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팩트체크 전성시대, 반 박자만 쉬어가자

새 날 2017. 7. 3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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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에겐 자신들의 귀가 솔깃해질 만한 이야기를 들으면 일단 휴대폰을 꺼내 사실 여부부터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혹은 문득 떠오른 사실이기는 하나 정확한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에도 휴대폰을 이용하여 그 미흡한 부분을 기어코 메우고 만다. 비단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어른들도 여럿이 모여 무언가 화젯거리를 풀어놓거나 흥미를 유발할 만한 소재를 이야기할 경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서 반드시 관련 사실을 확인한 후에 '정말이네' 라는 반응을 보이곤 한다. 이른바 팩트 체크 전성시대다.


스마트폰이 개인 각자의 손에 쥐어지면서부터 바뀐 생활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만의 빨리빨리식 문화와 접목, 급격하게 진화해가고 있는 현상 중 하나가 바로 이 팩트 체크다.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세상 그 어떠한 사실도 모두 즉석에서 확인이 가능한, 진일보한 정보화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통신 기술의 발달과 최신 기기의 보급은 이러한 현상에 날개를 달아준 꼴이다. 그러다 보니 바로 즉석에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좀처럼 참지를 못한다. 덕분에 웃지 못할 현상도 자주 벌어지곤 한다. 확실한 정보가 아닌 이상 섣불리 내뱉었다가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망신을 당하기 일쑤다. 상대가 나이가 어리다고 하여 쉽게 생각했다가는 영락없는 '팩폭'에 자칫 정신줄을 놓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애나 어른 할 것 없이 진위 여부를 파악한답시고 휴대폰을 켠 채 마구잡이로 덤벼드는 데엔 어찌해볼 재간이 전혀 없다. 


정확한 정보를 빠른 시간 내에, 그리고 즉석에서 확인 가능하다는 건 여러모로 볼 때 참으로 이로운 일이다. 거짓이거나 잘못된 정보를 재빨리 거를 수 있다는 건 분명 모두에게 유익한 결과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반드시 바람직스러운 것 같지는 않다. 그만큼 휴대폰이라는 기기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다는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중독 증상마저 보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거리를 걸으면서도 휴대폰으로부터 눈과 귀를 떼지 못해 주변 사람들이나 환경 따위에 아랑곳없이 모든 신경을 오롯이 휴대폰에 기울이며 걷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만의 일이 아니다. 이들을 일컫는 신조어 '스몸비족'이 탄생할 만큼 이는 전 지구적인 현상이자 인류 앞에 놓인 가장 큰 골칫거리 가운데 하나다. 이의 해결을 위해 오만 가지 발상들이 동원되곤 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아직 인류가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미증유의 새로운 현상인 까닭에 적응하고 자리를 잡는 데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휴대폰에 대한 의존 현상이 강하거나 중독 증상이 심한 사람들일수록 모든 일을 휴대폰으로 처리하려는 경향이 짙다. 심한 경우 강박 관념 따위의 증상마저 엿보인다. 이를테면 어디선가 사소한 정보라도 하나 받아들이게 될 경우 즉석에서 이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인내하지를 못하는 경우가 바로 그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뭐든 당장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식 '빨리빨리 문화'도 한 몫 단단히 거든다. 생활의 편리함과 안락함을 안겨줄 것만 같았던 새로운 기술은 오히려 우리를 더욱 조바심나게 하고 있는 셈이다. 나중에 천천히 확인해도 결코 늦지 않을 사안을 굳이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할 정도로 우리를 강박 관념에 시달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 휴대폰에 의지하는 우리의 생활 양식은 웬만한 지식과 정보와 관련하여 휴대폰을 통해 쉽게 찾게 하고 가공이 가능케 하다 보니 인간의 인식, 계산, 암기 능력 등을 퇴화시켜 흔히 자신의 집 전화번호마저 쉽게 기억해내지 못하는 현상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치매 증상을 더욱 앞당기는 촉매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부터 가뜩이나 정신 없이 돌아가는 힘든 삶이거늘, 뭐가 그리 급하다고 여기에다 스스로 가속 페달마저 밟으려고 하는 것인지, 우리가 왔던 길을 가끔씩 뒤돌아보면 한숨만 한가득 나올 지경이다. 한 박자, 아니 반 박자 느리게 사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왜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님에도 방금 얻은 정보나 지식에 대해 그토록 목 말라 하며 이를 즉석에서 반드시 확인하려 드는 걸까? 



조금 늦더라도 천천히 이것 저것 받아들이고 즐기면서 취사선택하여 한 템포 느리게 확인하면 절대로 안 되는 걸까? 혹시 우리는 어떤 사실에 대해 이의 진실 내지 거짓을 경쟁적으로 다른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결과물로부터 심리적인 위안을 얻고 있는 건 아닐까?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휴대폰의 화면을 켜고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바라보게 된다면 과연 어떤 느낌이 들까? 왠지 불편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과거에 비해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건 분명 굉장한 이점이긴 하나 우리는 어느새 통신과 기기의 노예가 되어 인간미를 점점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심히 우려스럽다. 우린 지금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면서 무심결에 무엇을 찾으려고 손가락을 이리저리 놀리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바로 앞에 대화 상대가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휴대폰 화면에 초집중하고 있지는 않은지.. 조금은 더디더라도 반 박자 늦춰 가는 게 그리도 어려운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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