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라스베이거스 총격사건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

새 날 2017. 10. 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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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각으로 지난 1일 밤 라스베이거스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가을이 깊게 무르익어가는 밤, 콘서트를 즐기던 4만 명의 관중들은 영문도 모른 채 32층 높이에서 자동화기기로 마구 쏘아대는 용의자의 총탄 세례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했다. 어디선가 총탄이 날아들어와 자신의 몸으로 파고들지 알 수 없는 끔찍한 상황은 누구에게든 극도의 공포감으로 다가올 법하다. 현장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모했다. 인터넷 공간과 언론 등에 공개된 당시의 현장 영상 속에는 다급한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총기는 애초 전쟁에서 적군을 보다 효율적으로 살상하기 위해 개발된 도구 가운데 하나이다. 과학기술 발달에 따른 혜택은 무기라고 하여 예외일 수 없다. 보다 빠른 시간 내에 사람에게 치명적인 위해가 가해지도록 첨단 기술 등이 다양한 방식으로 접목돼왔다. 이러한 살상 도구가 미국 등 몇몇 국가에서는 자위적 방어 목적으로 개인에게 소지가 허락되고 있다. 하지만 다수가 이를 오남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사건처럼 이른바 '외로운 늑대' 등에 의한 묻지마 범죄에 총기가 악용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아울러 미국 전염병 통제 예방 센터가 공개하고 TIME지가 보도한 가장 최신(2005년)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약 3만 1000건에 이르는 총기 관련 사망자 가운데 55%가 자살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개인에게 소지가 허락된 총기는 이렇듯 자위적 차원을 벗어나 살인이나 자살 행위에 더 많은 쓰임새를 드러내놓곤 한다. 제아무리 우리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 개발된 첨단 기술이지만, 경우에 따라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 아닐까 싶다. 


인류의 미래를 견인하리라 예견되는 AI 기술 역시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양날의 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역대급 사례로 알려진 이번 라스베이거스 총격 사건은 어떤 형태가 됐든 미국 사회에 또 다시 총기 규제에 대한 여론을 들끓게 할 공산이 커졌다. 


한편 단 한 명이 벌인 사건 치고는 지나치게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까닭에 미국 당국은 이번 사건의 배후를 파헤치느라 분주한 모양새다. 이슬람극단주의 세력 IS는 자신들이 주도한 사건이라고 자처하고 나섰다. 하지만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이른바 '외로운 늑대'에 의한 묻지마 범죄의 결과물로 압축되고 있다. 무고한 사람 수백 명이 희생된 끔찍한 사건을 또 다시 조직의 재건과 이익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려는 IS의 속내는 지나칠 청도로 잔인함 일색이다. 


용의자가 현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바람에 사건 경위와 배후 파악에 애를 먹고 있는 미국 당국은 그의 주변을 샅샅이 살피고 있는 와중이다. 그러한 가운데 용의자의 부친에 관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라스베이거스 총격범 부친은 사이코패스 은행강도"라는 제하의 기사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용의자 부친이 과거 FBI에 의해 지명수배됐던 은행강도 출신이자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는 매우 위험한 인물이었노라는 내용이다. 



이번 사건이 워낙 엄중하게 와닿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더욱이 용의자가 사망했기에 어떡하든 사건 경위와 배후를 파헤쳐야 하는 당국의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조그만 단서가 될 법한 사안마저도 쉽사리 언론의 주목을 끌곤 한다. 그런데 이번 사건이 속속 전해지는 과정 속에서 우리 모두는 과거 조승희 사건을 떠올리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한때 공범으로 알려진 여성이 아시아계라는 언론보도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놀라야 했을까? 바로 낙인효과 때문이다. 조승희가 한국계라고 이미 널리 알려진 상황에서 무차별 살상 행위의 주인공이 또 다시 한국계로 알려질 경우 한국 사람에게 덧씌워지게 될 낙인이 내심 두려웠기 때문일 테다. 언론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앞서의 언론 기사가 인터넷 상에 보도된 뒤 해당 기사 말미에 달린 무수한 댓글은 나의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네티즌들은 유전자와 환경을 무시할 수 없다며 한 목소리로 총격범을 비난하고 나섰다. 물론 네티즌들의 주장처럼 유전자는 매우 중요하고, 한 사람의 사람 됨됨이를 결정 짓는 환경 역시 절대로 무시할 수는 없을 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유전자와 환경이 한 사람의 삶에 100% 영향을 끼친다고 단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는 과도한 일반화다. 오히려 난 낙인효과가 우려스럽다. 즉, 부모가 범죄자라면 그 자녀 또한 같은 범죄자로 취급되는 등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낙인효과가 두려운 건 한 번 씌워진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어렵게 하는 등 대중들로 하여금 편견을 심게 하고 이를 일반화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영화 '청년경찰'이 중국동포를 범죄자로 낙인찍고, 대림동을 범죄 소굴로 표현하는 등 중국동포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심어준다는 이유로 논란에 휩싸인 사례도 비슷한 맥락이며, 이전 정권이 자신들을 반대하는 세력에게 '종북'이라는 낙인을 찍어 옴짝달싹 못하게 했던 시도 역시 같은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라스베이거스 총격 사건은 정말로 부친의 영향 때문에 빚어지게 된 결과물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가 과거 범죄자였고 그 자녀가 또 다시 끔찍한 범죄 행위를 저지르게 된 건 전혀 인과관계나 상관관계가 없는, 철저한 우연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난 후자일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고 부모의 유전자나 환경의 영향력에 의해 갇히게 되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테니 말이다.


언론이 부모의 과거 행적을 언급하고 나선 건 작금의 결과가 다분히 그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언론이 특정 사실을 보도할 때는 적어도 그 내용이 진실에 근접해 있는지의 여부부터 살펴야하고, 아울러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파급력을 고려해야할 텐데, 또 다시 이러한 사회적 책무를 등한시한 결과물이 아닐까 싶어 내심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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