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주취감경 폐지 청원, 음주문화 변화 이끄나

새 날 2017. 12. 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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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음주문화는 세계적으로 악명이 자자하다. 중동의 한 방송사는 우리의 음주문화에 대해 "매우 폭력적이다"라고 묘사했다. 부끄러운 노릇이다. 최근 이러한 분위기에 모종의 변화가 읽히고 있다는 건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다. 주류 업체들의 부진한 실적이 이를 입증한단다. 2008년 284만 상자에 이르던 국내 위스키 판매량은 8년만인 지난해 167만 상자까지 떨어졌다. 하이트진로 맥주사업부의 지난해 매출액은 8천27억 원으로 2013년에 비해 12.4%나 감소했다. 술집도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국세청에 따르면 전국 일반주점 사업자는 1년 만에 3천600개가 감소하면서 하루 평균 10곳가량이 폐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회식이 있을 때마다 2차 3차까지 흥청망청 내달리던 음주 분위기는 요즘 1차에서 그치는 방식이 대세로 자리잡은 데다가, 1인 가구의 증가로 혼술 집술이 하나의 트렌드화되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해당 현상이 과연 우리의 음주문화를 획기적으로 변모시키고 있는 게 맞는지 몇가지 통계 자료를 통해 이를 확인해보자. 우리의 알코올 섭취량은 수십 년 전과 비교해 많이 줄어들긴 했으나, 세계인들과 견줄 경우 여전히 높은 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2014년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 1인당 연간 알코올 섭취량은 12.3L로 세계 평균섭취량 6.2L의 두 배에 달한다. 아울러 한국인의 성인 고위험음주율은 2014년 18.4%, 2015년 18.5%에서 2016년 18.6%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경향신문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2016년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한 달에 1회 이상 음주를 하는 월간음주율은 61.9%로, 2005년 첫 조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 중이다. 최근 1년 동안 월 1회 이상 한 번의 술자리에서 남성 7잔, 여성 5잔 이상 음주를 하는 월간폭음률도 전년도인 2015년보다 높았다. 특히 여성 폭음률에 주목해야 할 것 같다. 2013년 이래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서도 살펴봤듯 위스키 판매량이 줄고 있다는데 이는 무슨 연유 때문일까? 최근의 음주 트렌드가 독주보다는 약한 알코올 도수의 주류에 코드가 맞춰지면서 빚어지는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아울러 맥주회사의 매출이 타격을 입고 있는 이유는 맥주 소비 감소라기 보다 수입맥주의 공세로부터 찾아야 할 듯싶다. 수입맥주를 찾는 소비자의 숫자가 생수 소비자에 비견될 만큼 많아졌다. 올해 이마트의 수입맥주 구매고객 수는 627만3000명으로 생수 구매고객 수 627만8000명과 엇비슷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볼 때 혼술 및 집술 트렌드가 자리를 잡으면서 소비자들의 음주 패턴이 모종의 변화를 겪고 있는 게 분명하긴 하나, 그동안의 관행이었던 좋지 않은 음주문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모하고 있다고는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려워 보인다. 음주로 인한 사회적 폐해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발생한 강도 살인 등 5대 강력범죄 가운데 27.5%가 음주와 연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같은 기간 발생한 살인사건 가운데 36.5%에 해당하는 건이 범행 당시 음주 상태인 것으로 집계됐다는 사실은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 이렇듯 음주는 범죄와 깊숙이 연관돼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음주에 여전히 관대하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시민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펼치는 행정을 통해서도 그 일단이 읽힌다. 서울시가 모임이 많아지는 연말을 맞아 밤늦게 택시 잡기가 어려운 강남과 홍대 지역에 올빼미 버스를 추가로 투입한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늦은 시각 차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시민들을 위해 편의를 제공하겠노라는 발상은 참으로 기특하다 못해 칭찬 받을 만한 사안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연말연시 술 모임을 마친 후 귀가가 늦어지는 술꾼들의 교통 편의까지 고려, 지자체가 혈세를 쏟아부어야 하느냐는 사회 일각의 목소리에는 일정 정도 귀를 기울여야 할 듯싶다. 술에 관대한 보편적인 정서가 부지불식간 지자체의 행정을 통해서도 일부 발현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다. 


ⓒ연합뉴스


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음주와 관련한 질병으로 한 해 약 11만 명(2012년)가량이 사망한다. 음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비용은 대략 10조 원(2015년)에 달하며, 파생 비용까지 고려하면 연간 23조 원을 넘어서는 실정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체 음주운전 적발건수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23만여 건이나 된다. 이 가운데 음주운전으로 2회 이상 적발된 재범률은 45.1%에 달하며, 3회 이상 적발 비중도 19.3%에 이른다. 국민의당 주승용 의원에 따르면 음주운전은 실수가 아닌 고의적, 습관적 행위로 고착되어 있으며, 이는 음주운전사고에 대한 실형 선고 비율이 20% 내외로 처벌이 경미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렇듯 시민들은 술에 취한 상태를 심신미약의 한 형태로 인식하고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을 줄여주는 관행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덕분에 국민의 법 감정과 형법 사이의 온도차는 꽤나 크다. 이런 가운데 관대한 우리의 음주문화에 대해 이를 개선하자며 시민들이 일제히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국민청원에 나섰다. 8세 여아를 잔혹한 방식으로 성폭행한 조두순이 주취감경으로 15년형에서 12년형으로 단축, 3년 뒤 석방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다. 



청와대가 이에 화답했다. 일단 조두순에 대해 무기징역으로 처벌을 강화해 달라는 재심 청구는 불가능하다고 밝혔으며, 음주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범죄행위와 관련한 감형 즉, 주취감경 조항의 일괄적인 폐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사회적 논의와 함께 입법부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음주를 심신미약 인정 사유에서 배제하자는 형법 개정안 등 주취감경을 배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속속 발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책임이 없으면 형벌이 없다'는 형법상 책임주의의 대원칙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다뤄져야 하는 까닭에 주취감경을 폐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일 것이라 짐작된다. 하지만 이번에야 말로 음주문화의 좋지 않은 관성을 타파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된다. 어떤 방식이 됐든 형법 그리고 국민의 법 감정과의 간극을 이참에 제대로 좁혀 잘못된 음주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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