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한샘 사건, 조직 문화 개선의 불쏘시개가 될 것인가

새 날 2017. 11. 12.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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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온라인 매체를 통해 불거진 한샘 여직원 성폭력 의혹 사건은 우리에게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 크다. 때마침 해외로부터 불고 있는 '미투 캠페인' 훈풍과 맞물리면서 기업 내부에서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는 성폭력은 물론, 위계에 의한 각종 갑질 폐해들이 속속 폭로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조직의 문화는 그 조직에 직접 몸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려운 특징을 지닌다. 이렇듯 내밀하기 짝이 없는 한국식 조직 문화의 병폐가 이참에 하나 둘 까발려지는 분위기이다. 


그렇다면 한샘 사건은 과연 한국식 조직 문화 개선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을까? 이번 사건이 대중들로부터 비난을 자초했던 건 다름 아닌 회사 측이 피해자에게 회유를 시도하고, 심지어 협박이 이뤄진 정황이 밝혀진 탓이다. 이후 대중들 사이에서 한샘 제품 불매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한샘 경영진은 대중들 앞에 일제히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샘의 내부 조직 문화가 도마에 올랐다. 한샘이 단기간 내에 급성장한 이면에는 경직되고 강제적인 조직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는 관련자들의 증언이 파다하게 퍼진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한샘은 이제 갓 입사한 신입 직원에게 수천만 원에 해당하는 영업량을 강제 할당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주말 산행이나 아침 회의에 참석시키는 등의 불이익을 가하는 방식으로 실적을 관리해왔다고 한다. 물론 이는 단지 한 사례에 불과할 뿐, 회사의 갑질에 의해 직원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란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회사의 외형에 비해 기업 문화가 여전히 과거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놓았다. 이번에 논란이 된 성폭력 사건 또한 한샘의 내부 조직 문화와 시스템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한편 한샘 논란 이후 또 다른 기업에서도 비슷한 성폭력 사건이 폭로됐다. 연이은 폭로 때문인지 이를 한국판 '미투 캠페인'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사내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직장 여성들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개는 피해를 당해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계약직이나 신입 직원 사이에서 주로 나타난다. 


뿐만 아니다. 강압적인 조직 문화와 위계에 의한 갑질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도 불거졌다. 성심병원에서는 병원 내 장기자랑 행사에 소속 간호사들을 강제로 참여시키고, 이들에게 노출이 심한 옷을 입힌 채 선정적인 춤을 추게 했다는 사실이 폭로되어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뉴시스


문제 영상을 직접 보니 단체로 군무를 선보인 간호사들의 몸놀림은 수준급이었다. 경험상 이는 오랜 기간 함께 호흡을 맞추며 단련하지 않으면 절대로 흉내조차 낼 수 없을 만큼 고퀄리티에 해당한다. 장기자랑이었으니 평소 춤에 관한 한 자신이 있었거나 흥미가 있어 각 개인이 자발적으로 이에 참여하였다면 딱히 문제의 소지는 없었을 줄로 안다. 그러나 언론 보도에 따르면 병원별로 참가율을 체크하고 그 밖에 배차 현황 등을 상세히 관리하는 등 병원이 반강제로 이들을 동원한 정황이 드러났다.


유치원에서 유아들의 재롱잔치를 보는 것 마냥 적지 않은 나이의 어르신들이 객석에 앉아 무대 위에 오른 간호사들의 장기자랑을 굳이 보면서 환호하겠다고 한다면 이를 딱히 말릴 생각은 없다. 이 또한 개인 및 집단의 각기 취향일 수 있으니 말이다. 다만 개중엔 성격상 혹은 체질상 남들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거나 춤을 추는 행위가 극도로 싫은 이들이 분명히 존재할 텐데, 그들의 개인적인 성향과 의사는 철저히 무시한 채 행사에 강제로 참석시킨 행위를 갑질이 아니면 과연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모름지기 장기자랑이라고 한다면, 자신이 지닌 개인기를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이 지극히 개인적인 의사에 의해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싫다고 하는 사람에게, 그것도 노출이 심한 옷차림을 한 채 선정적인 춤을 강요한다면, 이러한 행위야말로 갑질에 의한 폭력 행사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조직을 유지하고 존속시키기 위한 요량이라며 개인을 희생시키고 개인의 의사와 이익보다는 집단 전체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엔 여전히 팽배하다. 이런 환경에서 위계에 의한 갑질은 비단 성심병원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는 현상 가운데 하나일 테다. 어쩌면 각급 학교 단위에서부터 이러한 방식의 교육에 길들여진 나머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부지불식 간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온 경향도 크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는 이렇듯 다양한 영역을 통해 드러나는 법이다.


이러한 가운데 한샘 사건이 불거졌고, 그동안 이를 모순이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거나 혹시 인지했다 하더라도 여러 이유로 이를 밖으로 표출하지 못했던 각종 갑질 현상에 대해 때마침 전 세계에 불고 있는 '미투 캠페인' 바람과 맞물리면서 조직 문화를 둘러싼 각종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폭로되고 있다. 산업화 과정을 거쳐오면서 외형 성장에만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집단주의와 위계로 기울어진 전근대적인 조직 문화에 대해 바야흐로 사회 전체가 이의 체질 개선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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