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의 전설

반려견을 다시 키우지 않으려는 이유

새 날 2017. 8. 27.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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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무심코 지나쳐왔던 일이 실은 누군가에게는, 그러니까 그 대상이 반드시 사람이 아니더라도, 굉장히 고통스러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새삼 안타깝다. 동물원에서 사육되면서 일반인에게 전시돼온 북극곰과 관련한 사연이 유독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건, 아마도 얼마 전 미처 예상치 못한 일로 세상을 먼저 등진 우리집 개 '미르'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다가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국내에 유일하게 한 마리 남은 북극곰이 최근 몇 달째 관람객들을 피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란다. 30도를 훌쩍 뛰어넘는 한여름 무더위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동물원 측의 배려라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그러나 광활한 북극 대륙에서 하루 80킬로미터를 이동하면서 영하 40도의 혹한과 시속 120킬로미터에 달하는 강풍을 견디며 살아오던 북극곰에게 있어 좁디 좁은 동물원 우리와 무더운 한반도 기후는 최악의 환경이다. 


ⓒ서울신문


동물보호단체들이 앞다퉈 동물 학대라 주장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평소 직접 볼 수 없었던 동물을 동물원이라는 공간에 한데 가두어 두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근거리에서 관람하면서 그동안 품어왔던 호기심을 해소하게 하거나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보자면 최저의 비용으로 극대의 효과를 누릴 수 있기에 경제적으로 보나 기타 다른 요소로 보나 사람에게 이로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된 북극곰의 사례에서 보듯 단순히 사람들의 눈요기를 위해 원래 살아오던 환경과 상반된 환경 속에 동물을 가두어놓은 채 전시하는 행위는 대부분의 동물 입장에서는 학대에 가깝다.


알래스칸 말라뮤트 견종인 '미르'를 태어난 지 4개월 무렵부터 키워왔던 나 역시 돌이켜보니 그동안 미르에게 몹쓸 짓을 해왔던 게 아닌가 싶다. 눈덮인 알래스카 대륙을 마음껏 뛰어다니던 환경에 최적화된 신체 조건을 타고 났으나 인구 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서울 하늘 아래, 그것도 아주 조그만 집에서 갇혀 지내왔으니 오죽 답답했을까? 기후 조건은 또 어떤가. 이중모로 덮여 있는 까닭에 한반도의 추위 정도는 너끈히 이겨낼 수 있으나 여름만 되면 이른바 찜통더위에 떡실신되는 게 일상 가운데 하나다. 태생적으로 한반도의 기후 아래에서는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견종이다. 



사실 이러한 조건들을 모두 극복하려면 개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넓은 대지는 필수이고, 여름을 기꺼이 이겨낼 수 있는 시설 역시 반드시 요구된다. 솔직히 실토하자면 미르에게는 이러한 여건들이 온전히 갖춰지지 못했다. 특히 여름만 돌아오면 무더위를 이겨내느라 무척 힘들어했다. 이는 두고두고 안쓰러움으로 다가온다. 나를 비롯한 우리 인간은 이들을 반려동물이라 호칭하며 그들로부터 정서적인 위안을 얻고 행복감을 누리고 있지만, 정작 그들의 가장 기본적인 복지조차 등한시해온 셈이다.


때마침 동물과 관련한 또 다른 기사를 접하면서 안타까움은 배가된다.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의 94%가 '비글'이라는 견종이 도맡아한다는 내용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실험에 이용된 비글은 모두 15만 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애견인들 사이에서 비글은 사고뭉치 견종이라는 별칭과 함께 실험견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단다. 비글의 상징이랄 수 있는 짤막한 다리와 큰 귀를 마구 휘저으면서 애견 주인과 함께 열심히 거리를 활보하던 녀석의 모습 이면에 이토록 비참한 현실이 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그런데 내 마음이 더욱 불편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다름아니라 그 많은 동물 가운데 하필이면 왜 비글이 가장 많은 실험 대상에 낙점되고 있는가 하는 점 때문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비글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그저 참을성이 많고 사람을 잘 따르는 이유 때문이란다.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일 테니, 비록 안타까운 측면이 있더라도 이는 필요악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연합뉴스


다만, 다른 이유도 아닌, 단지 참을성이 많고 사람을 잘 따르는 고운 심성 때문에 유독 비글이 실험 대상이 되어 희생되고 있다는 사실은 내 마음을 몹시도 불편하게 만든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선한 사람은 늘 이용만 당한 채 버려지기 일쑤다. 비록 드라마나 영화 속 허구가 아니더라도 현실 세계에서도 상대적으로 강하고 악한 자에 의해 희생양이 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보아왔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러할진대 말 못하는 동물에게는 오죽 하겠는가.


지구촌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인간 역시 다른 생물들과 공존을 꾀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은 그동안 다른 길을 택해온 경향이 크다. 미르를 잃은 뒤 미안한 마음과 상실감 때문에 녀석을 완전히 빼닮은 아기 말라뮤트의 입양도 한때 고려했으나 뜻을 접기로 했다. 나 좋자고 하는 행위가 실은 반려견 혹사 내지 학대에 가깝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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