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박수 받아 마땅한 영화 '군함도'

새 날 2017. 7. 2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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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 2개 만한 크기의 인공섬 하시마, 섬 전체가 탄광이며 갱도는 무려 해저 1천 미터 깊이에 이를 만큼 어마어마한 규모다. 이곳은 일본의 군함을 닮았다 하여 이른바 '군함도'로 불린다. 일제강점기 끝자락인 1945년, 조선인들의 다수가 강제징용을 당해 이곳 군함도로 끌려와 가혹한 환경 속에서 혹독한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참이다. 


평소 일본에 건너가 일하고 싶어했던 경성 모 호텔 악단장 강옥(황정민)은 그의 유일한 피붙이인 딸 소희(김수안), 그리고 악단 단원들과 함께 일본에 진출할 기회를 얻어 드디어 부산발 배에 몸을 싣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탄 배는 강옥에게 알선해준 이의 소개와는 달리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향한다. 다름아닌 지옥섬 하시마였다. 그가 경성에서 받아온 소중한 추천장은 한낱 쓸모없는 종이짝이 된 채 길바닥을 나뒹굴고, 강옥과 소희를 포함한 배에 탑승한 모든 조선인들은 군함도를 관리하는 일본인들에 의해 강제로 그곳에 수용, 탄광에서의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는 처지로 전락하고 만다. 



함께 배에 올라 강옥처럼 강제징용을 당한 이들의 사연은 배에 오른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다. 칠성(소지섭)은 종로 바닥에서 주먹 깨나 쓰던 인물이었고, 말년(이정현)은 당시 젊은 여성들의 다수가 그러했듯 일제에 의해 중국 등을 오가며 모진 고초를 감내해야 했던 인물이다. 이렇듯 저마다 각기 다른 사연과 희망을 품은 채 일본으로 향하는 배에 오른 그들이었건만, 원하든 원치 않든 종국엔 지옥섬 하시마에서의 끔찍한 여정이라는 공통된 목적지를 향해 수렴해가던 찰나다.


이 영화는 일본 나가사키현에 실재했던 인공섬 군함도, 그리고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을 당한 채 그곳에서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던 조선인들의 아픈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 위에 영화적 상상력을 덧입혀 제작된 작품이다. 군함도 내부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성인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갱도 내에는 10대 소년들이 투입되어 목숨을 건 석탄 캐기에 나서야 했으며, 해저 깊숙이 자리한 입지적인 원인과 갱도 내의 열악한 시설 탓에 탄광 내부에는 툭하면 바닷물이 들어차거나 레일 사고와 같은 크고 작은 사건들이 빈번하게 발생, 현장에 투입된 조선인들의 목숨을 시시각각 위협해오는 상황이었다.



조선의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핵심 인사로 알려진 윤학철(이경영)은 함께 징용된 조선인들로부터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를 구심점 삼아 이곳에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은 자신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어렵사리 극복해나가던 와중이다. 군함도에 새로이 합류한 강옥과 그의 딸 소희는 눈치 빠른 행동과 처신으로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이를 특유의 방식으로 헤쳐나가곤 했다. 무대에 설 때면 언제나 환상적인 콤비를 이루던 그들은 지옥섬인 군함도 내에서도 여전히 찰떡궁합이었다. 황정민의 능청 연기는 이번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소희 역을 소화한 김수안의 연기 또한 매우 좋았다. 



외모는 한없이 가녀리지만, 강한 내면을 지닌 여성 캐릭터 말년, 그리고 그녀와는 반대로 겉으로는 매우 거친 데다가 물불 가리지 않는 투박한 성격의 인물로 그려져 있으나 내면으로는 따스한 감성이 흐르는 칠성은 첫 만남부터 예사롭지가 않다. 그 밖에 군함도 내에서 조선인의 신분으로써 조선인의 우두머리가 되어 오히려 이들을 착취하는 데 앞장서온 종구(김민재), 독립운동 주요 인사를 구출하기 위해 군함도에 몰래 잠입, 조선인들의 탈출을 돕는 역할을 맡게 된 광복군 OSS 소속 박무영(송중기) 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서로 얽히고 설킨 채 동시에 펼쳐나가는 이야기 구조는 제법 흥미롭지만, 다소 산만하게 다가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배우 이정현에게 주어진 말년의 배역은, 그녀만의 폭발적인 연기력을 보여주기엔 다소 밋밋한 캐릭터라 많이 아쉬웠다.



극이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영화는 본격 군함도 탈출기로 흘러간다. 물론 그 과정은 영화 '덩케르크'에서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나 초조함 따위가 아닌,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치열함이었다. 조선인의 탈출을 막으려는 일제의 총탄과 그에 맞선 조선인들에 의한 화염병 불꽃이 난무하고 목숨을 건 탈출 러시는 끝도 없이 길게 이어진다. 매우 긴박하고 처절하게 와닿아야 할 대목이었으나 어딘가 모르게 판타지 액션 장르와도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던 순간이라 이물감이 전해져온다. 



영화란 모름지기 허구다. 이 작품 역시 시작과 동시에 허구임을 알리고 있다. 때문에 군함도를 소재 삼아 여기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감독이 목적하는 바를 이루면 사실상 그의 역할을 다한 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기다려오던 수많은 관객들의 생각은 여타의 작품을 대할 때와는 사뭇 달랐던 듯싶다. '군함도'라는 단어가 갖는 묵직함 때문이다. 아직은 자세히 알려진 바 없는 군함도와 당시 일제의 만행에 대해 역사적 고증을 제대로 거쳐 이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쳐주었으면 하는 바람 아닌 바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우리가 알던 '군함도' 그 이상은 없었고, 이를 단순히 소재로만 삼은 듯 일종의 액션 블록버스터 정도의 작품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관객들의 불만과 하소연이 폭주하고 있는 양상이다. 물론 이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일제의 지독한 만행과 일부 조선인들의 도를 넘어선 친일 행각을 군함도라는 역사적 실체를 통해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작품은 박수를 받아 마땅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친일파 세력이 득세하고 있다. 깨끗하게 단죄하지 못한 여파가 한 세기가 거의 다 흘러가고 있음에도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또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커녕 적반하장의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록 역사적 고증이 다소 미흡한 느낌인 데다가 오락적인 측면이 강하게 부각되었다 하더라도, 결코 지워지지 않으며, 아울러 절대로 지울 수도 없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이렇듯 대중 누구나가 즐길 수 있는 문화상품에 고스란히 담아 주의를 환기시키며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값어치 있는 일이 아닐까?



감독  류승완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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