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커피 자판기 퇴조 현상이 아쉬운 이유

새 날 2017. 8. 15.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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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에서 식사를 마친 후 자판기를 통해 뽑아 먹는 커피 한 잔의 맛은 보약과도 같다. 아주 간혹 자판기가 구비되어 있지 않거나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깜빡하고 커피 마시는 일을 생략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흡사 무언가 중요한 일을 빼먹은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비흡연자인 까닭에 식후 흡연 행위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으나, 아마도 식사 후 자판기 커피 한 잔 섭취의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말이다. 식후 마치 오아시스처럼 내게 기운을 불어넣어주곤 하던 자판기 커피가 점차 사라지는 추세라고 한다. 물론 음식점 등에서는 서비스 차원에서 이를 갖춰놓은 경우가 여전히 많지만, 실제로 동전을 투입하여 뽑아 먹는 커피 자판기는 주변에서 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수가 사라졌다. 커피 전문점이나 편의점 등의 업소를 매개로 원두커피가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믹스커피의 지위가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실재하는 통계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해 발행한 식품의약품통계연보에 따르면 2015년 전국의 자판기 대수는 3만4556대에 이른다. 하지만 불과 2년 전인 2013년에는 4만3778대였으니, 그 짧은 기간 동안 무려 1만 대에 가까운 자판기가 우리곁에서 사라졌다. 자판기 대수가 역대 최고점을 찍은 건 지난 2003년의 일이다. 12만4115대였다. 현재는 그의 27.8%만이 살아 남아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내 입맛은 딱히 고급스럽지도 저렴하지도 않은 까닭에 어떠한 종류의 커피도 잘 적응하는 편이다. 요즘엔 아메리카노 같은 원두커피가 대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입맛은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달달한 믹스커피에 여전히 최적화돼 있는 편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자판기에서 뽑아먹는 이른바 '고급커피'의 맛이 으뜸으로 다가온다. 커피 제조사에서 판매하는 모카골드나 수프리모, 프렌치카페 등 여러 종류의 믹스커피는 이 자판기 커피 고유의 맛을 절대로 흉내내지 못한다.


짐작컨대 자판기에서 취급되는 믹스커피는 대량으로 공급되기에, 우리가 시중에서 흔히 사먹는, 앞서 언급한 그러한 종류의 것보다 품질이 한 단계 아래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입맛에는 자판기의 커피맛이 오히려 훨씬 좋다. 아메리카노나 더치 커피 등에서 느낄 수 있는 이른바 고급스럽다는 커피 고유의 씁쓸한 풍미 따위와는 그다지 관계가 없으나 충분한 거품과 특유의 달달함이 커피 향과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나의 코와 입을 자극해오기 때문이다.  


자판기에서 뽑아먹는 그 커피 맛이 왠지 그리울 때가 있다. 이를 흉내내기 위해 믹스커피를 손수 끓여도 보지만, 절대로 자판기만의 그 고유한 풍미를 따라갈 수는 없다. 늘 아쉬운 대목이다. 마치 집에서 만드는 짜장면에 정성을 가득 쏟는다 한들 절대로 중국집 그것의 맛을 따라갈 수 없듯 말이다. 고급 커피의 위세에 눌려 이 자판기가 점점 퇴물로 취급 당하고 있다니 이는 참으로 슬픈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에 근래 가속 페달을 밟는 일마저 속출하고 있다.


ⓒ조선일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내년부터 학교에서 커피 등 ‘고카페인’ 표시가 된 모든 음료의 판매를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이 법이 개정될 경우 매점에서의 커피 판매는 물론, 일선 학교에 설치된 커피 자판기로도 커피를 팔 수 없게 된단다. 여기에 청소년의 가공식품을 통한 당류 섭취량이 세계보건기구(WHO)의 권장량을 초과했다는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의 발표도 잇따르고 있다. 이에 따르면 60세 이상은 커피믹스 등의 소비로 인한 당 섭취가 월등한 것으로 조사됐다. 믹스커피가 과도한 당 섭취의 원흉으로 지목된 셈이다.



가뜩이나 고급 커피에 밀리며 자판기 커피가 시장의 주류로부터 크게 이탈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소식은 현재의 방향성에 쐐기를 박고 있다. 물론 너무 많은 커피 흡입은 과도한 카페인과 당분 섭취로 이어져 몸에 해로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만의 치열한 경쟁 시스템 하에서 커피 한 잔은 흡사 찜통 더위에 시원한 청량 음료 한 잔을 마시는 효과 이상을 누리게 해주곤 한다. 더구나 점심 식사 이후 나른한 오후 시간으로 접어들게 되면 우리의 몸 안에서는 당분 섭취를 격하게 요구해오고, 그럴 때마다 달달한 자판기 커피 한 잔의 공급은 각성 효과와 함께 부족한 당까지 보충해주는 매우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또 하나의 문화가 이렇게 저물어가는가 보다. 커피 자판기의 퇴조 현상이 내겐 너무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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