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포항 지진 수능 연기, 비로소 보호 받는 국민

새 날 2017. 11. 1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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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5.4에 이르는 강진이 포항 일대를 급습했다. 15일 오후의 일이다. 이로 인한 여파는 서울에까지 고스란히 전달됐다. 여지없는 수능 한파로 인해 기온이 급강하했음에도 그와는 별개로 이날 오후는 여전히 나른함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여유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때아닌 진동에 온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다. 순간 어릴적 경험이 되살아나며 지진임을 직감했다. 이번에는 정부의 움직임이 빨랐다. 지진 발생 1분 뒤 재난 문자가 일제히 발송된 것이다. 덕분에 서울 등 진앙지에서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지역에서는 지진 감지보다 오히려 재난 문자가 더욱 빨랐다는 전언이다. 


지진은 한반도 땅 덩어리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 또한 크게 뒤흔들어놓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주일 뒤로 연기된 것이다. 이와 같은 소식은 수능을 불과 12시간 앞두고 그야말로 전격 발표됐다. 수능은 한국인들의 전체 생애를 놓고 볼 때 굉장히 비중이 높은 통과의례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이의 시행을 12시간 앞두고 연기가 결정됐으니 어찌 혼란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1993년 수능이 시행된 이래 자연재해 때문에 시험이 미뤄진 건 초유의 사태라고 한다. 물론 2005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수능이 연기된 바 있지만, 이 경우 APEC과 G20 등 국제 행사 개최 건 때문이었으며, 연기 결정 또한 연초에 일찌감치 확정 지어졌기에 이번 사태와는 그 성격이 판이하다. 


대한민국 사회에서의 대입 시험이란 비단 이를 직접 치러야 하는 수험생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시험 당일 출근과 은행 영업 그리고 주식 시장 개장 시각이 한 시간씩 뒤로 늦춰지는 등 온 국민이 그의 영향을 받게 되고, 수험생들과 함께하면서 하루 종일 가슴을 졸여야 하는 빅 이벤트다. 더구나 이의 연기는 각 대학별로 계획돼 있는 대입 전형 일정에도 차질을 빚게 할 전망이다. 


때문에 좋은 결과를 바라며 쉼없이 달려온 일부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이와 같은 소식에 허탈해 하거나 때로는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성격상 수능 성적 하나만으로 삶의 질을 완전히 뒤바뀌게 할 수도 있는 만큼 수험생들의 동요는 유달리 클 수밖에 없다. 시험 당일 최고의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생체 리듬을 일부러 그에 맞춰온 사람들 역시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일 테다. 연기된 일주일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시험 성적에 영향을 미칠 게 뻔하기에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건 지극히 당연한 노릇이다. 


ⓒ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정부의 이번 조치를 크게 환영한다. 앞서도 언급했듯 이번 결정으로 커다란 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당장 수험생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조치인 데다가 대입 전형 일정에도 차질을 빚을 게 틀림없을 테니 말이다. 때문에 완벽하게 준비를 끝내고 컨디션을 최고조로 끌어올려 수능날만 손꼽아 기다려온 수험생들이 토해내는 울분은 십분 이해된다. 하지만 과거 정부가 세월호 등 각종 재난 상황에서 대응한 조치에 비하면 이번 결정은 진일보한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해 발생한 경주 지진 이후 여진이 수 개월동안 지속된 것으로 전해졌다. 11월 2일까지 경주 지진의 여진 누적 발생 횟수만 해도 모두 639회나 된다. 이번에 발생한 포항 지진 역시 규모 5.4의 본진이 발생한 뒤 2시간만에 규모 4.0의 여진이 발생하는 등 이틀 동안 벌써 50여 차례에 가까운 크고 작은 여진이 지속되고 있다. 포항을 비롯한 인근 지역에 위치한 학교의 피해가 속속 전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여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수능을 치른다는 건 더 큰 혼란을 야기할 개연성이 높다. 



혹여 이러한 난관을 모두 뚫고 수능을 치른다고 해도 과연 이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누구든 장담하기 어렵다. 예기치 못한 또 다른 지진의 여파로 인해 시험이 중단될 수 있는 데다가 무엇보다 아이들의 안전이 가장 우려되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사람의 생명과 안전보다 중요한 건 없다. 예정 대로 수능을 강행할 경우 자칫 재시험을 치러야 하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될 경우 더 큰 혼란으로 이어지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다. 


세월호 이후 숱하게 발생한 안전 사고 및 재난 상황에서 지난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도외시해온 경향이 크다. 사실상 사람의 가치보다 여타의 그것이 더 우대돼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수사의 발화점 역시 그와 아주 가까이 맞닿아 있다. 그에 비해 '사람이 먼저다' 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번 정부가 취한 결정은 지극히 상식적이며 더 큰 혼란을 막을 수 있는 선제적인 조치로 평가된다. 아울러 오로지 타인을 짓밟고 올라서야만 좋은 대학, 그럴듯한 직업을 얻을 수 있다는 신념을 공공연하게 강요 받아온 우리 아이들에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일깨우는 살아있는 교육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비로소 국가로부터 온전히 보호를 받는 느낌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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