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타인의 고통 앞에서 웃음이 나옵니까?

새 날 2017. 11. 18.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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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한 기자가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사고 현장을 취재하면서 그곳을 배경으로 웃으며 V자를 그리는 사진을 남기는 바람에 중국 대중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자초한 끝에 결국 해고됐다는 소식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기자 링은 지난 15일 푸양시의 한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취재를 위해 현장에 나섰으며, 당시 고속도로에는 자욱한 안개로 인해 차량 30대가 연쇄 추돌, 적어도 18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대형사고가 빚어졌다고 한다. 


통상 교통사고라고 하면 금방 피어오르는 연기와 함께 찌그러진 차량들이 주변에 널부러져 있고, 그로 인한 파편이 사방에 흩어져 있는 등 사고 당시의 충격이 고스란히 상흔으로 남겨진 채 사상자를 구조하기 위해 출동한 구조대원들의 숨가쁜 움직임과 앰뷸런스 차량의 싸이렌 소리가 고막을 연신 뒤흔드는 장면이 연상되곤 한다. 이렇듯 급박한 사고 현장에서, 게다가 18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할 만큼 심각한 상황에서, 이를 취재하기 위해 출동한 기자가 취한 행동치고는 어처구니가 없어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기자 신분인 그녀는 타인의 기쁨이나 슬픔 등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에 대해 이를 이해하고, 함께 고통을 느끼거나 기뻐해줄 수 있는 공감능력이 현저히 낮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다른 사람의 고통과 기쁨 그리고 아픔과 슬픔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적 정서에 공감한다면, 이번 사례처럼 타인의 고통 앞에서 어떻게 웃음이 나올 수 있는 것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는 얼마 전 사고가 발생한 지 3년만에 바다에서 건져올려져 목포 신항으로 옮겨진 세월호 선체 앞에서 한 정당 소속 정치인들이 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물의를 빚게 했던 사건과 성격상으로는 상이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땐 판박이다. 



때마침 세월호 미수습자 5명의 가족들이 1313일 동안의 기다림과 아쉬움을 가슴에 묻은 채 18일 오전 세월호가 있는 전남 목포 신항에서 미수습자 영결식을 치르고 떠났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공감능력을 가늠하는, 지난하면서도 고통스러운 잣대였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당시만 해도 나라 전체가 슬픔에 잠긴 채 안타까움과 애도를 표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자 어느덧 보상금 및 대학 특례 입학 이야기가 나돌더니 급기야 “죽은 아이를 대상으로 장사를 하려 한다”는 등의 끔찍한 소리까지 등장했다. 


정치권과 정부가 진상 규명에 나서기보다는 보상금이나 각종 혜택 문제로 여론을 호도하면서 국민으로 하여금 유가족들로부터 등을 돌리게끔 조장하고 나선 탓이다. 그러는 사이 일베 등 주로 온라인상의 음습한 곳에 숨어 활동하던, 극우를 표방하는 커뮤니티 회원들이 광장으로 뛰쳐나와 유가족을 조롱하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등 가뜩이나 자식을 잃고 실의에 빠진 유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만다. 뿐만 아니다. 일부 정치인과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마저 온갖 망언을 쏟아내는 등 슬픔에 잠긴 사람들을 향해 같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행할 수 없을 것 같은 몹쓸 행태를 일삼았다.


이는 당시 대통령을 비롯한 일부 정치권 그리고 정부가 세월호와 관련하여 끝까지 책임 회피로 일관하고, 여론을 엉뚱한 방향으로 호도한 결과물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뒤이은 구속 수사의 출발점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부터 비롯됐으나, 그의 배경에는 사실상 세월호라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세월호는 그만큼 우리 사회에 깊은 생채기를 남긴 사건이다. 


ⓒ노컷뉴스


당시 대통령과 일부 정치권 그리고 정부 등 이른바 사회 지도층에겐 사람이라면 마땅히 갖추고 있어야 할 공감능력이 현저히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 연구팀이 얼마 전 관련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와 같은 사실을 이해하는데 약간의 도움을 준다. 이에 따르면 지위가 높아져 권력을 갖게 될 경우 상대적으로 공감능력이 떨어진단다. 


연구 참가자들을 권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룹과 명령을 받는 입장의 그룹, 둘로 나눠 다른 사람들에게 볼 수 있도록 자신의 이마에 영문자 'E'를 쓰라고 했더니, 스스로 권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E자를 좌우로 뒤집어 쓴 사례가 3배 이상 많았단다. 이는 무엇을 의미일까?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관점에서 E자를 써넣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현상을 파악하는 일에 미숙함을 보이는 공통점을 안고 있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다른 사람을 모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높은 사람들이 웃는 경우 같이 맞장구를 쳐주어야 하고 윗사람의 재채기만으로도 덩달아 긴장하게 되지만, 상대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정부의 수장을 비롯,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유독 공감능력이 부족했던 까닭은 무엇보다 비뚤어지고 비정상적이며 몰상식한 이념 및 가치관에 매몰되어 이를 굳건한 신념과 확신으로 받아들였던 탓이 가장 크다. 여기에 막강한 권력을 손아귀에 쥐게 되면서 응당 갖추고 있어야 할 공감능력을 더욱 떨어뜨린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서두에서 언급한 중국의 기자처럼 타인의 고통 앞에서 웃고 있는 꼴과 진배없다. 세월호 참사 당시 온 나라를 혼란과 갈등으로 몰아넣었던 세력에게 이를 빗대어보니 수긍이 간다. 


두뇌로부터의 이해를 뛰어넘어 누군가의 상황을 가슴으로 인지하고 그의 기분을 함께 느끼며 적절하게 반응해주는, 이렇듯 공감하는 행위는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하고 사람에게 다가가게 하는 최선의 방법 가운데 하나다. 세월호 미수습자가 마지막 여정을 떠나는 날, 본의 아니게 사회 전체가 한동안 이를 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웃음이 나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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