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경제적 약자들의 통쾌한 반란 '꾼'

새 날 2017. 11. 24.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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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무려 4조 원에 달하는 돈을 투자자로부터 가로챈 뒤 중국으로 달아났던 장두칠의 사망이 정부를 통해 공식 확인됐다. 그러나 최근 그를 보았다는 제보가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장두칠 사건 담당인 박희수 검사(유지태)는 이른바 '꾼'이라 불리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사조직을 운영해오고 있던 터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그에게 황지성(현빈)이 접근, 장두칠은 아직 살아있으며 자신과 함께 그를 잡자는 제안을 해온다. 


고석동(배성우), 김과장(안세하), 춘자(나나)로 이뤄진 박 검사의 사조직 팀은 황지성의 합세로 새로운 진용을 갖추게 된다. 아울러 황지성의 요구로 그에게 장두칠 검거를 위한 판 짜기의 모든 권한을 넘기게 된다. 황지성은 장두칠의 오른팔인 곽승건(박성웅)에게 접근, 그의 검거 작전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하는데...



가상 인물 장두칠은 희대의 사기꾼인 조희팔을 연상케 한다. 조희팔은 실제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전국에 걸쳐 10여 개의 피라미드 업체를 차려놓은 뒤 의료기기 대여업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30∼40%의 고수익을 보장한다고 속여 무려 3만여 명의 돈 4조 원을 가로챈, 국내 최대 규모의 유사수신 사기 사건의 주인공이다. 



그는 중국으로 밀항, 조선족으로 신분을 위장한 채 숨어 지내오다가 지난 2011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것으로 경찰이 공식 확인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그가 경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위장 사망을 꾸민 것으로 의심하고 있으며, 이후에도 조희팔을 봤다는 목격담이 쏟아지는 등 그의 사망을 둘러싼 의혹은 현재진행형이다.



황지성은 장두칠 사기 피해자들과 질긴 인연으로 엮여있다. 이른바 직업적 '꾼'이었던 아버지의 석연치 않은 죽음은 황지성으로 하여금 꾼마저도 감쪽 같이 속일 수 있는, 꾼들 가운데서도 가장 으뜸 수준의 필살기를 지니게끔 한다. 잘 빠진 준수한 외모의 청년으로부터 때로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까지, 다재다능하게 선보이는 그의 분장 능력과 수천억 원을 베팅하는 장두칠의 심복 앞에서조차 결코 기가 죽지 않은 채 오히려 배포를 드러내는 과감성은 그만이 지닌 강력한 필살기다. 



마찬가지로 고석동과 김과장, 춘자로 이뤄진 박 검사 휘하의 팀 조직은 각자가 지닌 남다른 필살기를 각기 선보이면서 장두칠의 실체에 점차 접근해간다. 특히 춘자 역인 나나가 펼치는 팔색조 연기는 인상적이었으며, 그녀와 호흡을 맞춘 박성웅의 어리버리한 연기 또한 극의 재미를 더한다. 어리숙한 듯싶지만 내면은 결코 그렇지 않은 고석동 역의 배성우는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내는 역할을 도맡는다.



희대의 사기꾼 장두칠이 쉽게 잡히지 않고 있는 데다가 가짜 사망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는 이면에는 이른바 금권에 의해 얼룩진 정치권과 관료들의 민낯이 자리잡고 있다. 적어도 이 작품에 출연하고 있는 정치인들과 관료, 그리고 유력 차기 대권 주자까지, 장두칠이 곳곳에 쳐놓은 그물로부터, 그러니까 대가성 뇌물로부터 자유로운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물론 특정 사건을 모티브로 했기에 영화속 이야기들은 모두 허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실제 사건에서 3만 명에 이르는 피해자들을 울리고 있는 배경이 왠지 영화속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씁쓸한 속내를 감추기 어렵다.



팀플레이를 통해 특정 사건을 해결하는 오락물은 영화의 단골 소재다. 이 작품 또한 그런 류와 크게 다르지 않다. 희대의 사기꾼을 속이기 위한 진짜 꾼들의 고군분투는 새롭지 않으며, 때문에 차별화 지점을 찾는 일 역시 녹록지 않다. 아울러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고 있기는 하나 예측이 가능한 범주에서 이뤄지는 점도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소다. 다만 멋진 현빈의 외모를 보기 위함이 이 작품의 주된 관람 목적이라면 일정 수준은 충족시켜줄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작품만의 진짜 특징은 무엇일까? 영화는 장두칠에게 사기를 당한 투자자들이 사무실을 찾아 하소연하는 모습으로부터 시작된다. 투자자들 개개인의 사연 하나하나는 온통 안타깝기 짝이 없다. 전 재산을 투자한 데다가 이도 모자라 주변 친지들에게까지 권유하는 바람에 동시에 쪽박을 차게 되고, 그로 인한 후폭풍이 그들의 삶 위로 거세게 불어닥친다. 장두칠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만 벌써 10명에 이를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황지성을 비롯한 팀원들이 펼친 팀플레이는 이른바 경제적 약자들이 쉼없이 흘린 피눈물과 비견된다. 그러니까 그들의 통쾌한 반란쯤 된다고 할까? 



감독  장창원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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