우석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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